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變種) 바이러스
멕시코에서는 81명이 죽고
25개국에는 사스보다
빠르게 전파(傳播)되어
2,400여명이 감염의심을 받고 있다.
동물끼리만
전염된다는 3단계가 이미 넘고
이제 인간 대 인간이 감염(感染)된다는
4단계를 코앞에 두면서,
수천만 명이 죽었던
스페인독감과 같은 대재앙이
또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사람들은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다.
겁에 질린 지구촌은
백신확보에 사활(死活)을 걸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
더 감염된다고 하니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병독성 면에서는 강력(强力)하지는
않다는 것이 밝혀져
안심했는데, 40대 어느 여성이
확진환자로 밝혀지면서
신종 바이러스는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겨울철로 접어드는
남반구로 옮겨 가 퍼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남미지역 국가들이 일제히 긴장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구체적으로
현실 속에서 대유행단계에 돌입한다면,
세계 인류의 3분의 1이
감염될 수 있다고 하니 어찌
기우(杞憂)라 하지 않겠는가.
이젠 바이러스는 어릴 적 막연하게
공포심을 조장했던 화성인처럼
어떤 괴물체보다 인류에
가장 무서운 존재(存在)가 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바이러스 독감으로
연간 3만 명이 죽어 가는데,
계속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나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불과 30년 전에 죽었던 사람에게
바이러스가 인간을
공격(攻擊)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우린 그동안 바이러스하면
컴퓨터 바이러스정도만 알았는데,
지금은 빅뱅바이러스에서
동반자살 바이러스까지
순식간에 전염병처럼 옮겨가는 것으로
바이러스 단어를 사용한다.
현대사회는
모든 시스템이 연결되어 있기에
금융 쓰나미가 순식간에
전 세계를 덮쳤듯이,
미세한 충격이라도 그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超越)할 정도로
빠르게 번져나간다.
헌데 이러한 병균적인 바이러스보다
사실 더 치명적인 것은
잘못된 사고(思考)의 바이러스에 있다.
조엘 오스틴이 말했듯이,
싸구려 소프트웨어나 잘못된 정보가
입력된 컴퓨터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듯이,
오염(汚染)된 사고와 자존감은
무서운 생존 경쟁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불안과 초조를 벗어날 수 없게 하며,
현미경에도 잡히지 않는
근심과 두려움이라는 악성바이러스는
인생 곳곳에 장애(障碍)를
주고 있다.
각종 최첨단 통신장비에도 불구하고
서로 소통(疏通) 되지 않는
현대인들은 가슴마다
분노가 가득 차
한 순간에 익명의 다수에게
그대로 전가시키는 병적인 심성을
소재로 하는 영화가 속속
개봉되고 있는 것은 상업성을 떠나
이 시대를 향한 신의 음성일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러한 바이러스를
대처(對處)하는 길은
무엇일까.
어느 의사가 말하길
바이러스를 죽이는 가장 좋은 약은
청산가리나 양잿물이라고 한다.
사람이 죽어야 바이러스도
죽는다는 것이다.
생명(生命)이 있는 한
바이러스만은 죽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이러스에 대한
치료는 건강한 생명력을 키워서
바이러스가 활동할 수 없게
만드는 길이다.
바이러스가 내 몸에 침투하면
내 몸과 바이러스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결과는
강(强)한 쪽이 이기는 법이다.
하지만 육체가 아무리 강해도
육체는 정신의 지배를
받고 있기에,
정신이 바로서야 육체를 이기고
그 정신력은 건강한 생명력
이라는 토대 위에서
생성된다.
건강한 생명력(生命力)이란
믿음을 통해
끊임없는 긍정적인 바이러스가
만들어지면서 왕성해진다.
둘째는 변종(變種)바이러스의 출현이다.
이번 감기도
변종(變種) 바이러스로 처음에는
돼지 바이러스인줄 알았지만,
돼지나 사람, 조류 인플루엔자 유전자를
모두 가지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라고 한다.
지금까지
모든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빈번한 유전자 변이를 통해
다양한 독감을 만들어내듯
바이러스의 변종은
새로운 병(病)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이렇듯 새롭게 발견되는 독감뿐 아니라
광우병이나 생각지 못했던
질병들은
동물 사육과정이나
지구온난화를 통한 환경변화 그리고
고령화 시대 속에 노약자들의
취약(脆弱)점들이
변종 바이러스를 더욱
부추겼을 것이다.
이렇게 바이러스도 여러 환경적
변화로 인해 변종이 생겨나듯,
사람도 변화하는 환경에 미처
적응하지 못하면서
변종(變種) 인간이 생겨나고
있는 일은 변종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일이다.
최근 상영되는 영화 ‘박쥐’에서도
정의와 평화의 상징으로
존경받던 신부가
다른 사람의 피가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상황 속에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輸血)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그 피로 인해
가까운 친구의 아내와
위험한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 자체가
보통사람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는 변종 영화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 내용이지
영화 자체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신부가 알 수 없는 피로
목숨은 건졌지만
삶은 변종(變種)이 되었듯이,
현대인들은 돈과 명예를 위해
수없이 수혈 받지만
삶은 그 신부처럼 더욱 이질적으로
망가지고 있음에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이미
세상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어떤 분이 말했듯이,
현대인들은 편리하지만 정화되지 않은
우물물만 퍼마시면서 육체도
정신(精神)도 한 없이 부패해지며
이상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아니 인생이 어찌된 셈인지
유일한 낙(樂)이
텔레비전이란 말인가.
아무리 더러운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이미 괴질 중의 괴질이
아닐 수가 없다.
이렇게 누구도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길은
비록 더딜지라도
샘물을 퍼 마셔야 한다.
너무나 교과서적인 말 같겠지만,
이럴수록 더 진실해야 하고
정직(正直)해야 한다.
아무리 웃으며
손을 내밀어도 거짓은
사람을 감동 시킬 수 없다는
이철환 님의 말처럼
거짓은 어디까지만 거짓일 뿐이다.
주여,
변종(變種) 바이러스도
두렵지만,
분노와 미움
그리고 판단이라는
마음의 쓴 뿌리와 같은
바이러스는
더 무섭습니다.
날마다
당신의 생명으로
세상적인 바이러스를 이기고
좋은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자가 되게 하소서.
2009년 5월 10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립니다.
사진작가ꁾ투가리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