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gement |고전전문가와 기자가 분석한‘관중(管仲)의 리더십’
길고 긴 번역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다. 스승인 고 권우 홍찬유 선생은 뜻밖에도 ‘관중’을 공부해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주군인 제환공을 패자 지위에 올려놓고 춘추시대 열국을 평정한 사나이. 유학을 평생의 가르침으로 삼아온 스승의 입에서, 유가에서 전통적으로 배격하는 관중이라니….
고개를 갸웃했다. 노자, 장자, 묵가까지 제자백가 사상은 얼마나 풍요로운가. 하지만 읽으면 읽어볼수록 원전의 문장 하나 하나가 가슴에서 꿈틀거렸다. 매주 서울역 인근에 있는 대우학술재단에 모여 유학 사상을 집대성한 ‘성리대전’을 강독하던 학자 네 명이 전격 의기투합했다.
번역은 마치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작업에 비유할 정도로 고단했다. 무엇보다, 문장이 난삽했다. 각자의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학자들이지만, 의미가 턱하니 막힐 때에는 한학자들을 찾았다. 초역에만 2년 이상이 걸렸고, 작년 말 관중은 드디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무려 7년여의 길고 긴 작업이었다. 그동안 스승은 타계하고, 정부는 국민의정부에서 참여정부로 바뀌었다.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값만 무려 5만원. 사실, 잘 팔리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고사성어에나 등장하는 패도 정치가로 알려진 관중에 누가 관심이 있으랴.
하지만 ‘관중’은 뜻밖에도 출판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서울시내 주요 대형 서적의 고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올라있다. 정해년 새해, 수천년 전 중국 대륙을 풍미하던 이 남자가 한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 17일 오후 인천 경인교대에서 만난 공동번역자 고대혁 교수에게 같은 질문을 해보았다.
맹자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고 했다. 우리말로 풀어보자면 먹고 살 기반이 있어야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생긴다는 뜻이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수출 3000억달러를 돌파했지만, 체감 경기는 여전히 바닥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춥고 어둡다.
“관자에게서 21세기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의 원형을 본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 교수는 기자의 이러한 가설에 순순히 동의를 한다. 관중은 말 그대로 민생문제 해결을 가장 중시하던 정치가였다.
간웅으로 널리 알려진 조조가 관중의 사상에 심취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젊은 시절, 조조는 첫 임지에 부임해 일을 낸다. 당시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던 수백여 개의 사당을 모조리 허물어버리는 대담한 행동을 했는데, 미신보다는 백성들의 민생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사고 덕분이었다.
관중은 특히 갈등을 풀어내고, 비전을 제시하며, 인재를 발탁하는 일에 발군이었다. ‘말을 대신해 달리지 말고, 새를 대신해 날지 마라.’ 관중이 남긴 인재 운용의 첫 번째 원칙이다. 지도자가 일을 맡기고도 시시콜콜 간섭하며 달리는 말에 발길질을 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는 뜻이라고 고 교수는 지적한다.
관중은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다른 인재를 추천하는 데 결코 망설임이 없던 배경이다. 진시황의 총애를 잃을까 두려워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동문 한비자를 모함해 죽여버렸으나, 자신도 훗날 비슷한 운명에 처하는 이사는 관중을 배웠어야 했다.
일을 맡기고 시시콜콜 간섭하면 득보다 실 많아
이와 관련해 이명환 전 동부그룹 부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른바 ‘시스템 경영’의 성패는 경영자의 용인관(用人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고 토로한 바 있다. 제환공은 관중 사후에 간신들을 등용했다 결국 죽어서도 한동안 관속에 들어가지 못하는 비참한 운명을 맞아야 했다.
관중에게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리더십은 시스템의 중시다. 문제를 푸는 데 한 사람의 독단을 배제하고, 많은 사람이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의견을 보탤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 유가에서 이상향으로 통하는 요순시대를 보자. 당시에도 후계자 그룹간의 암투, 가뭄이나 홍수로 인한 민생고는 골칫거리였다.
하지만 문제를 푸는 방식에서 요순임금이나, 관중은 여느 지도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엇보다, 원탁회의를 열어 참석자들과 머리를 모았다. 특히 공은 언제나 자신이 발탁한 인재에게 돌렸으며, 과는 자신의 몫이었다. 구성원의 장점을 중시했으며, 한 가지 단점으로 섣불리 이들의 능력을 폄하하지 않았다.
관중은 천하에 신하가 없음을 걱정하지 말고, 신하를 적절히 쓰는 군주가 없는 것을 걱정하라고 했다. “사실, 너무 이상적인 얘기들이 아닐까요” 고 교수가 제자들에게서 자주 받는 질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관중의 리더십이 이제는 시대착오적인 것일까. 세계적인 검색 기업인 구글은 조그만 벤처기업 시절부터, 사내 인사평가위원회를 통해 인재를 발탁했다. 사내추천에만 의지하다, 자신의 입지를 우선시해 A급 인재를 추천하지 않는 직원들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관중은 마굿간 우리를 구성하는 목재의 사례를 들며 이러한 이치를 이미 설파한 바 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2400여 년 전이다.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져보았다. “대선 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인물들 가운데 현대판 관중이 될 수 있는 인물이 있겠습니까. ”고 교수는 재치 있게 비켜간다. “인재는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라고 해서 관중 만한 인물이 없겠습니까. 다만 이들을 알아볼 수 있는 국민들의 역량이 문제가 되겠지요.”
박영환 기자(blade@ermedia.net) |
출처 : 이코노믹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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