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히트 뒤러의 [아담과 하와]

1504, engraving,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인간의 타락은 유혹에서 시작한다. 성서의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사악한 뱀의 꼬드김 때문이었다고 한다. 아담과 하와는 떡값으로 밝은 눈을 얻었지만, 그 대신에 에덴동산을 잃어버렸다. 일찍이 오스카 와일드는 ‘나는 유혹 이외의 어떤 것에도 넘어가지 않는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거꾸로 뒤집어 읽으면 모든 유혹에 다 넘어가겠다는 말이니까 하나마나한 이야기다. 유혹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달콤한 유혹들 사이에서 배회하면서 삶을 탕진하고 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마치 두 개의 건초더미 사이에서 어느 것을 먹어야 할지 고르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가 굶어죽고 말았다는 ‘뷔리당의 당나귀’가 떠오른다.
이 그림은 독일의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린 그림이다. 1507년에 그렸다니까, 지금부터 5백 년쯤 전이다. 뒤러는 그림 솜씨를 쌓기 위해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공부했다. 그 당시에는 이탈리아의 미술이 가장 뛰어나다고 해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에도 두 차례나 찾아갔다.
알프스를 넘어가는 길은 도적도 많고 길도 위험했지만, 어떤 장애도 그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했다. 천신만고 끝에 이탈리아에 도착한 뒤러는 훌륭한 스승들을 만나고 값진 배움을 얻는다. 특히 독일에서 볼 수 없는 고대의 걸작들을 직접 감상하고 이탈리아의 뛰어난 거장들과 사귀면서 그의 미술은 눈부시게 발전한다. 뒤러는 「아담과 하와」를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수를 가지고 남자와 여자를 그렸다.” 뒤러가 이탈리아에서 배워온 것은 바로 인체비례론이었다. 이탈리아의 예술가들은 인간의 몸이 수의 규칙과 비례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창조주가 인간을 지으실 때 아무렇게나 흙을 빚어서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고 보았다. 창조주의 머리 속에는 창조의 설계도가 들어 있었을 것이고, 그 설계도는 조화로운 수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가령, 두 팔을 가로로 벌렸을 때 전체 길이는 그 사람의 키 높이와 같으니까 1:1이 되고, 머리 길이는 8곱을 해야 키 높이와 같아지니까 1:8이 된다. 또 손바닥의 길이는 키 높이에 대면 1:24가 된다. 뒤러는 자연이 숨겨 둔 인간의 비례를 밝히기 위해서 사람들을 무려 3백 명이나 벗겨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인류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아담과 하와의 비례를 얻어낸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독일에 돌아온 뒤러는 자신의 배움을 나누고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 동판화를 사용해서 그림을 찍어낸다. 동판화는 유화와 달리 수백 점을 찍어내기 때문에 가격도 싸서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작업은 간단치 않았다. 인쇄 설비가 변변치 않아서 올리브기름을 짜는 압착기에 종이를 올려놓고 누르는 식이었다.
뒤러가 판화를 찍기로 한 것은 무척 중요한 결정이었다. 만약에 그가 멀리서 힘들게 배워온 지식을 몰래 감추어 두고 야금야금 써먹었더라면 자기 혼자 알짜배기 그림 주문을 싹쓸이 하면서 큰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북유럽의 미술은 백 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뒤러는 속 좁은 사람이 아니었다. 미술의 내일을 생각하고 멀리 보았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에 크게 뒤쳐졌던 알프스 북쪽의 독일과 네덜란드 그리고 프랑스의 미술이 16세기 이후 진보의 급물살을 타게 된 데에는 뒤러의 공이 적지 않았다.
인간의 몸에서 수의 비례와 조화로운 규칙을 발견하려는 뒤러의 노력은 무척 무모해 보인다. 그림 한 점에 3백 명의 모델을 벗겨 보았다니, 그의 뚝심도 보통이 아니다. 시간과 노력 말고도 비용도 꽤 들어갔을 것이다. 자연의 비밀을 들추고, 창조주의 설계도면을 훔쳐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실제로 뒤러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은 자신의 일기장에다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라고 흘려 쓴 기록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런 구절을 읽으면 우리는 진리의 좁은 길을 홀로 걷는 화가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뒤러의 「아담과 하와」는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쳐서 완성되었다. 어둠을 헤치고 그림 밖으로 걸어 나오는 아담과 하와의 모습에서 우리는 뒤러가 간직했던,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꿈을 엿볼 수 있다
노성두 /서양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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