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스크랩] 고야 (Francisco Goya -1746~1828)

유앤미나 2012. 7. 1. 14:23

서민(庶民)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表出)
고야 Francisco Goya(1746~1828)


마하와 얼굴을 가린 사나이들


고야는 1775년, 의형(義兄) 파이유의 주선으로 왕립 
산타 바루바라 디피스리 공장에 취직이 되어 벽걸이의 
밑그림 그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자기 개성을 
자유롭게 발휘하기 시작한 제2기(1776~80) 시대의 유명한 
작품인 <파라솔>과 이 작품은 같은 무렵에 그려진 작품들이다. 
송림이 이어진 안달루시아 산책길을 집시 남녀의 커플이 
산책하고 있다. 바위에 걸터앉은 불량배가 여인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있다. 
집시 여자가 손으로 가리키며 무어라 타이르고 있는 장면이라고 
고야는 해설을 달고 있다. 마호.
마하라는 서민의 생활상을 생생한 풍속화로 묘사하고 있다. 
이것이 고야의 풍속화의 출발 점이었다. 묘사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도자기 파는 사람

가르든 시대 제2기의 고야는 어린이들의 놀이나 어른들의 놀이 정경을 주제로 한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이 그림은 마드리드 시의 전경, 귀부인을 태운 마차가 그림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 앞 쪽에 젊은 부인과 노파 한 사람이 발렌시아 산(産) 도자기를 고르고 있고 장사 아치는 비스듬히 옆으로 앉아 응대하고 있으며 고야가 즐겨 그려 넣는 개 한 마리가 있다. 인물 배치라든가 동작이 구도상의 변화와 짜임새를 주고 있으며 원경과 근경도 포인트를 둔 중경을 돋보이게 하는 대조적인 구도로 고야의 작화(作畵) 능력의 뛰어남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다. 그 밖에 화면의 분위기 조성이나 공간 처리 등의 표현은 고야의 완성기를 뒷받침해 주는 수작(秀 作)의 하나이다.


눈보라 : 겨울

4계절의 4부작 중의 하나인 겨울 작품이다.
세 사람의 사나이가 사냥꾼을 앞세우고 몰아치는 찬 바람을 맞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당나귀 등에 죽은 돼지를 싣고 움직이고 있으며, 개 한 마리가 자연의 맹위에 저항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무거운 회색조의 하늘과 흰 눈의 한설이 몰아치는 설경을 실감나게 표현했으며, 겨울 풍경의 분위기 조성도 대단히 인상적이며, 특히 화면에 등장한 인물군의 표정들도 한파(寒波)와 싸우는 엄숙한 모습이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마을의 투우

스페인에서 투우는 빼 놓을 수 없는 커다란 행사로 되어 있다. 중앙에서는 물론 지방에서까지도 투우를 하는데, 널빤지로 둘레를 막고 투우장으로 사용한다. 이 그림도 지방의 투우이며 귀족이나 농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피가돌(창으로 소를 찌르는 투우사)이 소에게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을 그린 작품. 격렬하게 움직이는 동적인 자세를 극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투우를 지켜보는 군중이나, 원경으로 처리한 풍경도 곁들여 주제인 투우의 긴박감을 자아 내는 분위기 조성을 더 한층 강조하고 있다.


대장간

고야의 작품 중에는 많은 풍속화 작품들이 다양한 영역을 가지고 있다. 어른들의 놀이, 어린이들의 놀이, 사랑을 속삭이는 정경, 투우, 사회 습관과 각종 계층의 직업에까지 널리 다루고 있다. 이 그림은 <큰 돌의 운반 작업>, <수확>, <상처입은 석공>등 노동을 모티브로 한 일련의 작품 중의 하나이다. 노동층의 다이내믹한 인간 생활의 본질적인 측면을 추구한 것이다. 불에 달궈진 빨간 쇠를 모루 위에 올려놓고 둘러싼, 3인의 각기 다른 자세는 하나의 공통된 노동의식에 결속(結束)되어 있음을 고야는 잘 포착하여 표현했으며, 격렬한 힘의 리듬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데포르메된 노동자의 심각한 표정, 격렬한 터치로 박진감 있는 화면의 분위기를 유감없이 표현한 작품이다.


고야와 의사 아리에타

1820년 캔버스 유채 117X79Cm
미니애폴리스 예술 연구소 소장

이 그림 아래쪽에 『1819년 말에 중하고 위험한 병에서, 뛰어난 의술과 정성으로 73세의 나를 구해준 벗 아리에타에게 감사하며 1820년 고야는 이 그림을 그림』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고야가 [검은 그림]의 작품제작을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다.

