그룹명/피러한님의 글모음

가운데의 중요성

유앤미나 2008. 3. 28. 19:52


가운데의 중요성
‘노란색 봉투만 봐도 끔찍하다’
이십년 동안 땀 흘렸던 슈퍼 일을 접고 이제
태백을 떠나야만 하는 어느 상인의 독백(獨白)이다.
소도시인 태백(太白)까지 이-마트가 개점되면서
중소상인들이 사지에 내몰려 있게 된 것은,
대형마트의 공격에 단 한 차례도
이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형화 추세는 이-마트가 대표적 사례지만,
세계는 지금 글로벌기업 짝짓기에
붐이 일면서 사회적인
양극화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 사회 역시 새해부터 최대 화두는
양극화 현상이었음을 작년부터 언론마다
교육, 임금, 고용, 부(富)의 양극화라는
기사를 다루면서 알 수 있었다.
요즘엔 그 주제가 더욱 다양하여
집값이나 주식형 펀드, 수출 등 심지어
문학과 배구코트까지 양극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지금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으로 몇 가지 과정을 통해
누구도 피(避)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양극화는 먼저 산업(産業)변화에서 출발되었다.
정보(情報)화와 세계화 시대 속에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자원이 이동되면서,
상대적인 다른 산업은 격차가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다음으론 경기(景氣)변화가 큰 원인이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자꾸 높아지자,
빈곤층은 더욱 확대되고 사회경제적 갈등은
더욱 야기되면서 성장(成長)잠재력을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낳게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형화(大型化)가 생긴 것이다.
세계는 생존을 위해 영역의 한계 없이
기업들이 짝짓기가 이루어져
더욱 대형화되는 추세다.
이러한 결과들로 인해,
대조적인 사회계층은 극한 양상을 띠며 
빈익빈 부익부라는 말이 더욱 실감나게 하는 것은,
소수의 부유층들은 더 많은 부(富)를 차지만
인구 절반은 겨우 하루 2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야하는 현실 때문이다.
우리도 경제규모는 세계 11위라고 하지만,
빈부격차에 따른 양극화 현상은
이 사회를 위협(威脅)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양극화 해소를 위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복지제도에 대해 전면적으로
보완하는 등 정책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 각 영역(領域)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양극화라는 대세(大勢)에 대해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만 할까.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이 되는 일은 먼저
중간(中間)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우리 사회는 중간을 무시한 채
너무 극단적이고 이분법적(二分法的)이다.
모든 결과들을 극단화 시켜 평가하면서,
부자가 아니면 실패한 생이고
성자가 아니면 죄인이라는 식(式)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근세 이후에
하나의 세력을 이루면서 오로지
정신과 물질로만 세상을 구별 지었던 것이다.
곧 인간과 자연을 주관자와 객관자로 극단화시켜,
상호교통을 철저하게 단절시켜 자연경시와
자연 파괴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바로 그 때처럼,
타협이나 상호인정이라는
중간(中間)영역은 사라지고 국가 전체
모든 면에서 양극(兩極)화만 치닫고 있지 않는가.
역사는 항상 수구세력과 개혁과의
싸움이 반복되어 왔건만,
언제나 정치와 언론의 논리에 따라서
한 순간에 어느 한 세력이 판을 장악한다는 것이
양극화를 더욱 가속(加速)화 시켰던 것이다.
도대체 우리에게는 어느 때에 가서야
균형 잡힌 견제(牽制)나 건강한
파트너십이라는 의식이 생길 수가 있단 말인가.

이전에 O, X 문제를 많이 풀었지만,
세상은 그런 문제처럼 간단하게 결정할 수 없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의 애매(曖昧)한
자리가 얼마나 많이 존재하던가.
수학에서도 플러스와
마이너스 중간에 O 이라는 것이 있다.
물리에서는 전자 양자 사이에 중성자가 있고,
생물에서도 암수 사이에 중성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편도 저편도 아닌 중도(中道)라는 개념은
어느 한 쪽은 될 수 없으나,
양쪽을 다 끌어안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요즘엔 모든 기기들이 디지털방식이다.
그러나 디지털은 아날로그의 초침(秒針) 사이의
무한히 서로 다르게 존재하는 시간을 표현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어느 것이 좋고 나쁘고를 따지지 말고,
서로의 장점(長點)을 살리는 길이 바로
중심(中心)을 지키는 일이다.
우리 인생이 불행(不幸)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 중심을 찾지 못할 때 생겨난다.
세상에는 나보다 나은 사람도 많지만
나보다 어려운 사람은 더 많다는 것을 주지하고,
그 중간에서 자신(自身)의 길을 찾을 때
행복(幸福)의 파랑새는 쉽게 찾아올 수 있다.
어떤 사람이든지 옳고 그르냐를
따지다보면 관계(關係)가 깨지므로,
중심(中心)에 서서 인정과
화해를 청할 때 서로 사는 길이 열리게 된다.

