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피러한님의 글모음

내가 누군지 알아?

유앤미나 2014. 10. 21. 19:29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누군지 알아?' 김현 의원의 특권의식을 대변하는 이 말이 졸지에 갑(甲)의 유행어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심리학까지 등장하여 ‘대리기사 폭행 논란’이후 새삼 관심 갖는 것은 최근 들어 유사한 사건들이 계속 매스컴을 장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 유도회장은 아시안게임 때 지인 출입을 제한하자, ‘여기선 내가 왕이다’라고 소리쳤던 일 이전에도 '라면 상무'와 '신문지 회장' 그리고 '빵 회장' 등 사회적 지위와 재산이 남다르다고 남을 깔보고 무시하는 갑(甲)질의 천박한 특권 의식은 우리 사회의 추악한 민낯이었기에 급기야 갑(甲)의 심리학에 관심을 갖게 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새삼스럽게 갑(甲)의 문제점을 온 천하에 드러나게 했던 장본인 김현의원은 자신을 처음 정계에 입문하게 한 전 노대통령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꿈과는 정반대로 지금 그녀는 잘못된 특권 의식을 약자인 대리기사에게까지 발동했던 것이 일파만파가 되고 있다. 사회라는 큰 틀에서 모든 인간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에 이번 사건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본질적인 갑과 을과의 관계를 짚어 보는 계기가 된 것이 차라리 잘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사회나 ‘을’을 다룰 수 있는 ‘갑’은 거만하기 쉬울 수밖에 없는데, 거기에다 사회적 지위도 높고 재산도 많고 유명한 사람일수록 보통 을(乙)보다 삐뚤어진 특권 의식에 빠질 가능성은 더욱 클 것이다. 전문가들은 '내가 누군지 알아?'라는 현상은 단기간 내에 부자가 되거나 명성을 얻은 자에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했다. 자신의 지위는 높은데 거기에 비례하여 명성이 받혀주지 않을 때 그들은 불안해하면서 '내가 누군지 알아?' 두드러기 증세를 보이면서 보통 사람들과 의도적으로 구별 지으려 한다. 특별히 자수성가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기대만큼 대접받지 못할 때 과거 무명시절 멸시받은 일을 떠올리면서 상대가 누구든 공격하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과거에 그런 짓이 통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패가망신을 부르는 주문이 되고 있다. 유도회 회장은 이번 일로 인해 개인적 스캔까지 조사가 시작되었고, 인천시의회 의장 아들은 사문서 부정 혐의로 형사 입건되었고, 일명 '라면 상무'는 직장을 잃었고, '빵 회장' 회사는 폐업 위기까지 갔다고 한다. 덕분에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겐 갑(甲)의 횡포에 제동이 걸려 비행기 안에서 진상손님이 절반 이하로 떨어 졌고, 백화점이나 호텔업계에서도 불만사항들이 1/3이나 줄었다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의원 일행에게 폭행당한 대리기사도 과거와는 사뭇 달랐다. "국회의원이면 다입니까?" 심지어 요즘 젊은 경찰들은 신분을 과시하는 중년 피조사자들에겐 더 철저히 조사한다고 하니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갑(甲)의 구조적인 여러 문제점만큼 또한 을(乙)도 어찌 보면 이미 선을 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는지 곳곳에서 을(乙)이 갑(甲)처럼 큰 소리 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을(乙)은 더 이상 잃을 것도 주저 할 것도 없기에 때론 갑(甲)보다 더 큰 소리를 치는 것이 이해도 되지만 최소한 지켜야 할 예의가 있어야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오늘이 있기까지 존경받아야 할 진정한 어르신들은 갑(甲)이 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조차 ‘당신이 뭔데!...’라고 덤벼든다면 이 사회는 기초가 부실한 환풍기 위에 선 사람들이 된다. 건물을 지을 때 기초가 든든해야 하듯이 이 사회가 오늘이 있기까지 가정이나 공동체에서 갑(甲)의 역할을 했던 그들의 헌신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무시하는 행동은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는 짓과 다를 바와 없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안하무인격으로 ‘니가 뭔데!’식으로 부모나 선생님한테도 덤벼들고 대통령에게도 막말을 하는 한국 사회는 갑(甲)질 하다 패가망신 당하듯이 무분별한 을(乙)질 또한 기초를 무시하기에 발전하지 못하고 폐망의 길을 자청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현직에 있을 땐 모든 인간관계가 갑과 을로 형성되어 있기에 신경전을 벌리며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지만 막상 퇴직하게 되면 끝까지 살아남는 것은 갑도 아니고 을도 아니다. 다만 갑을 상전으로 모셨던 을(乙)의 자세를 갖고 있는 사람만이 최후 승리자가 될 수 있다. 해양수산부 윤장관은 역대 청문회 중 너무 웃어 문제가 될 정도로 웃음이 많은 사람으로 유명하지만 그것보다는 그녀야 말로 을(乙)의 생활을 잘해 갑(甲) 위에 오른 '대한민국 대표적 을(乙)'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자신보다 스물 살 어린 하위 공무원을 만나 협조를 구할 때도 더 상냥하고 더 친절했기에 서슴없이 그녀를 대표적 을(乙)이라고 칭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갑이든 을이든 상관치 않고 현직에 있을 때 얼굴과 마음을 단련하며 지위 상관없이 온유와 겸손으로 대하며 살았던 을(乙)적인 인생과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의 근육까지 펴지 않고 평생 살아온 갑(甲)적인 인생은 훗날 정반대로 바뀌는 경우가 너무 많음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면서도 자꾸만 나이 상관없이 환경 상관없이 시도 때도 없이 갑(甲)질만 하려는 내 안의 못된 자아를 하루 빨리 청산해야 노후가 연금과 상관없이 평안하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주여,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는 당신의 말씀이 피부에 더 와 닿는 것은 세월의 나이가 아닌 대화와 관계의 나이가 더 들어가는 모양입니다. 한 올 한 올 흰 머리로 바꿔지는 자신을 보며 마지막 시간을 깨닫는다면 을(乙)처럼 아니 당신처럼 섬기는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2014년 10월 18일 토요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드립니다.
사진허락작가ꁾ우기자님, 석성근님, 포남님, 이요셉님
^경포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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