의사에게 부축되어 약을 먹으려는 중환자 고야의 모습에서 사경을 헤매는 듯한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 그림이다. 고야는 이러한 중병을 세 차례나 겪으면서 삶과 죽음의 처절한 경험을 겪었고, 더욱더 심오한 예술관이 형성되어 갔다. 사경에서 세 번씩이나 회생하여 더욱더 농도 깊은 걸작을 많이 남겼다.


聖요셉의 죽음

종교 도시 발라돌리드의 산타아나 교회의 요청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이 그림의 밑그림이 남아 있으나, 그것은 이 작품과는 많이 다르며 고민하는 성요셉을 그리스도가 부둥켜 안고 있는 드라마틱한 발상으로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이 작품에서는 신인 그리스도가 지상에 있어서의 아버지 요셉의 시신 앞에 조용히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손을 모은 요셉의 양손에 그리스도가 오른손을 펴서 어루만질 듯한 부분이 그림의 중심을 이루었다. 왼손은 벌려 위쪽에서 내려 흐르는 빛과도 연결짓는 구도법으로 작품을 제작했으며,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엄숙하며 자애로움이 화면 가득히 감싸 주고 있다. 고야가 제작한 종교화 중 귀중한 작품의 하나이다.


마라가토와 싸우는 修道士베드로

1806년 아루칸다라 수도사 베드로가 무장한 도적 마라가토를 맨손으로 잡은 사건이 일어나 세상을 온통 놀라게 했다. 고야는 이사건을 극적인 수법을 써서 6점의 시리즈 작품으로 제작했다. 이 그림은 그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처음 2점의 작품에서는 도적이 수도사에게 총을 들이대고 어깨에 짊어진 물건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장면이고, 나머지 3 점의 작품에서는 도적의 총을 뺏은 수도사가 총신으로 도적을 쓰러뜨리고 도망치려는 도적에게 발포, 도적을 체포한다는 장면을 연속적으로 그렸다. 격렬한 필촉을 구사, 색면과 동세(動勢)를 약동감 넘치는 분위기로 생생한 현장감(現場感)을 표현해냈다. 이 사건이 있은 2년 후 발발한 항불(抗佛)전쟁에 즈음하여 이 6점의 시리즈 작품에서 고야의 시국을 꿰뚫는 영감을 감지할 수 있다.


순교?

1649년 3월 16일 두 프랑스인 선교사가 캐나다의 이로구오 족에게 체포되어 순교했다 한다. 고야가 이 사건을 발상원으로 하여 나시체(裸屍體)를 토막 내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제작한 시기는 항불 전쟁 중이었다. 고야가 1 세기 반이나 지난 훗일에 이러한 사건을 작품으로 다룬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념에 사는 어려움이나, 정의와 불륜, 인간 본연의 본질성과 야만성에 대한 통찰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고야는 이러한 테마로 시사적인 많은 작품을 그렸다. 반역이나 자유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듯 하다.


거인

1812년 고야 재산 목록에 기재되어 있는 작품. 폭풍 직전으로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 구름 위에 거인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두려움에 떠는 듯 역마차 떼들은 공포에 싸여 사방으로 도망치는 듯하며, 전면에 노새 한 필이 무심히 서 있다. 고야가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는 모르나, 노새를 스페인어로 바보 또는 얼간이라고 한다. 이 그림에 대한 해석도 구구하다. 페르난도 7세에 대한 풍자적 표현이라고도 하고, 거인을 나폴레옹 또는 전쟁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하며,그 반대로 거인이 군중을 뒤로 방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거인을 스페인의 수호신(守護神)으로 보는 설도 있다. 어쨌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고야의 상상력의 비약을 말해주는 작품이리라.


사투르노

앞서 소개된 자화상을 그린 4년 후 고야는 빈사의 중병에 빠졌었다. 14 점의 작품을 제작했으며, 이 시기의 그림은 '검은 그림'이라고 불린다. 고야는 대단히 음침하여 공포와 억압을 괴물로서 상징하는 표현주의적 작품을 2층 건물 벽면에 가득차게 그렸다. 이 그림도 그 집 식당 벽면에 그린 작품의 하나이다. <사투르노>는 하늘의 지배권을 자식들에게 빼앗기게 될 두려움으로 5인의 어린 자식들을 차례차례 먹어서 죽여 버렸는데, 이 고대 신화의 신은 토요일에 마녀들의 집회를 연다는 신이기도 하다. 공포, 절망, 분노 등을 상징하는 듯한 처절한 화면 구성은 놀랍다. 고야의 정신적.내면적 파동이 이러한 표현주의적 작품을 표출한 것이다.