이렇게 중간의 자리를 찾았다면,
그 자리에서 진정한 자신의 길을 만드는 것이
양극화의 희생물이 아닌 특별한
축복의 생을 살게 한다.
나는 ‘남미(南美)’하면
축구(蹴球)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그 다음에는 ‘남미처럼 하면 망한다.’는 인식이다.
물론 남미 쪽이라고 다 망한 것은 아니었다.
칠레는 성공(成功)했고,
멕시코는 중간 정도로 갔지만
아르헨티나는 완전히 망(亡)해 버렸다.
한 때 우리보다 더 경제력 강국이었지만,
후안 페론의 포퓰리즘 정책에 따라
오직 여론에 의한 대중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노동자의 고임금과 복지비 부담으로
엄청난 부채가 지금의 빈국을 만들었던 것이다.
민중혁명으로 대통령이 되었기에
국민의 뜻을 중시(重視)하는 것까지는 좋지만,
미래를 위험하게 할 정책이라도
국민들이 싫어하면,
지금 축구해설가 신문선 씨처럼
국민의 적이 된다는 것, 곧 비판기능은 다 상실된 채,
우파든 좌파든 한 마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더 근본적인 실패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연예인들을 우상(偶像)시하여
자신의 자아를 그들 속에서 찾고 있는
철부지 청소년처럼 아르헨티나는,
중산층이 몰락되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무슨 유럽국가인 줄 착각하여
허세만 부리며 진정한 자아를 찾지 못하기에
아르헨티나는 망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남자다 여자다’,
‘극우다 극좌다’ 이러고 있을 때에
중간의 목표로서의 자기 역할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 종속 속에서도
그들이 아직도 버틸 수 있는 것은,
미국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자기색깔이 너무나
강렬한 남미문화(南美文化)에 있다.
이렇게 어느 한 쪽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중간의 자리에서
자신의 독특한 칼라를 알고
이제 그것을 브랜드 화 할 수 있는 것이
양극화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의외로 유명 인사 중 음악을 전공했거나,
음악 매니아들이 많이 있다.
금호 박 회장은 클래식에 대해 남다르다는 것과,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피아노 전공자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음악이든 다른 분야든 예술은 다른 전공과
별개의 일로 여기기 쉬우나,
중요한 것은 분야(分野)는 다르나
인류 사회 발전이라는 지향점(指向點)은 같기에,
자신의 분명한 목표를 정해놓고 정진하는
길만이 양극화에 흔들리지 않고
여유 있는 삶을 살게 하는 길이 된다.
내 인생 최종비전을 위하여,
신의 부름에 따라,
자신이 디자인하는 중간목표(中間目標)는
이분법이 아닌,
이타적(利他的)인 그 분의 길이다.

주여,
양극화가
사회에서 문제가 되듯이,
최종 목표만을 달성하길 원하는
이기적인 저의 기도는
더 큰 문제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최후 보루를 밟기 전에
중간 봉우리에서
제가 해야 할
중간(中間)목표들은,
복을 위한 과정들이 아니라
오직 당신의 최종목표를 위한
과정들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때론 빠르게
때론 느리게 속도도 조절할 줄
여유있는 중간인생이
되게 하소서.
2006년 7월 첫 주 2일에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ꁾ 뚜가리님 열혈남아님 속초디카(심영권님) lovenphoto님

'그룹명 > 피러한님의 글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수의 삶  (0) 2008.03.29
돈과 인생  (0) 2008.03.29
먼저 간 친구  (0) 2008.03.28
타는 목마름  (0) 2008.03.28
처음처럼  (0) 2008.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