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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른 것

유앤미나 2008. 3. 21. 13:54
5% 다른 것


이사하면서 아내와 여러 번 다투었다.
보다 못한 작은 딸이 나에게 훈수를 둔다.

'아빠, 이제 그만 싸울 때가 되지 않았어?'
'음~~~'
'아빠가 참아...'


결혼 후 몇 년 동안은 이사를
연례행사처럼 했지만,
이번에는 십 년 만에 하는 이사라
정리해야 할 짐이 많아지면서 의견충돌이 생긴 것이다.

사소한 것을 갖고 다투는 모습이
딸의 눈에도 한심스러웠듯이,
나도 아내와 이렇게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것에
새삼스럽게 놀랄 뿐이었다.


어느 책에 보니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5%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는데,
우리는 5%가 아니라 95%가 다른 듯 다투었다.

‘5’라는 숫자는 별 것 아닌 것 같으나
그것은 본질까지도 흔들리게 할 큰 수치다.

1도가 부족해 99도에서 물이 수증기가 될 수 없고,
2%가 부족할 때부터 사람은 갈증을 느끼고,
3%의 염분이 바닷물을 짜게 하고,
4%의 차이로 성공자와 실패자가 구별된다는데
5%가 어찌 작은 차이가 되겠는가.

이렇게 남녀 간에는 차이가 크기에
되도록이면 유사한 사람을 만나면 좋으련만,
실제 부부들은 거의 반대끼리만 만나고 있는데
그 비밀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첫째로 다른 것은 자연의 섭리(攝理)다.

사람은 당연히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서로 다른 사고방식을 형성해 왔기에
성격뿐만이 아니라 인생 자체가 다른 것이다.

오히려 다른 것이 자연스럽고
서로 다른 사람끼리 만나는 것이
순리(順理)이건만 이러한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자신의 시각에서만 판단하고
내 기준에만 맞추려다 보니
불편하고 고독한 삶이 되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과 성격이
유사한 사람을 만났으면 하지만,
처음엔 그것이 좋을지 몰라도 얼마 안 가서
상대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곧 짜증을 낼 것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은
진실한 사랑으로 가는 첫 발걸음도 되지만,
서로에게 큰 힘과 유익이 되는 길이기도 하다.

작은 사람은 큰 사람을 좋아하고
소심한 사람은 활달한 사람을 좋아하고
감성적인 사람은 합리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결국 좋아하는 상대 안에는
자신 안에 없는 것을 채우려는
보완(補完)성의 원리가 숨겨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름은 상호 보완적이고
자신에게 없는 것을 채울 수 있다지만
현실에서는 그것이 극복하기가 쉽지 않음은
성격차이에는 복잡한 변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고많은 사람 중에 그 사람을 만난 것은
분명히 그것을 감당할 능력도 있음을 믿고
조화를 위한 과제는 본인에게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이 순리를 거부할 땐
누굴 만나도 행복할 수 없고
누굴 만나도 그 과제는 따라다닐 것이다.





둘째는 다른 것은 자아 성찰의 기회(機會)다.

사람은 여러 기준으로 나눌 수 있지만,
크게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관점도 나를 잘 이해 해주는 사람과
나와 잘 맞지 않는 사람으로만 구별될 뿐이다.

나와 맞지 않는 5% 사람 때문에
95% 에너지를 다 쏟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 인생이 너무도 짧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항상
좋은 친구와 좋은 이웃을 원하면서도
자신이 먼저 그런 사람이 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내게 별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그저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기와 통하는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그들을
끄집어내어 수 없이 순교시키고 있다.


다르다는 것과 틀리다는 것은 별개 문제다.
나와 다른 사람과의 만남은
자신에게 없는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그 분이 주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다름을 인정하므로
조화와 화목을 경험하므로
이웃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식성이 좋다는 사람도
은근히 음식 가리는 것이 많이 있듯이,
성격 좋다는 사람도 사람 가리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렇게 나와 다른 삶을 알아 간다는 것은
나 자신을 바로 알아 가는 과정이다.


인간의 미숙(未熟)함이란
타인에게 내 생각은 옳기 때문에
내 생각대로 움직여 줄 것을 요구할 때 드러난다.

조물주가 모두를 다르게 지으심은
모든 사람은 의미가 있는 존재임을 계시한 것이다.
내가 존귀하다면 다른 사람도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자가 성숙한 사람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부부(夫婦)는
서로의 틀에 맞춰지지 않는다고 괴로워하나
한 평생 걸어온 발자국마다 애증과
둘 만의 향기가 있기에
그를 통해 나를
보는 것이다.





셋째는 다른 것은 신의 축복(祝福)이다.

사람은 자녀를 낳기 위해 결혼하고
또 서로 싸우려고 결혼한다고 말이 있다.

부부는 살을 맞대고 살아가면서도
관점의 차이로 인해 생각이 다른 것이다.

내 입장에서만 본다면 상대가 이상하고,
상대가 날 볼 땐 내가 또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서로 간에 느껴지는 차이란
그 존재의 존엄성과 함께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기에 생겨난 불가피한 인식들이다.


새 신발을 신어도 뒤축이 벗겨지는데
어찌 다른 영혼과 발맞추어 살아가는데
아픔과 상처가 없을 수 있겠는가.

갈등하면 사랑이 없다는 식의 논리는
서로 다른 만남을 통해
서로의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기 위한 훈련의 과정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사랑해도 갈등(葛藤)은 많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차이(差異)가 아니라
그러한 차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수용하는 자세에 달려있다.

세상엔 완전한 사람이 없기에
오늘도 서로 싸우지만,

그것을 인정할 때부터
서로가 다른 것은 축복이 되고
혼자와 비할 수 없는 큰
능력이 됨을 알게 될 것이다.





주여,

아직도 아이처럼
아내와 다투고 있습니다.

우리는
잘못 만난 부부가 아니라
다만 제 관점이 잘못되었음을
날마다 알게 하소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할 때부터 시작되므로,

나와 다름이 섭리요
나와 다름이 기회요
나와 다름이 축복임을

가슴깊이 새겨주신
당신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고 싶습니다.


2005년 8월 14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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