聖베드로

고야가 조국 스페인을 떠나 프랑스에 망명하기 직전에 그린 작품,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천국의 열쇠를 바위 위에 놓고 기도하는 성 베드로 상이다. 간결한 구도에 강력한 매스(흙덩어리)로써 조형된 성인상은 마치 움직 일 수 없는, 장엄하며 엄숙한 느낌을 갖게 한다. 성 베드로 상의 표정에서 애소(哀訴)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무엇을 말해 주는 것일까? 인간의 본질을 형상화한 까닭이 아니겠는가. 황토색, 청색, 흑색 등의 제한된 색감이 가진 상징성, 자연 보다도 정신력과 의지력으로서 긍정할 수 있는 화면의 리듬을 감지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엘그레코 작품의 사도상(使道像)의 세계와 비슷한 점이 있다.


마뉘엘 오소리오 데 츠니가

이 가련한 소년은 한 때 고야의 후원자이었던 아루다미라 백작의 둘째 아들. 고야는 인간의 추악상에도 극히 민감했지만, 순수하며 깨끗한 존재에 대해서도 무조건 반응을 보였던 인정 많은 화가였다.어린이 본래의 청순함과 가련함을 존중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 가련한 소년을 하나의 실재자로서 표현했다는 점에서도 그의 높은 심성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은 고야의 초기 초상화의 특징적인 좋은 예이기도 하다. 밝은 빨간색의 대담한 색조와 명쾌한 윤곽은 당시 신고전주의의 표현 양식의 영향이 나타난 작품이다.


호세 피오 데 모리나

고야는 보르도에 옮긴 다음에도 죽음 직전까지 초상화를 계속 그렸다. 이 작품도 그 중의 하나이며, 고야 최후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고야의 연구가 호세 구데 올은 이미 완성의 작품에서 고야의 제작 과정을 엿볼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즉 처음 단계에 있어서는 객관적. 자연주의적 태도로 모델에 최대한 담았다. 다음 단계에서 형태를 단순화하는 동시에 촉각적 가치와 모델의 전반적인 표정과 내면의 성격이나 심리 상태까지 꿰뚫는 깊은 관찰로서 표현하고 있다. 이 초상화는 미완성 이기는 하나 82년간의 고야의 생애를 통하여 가장 인간 본연의 자태를 추구한 고야다운 작품이라 하겠다.


발코니의 마하들

난간 안쪽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며 앉아 있는 마하들, 배후에서 지켜보는 그늘 속의 사나이들, 등장 인물들은 밝은 가르든 시대와 동일하나, 이 그림에서는 온화하며 밝은 자연스러움은 보이지 않는다. 어둠침침한 벽과 난간의 제한되어 있는 공간 속에 4인의 남녀가 크게 클로즈업되어 있다.청각을 상실한 후의 고야가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것, 즉 인간의 드라마의 추구자로 변해진 것을 나타낸 작품이다. 중기 이후의 일대 특징이 되는 갈색과 흑색의 주조색이 화면의 심도(深度)를 나타내고 있다. 인상파 시대의 대가 마네의 작품 <발코니>의 발상원(發想源)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죽음이 올 때까지

죽음에 직면한 피골이 상접한 노파가 화려한 신부 옷차림을 하고 온통 다이아몬드를 몸에 걸친 추괴(醜怪)한 모습으로 해골같이 생긴 시녀가 내민 거울을 보고 있다. 그 거울 뒷면에는 '어떻습니까?'라고 씌어져 있다. 두 사람의 뒤에서는 빗자루를 치켜들고 금방 내려칠 듯한 모습으로 서 있는 날개 돋친 염라대왕의 사자가 습격하려는 절박한 순간을 볼 수 있다. 노파가 머리에 얹은 화살표의 다이아몬드는 <카를로스 4세 가족>이란 작품의 왕비의 머리에 꽂은 물건과 같다. 그 물건은 재상인 애인 고도이에게 증정한 것이라 한다. 노파의 빨갛게 그려진 눈을 음란한 욕망을 상징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 시대상을 풍자한 고야의 비유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작품의 회화성에 있어서도 우수한 작품이다.


두 마술사

검은 그림 시리즈 중에 가장 작은 작품. 귀머거리 집 2 층 살롱 벽에 그려진 작품이다. <스프를 먹는 2명의 노인>이라고도 불린다. 1828년의 목록에는 <2인의 마술사 >로 기재되어 있다. 노파가 스푼을 들고 웃음 짓고 있으며, 오른편의 해골 같은 노인은 두터운 책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다. 지식인을 조소하는 듯도 하고, 물질주의를 비판하는 내용인지도 모르며, 남녀나 부부 관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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