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추한 방이라고 말들 하지만[누실명/陋室銘] ♠
방 넓이는 스무 자 가웃인데
남쪽으로 문이 열려서,
낮 해가 들어와 비치면
밝고도 따뜻해라.
집이래라 겨우 바람벽이나 둘렀을 뿐이지만
책만은 사부서[四部書]를 갖춰 쌓았다네.
남은 거라곤 쇠코잠방이 하나에다
사랑하는 문군이 함께 있을 뿐,
차를 반 사발 따라 놓고
향도 한 자루 피워 놓았노라.
하늘과 땅, 옛일과 요즘의 일을
벼슬에서 물러난 김에 생각해 본다네.
남들은 누추한 방이라 말하고
남루하여 살지 못하리라 하건만,
내가 보기엔
하늘 위의 신선 세계만 같아라.
마음이 편하고 몸도 따라 편하니
누추한 곳이라고 어찌 말하리오.
내가 누추하게 여기는 건
몸과 마음이 함께 썩은 채 사는 것이라네.
원헌은 쑥대로 엮은 지게문에 살았고
도연명도 울타리만 헹한 집에 살았다네.
군자[君子]가 이곳에 머물러 사니
어찌 누추하다, 가볍게 말을 하리요.
허균[許筠/1569-1618]
♣ 덤으로 한 마디 ♣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적 요소가 강한 생애를 말한다면
허균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누이인 허난설헌도 여류시인으로 일가를 이루었지만
이 명문가의 집안의 자제들은 모두들 강직한 의기가 있었기에
이 집안의 흥망성쇠는 참으로 가슴아프다.
풍운아! 혁명아! .....
홍길동전을 집필한 것도 시대적 분위기에 역행하는 것이었고.
상민들과 어울린 것이며,
스님들과의 깊은 교류도...유교문화에는 삿대질만 받았다.
허균을 따르는 무리들이 감옥에 잡힌 허균을 탈옥시키려 하자
광해군은 이이첨의 협박에 못이겨
아주 서둘러 처형을 받았다.
허균에 대한 스토리는 아무래도 자주 쓰지 않을까 한다.
명예욕이나, 물욕이 없었기에 더욱 맑게 상기되는 인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