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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필요한 것

유앤미나 2008. 4. 2. 14:10



사막(砂漠)에서 필요한 것


이제 식목일은 공휴일(公休日)도 아니고
내가 또 직접 나무는 심지 않아도
누군가가 나무를 심기에
기분 좋은 날이다.

나는 작년 식목일에
중국 마오우쑤 사막에 20년 동안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었다는 특집 방송을
보면서 내내 뜨거운 눈물이 고였었다.

이번 주 메일 자료를 위하여
그 영상물을 찾아서 다시 보았는데,
그 때와는 또 다른 감동(感動)이 밀려왔다.

황사(黃砂)의 진원지라는 그곳은
사람은커녕 풀 한 포기도 살수 없는 환경임에도
두 사람은 오늘의 기적을 이룬 것이다.

원래는 그 곳도 푸른 초원이었지만
무차별 벌목과 함께 기온 상승까지 겹쳐
사막(砂漠)으로 변했던 곳이다.





1985년 부인 인위쩐이 시집갔을 때,
그 곳은 사막 한 가운데 사람의
발자국조차 찾을 수 없는 죽음의 땅이었다.

그녀는 다시 집에 돌아가려는 마음 대신에,
나무를 심어 사람 사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결단을 남편과 함께 품게 되었다.

그때부터 부부의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되었다.
새벽 3시에 집을 나서 70리길을 걸어가
묘목 상에서 종일 일한 대가로
얻은 나무를 가져다가 사막에 심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무리 정성을 다해 물을 주어도
이글거리는 태양과 모래바람 앞에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그럼에도 인위쩐은 포기하지 않고
실패를 반복하기를 7여 년,
마침내 사막에 나무 심는 방법을
알아내어 조림 성공률을 자꾸만 높여만 갔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나무를 심어 사막을 숲으로
만들어 갈 때에 우연찮게 어느 날 기자를
만나면서 기적 같은 이 일이 알려지면서
그녀는 졸지에 사막의 전사(戰士)가 된 것이다.

정부 지원금이란 한 푼도 없이
여의도보다 10배나 넓은 땅을 20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나무를 심어
오아시스로 만든 인위쩐은 연약(軟弱)한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교훈하기에
두 번째 보면서도 나는 목이 메었던 것이다.





그녀가 사막에서 숲을 만들어 가는 과정들이
인생이라는 숲을 만들어가는 우리와
많은 공통점(共通點)이 있었다.

먼저 사막과 광야(廣野)인생에서는
수많은 장애요소들과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사막에서 숲을 만든다는 자체가 무모한 일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몇 가지 현실적인 장애요소들을
이기지 않고서는 숲은커녕 생존하지도
못하고 의미 없이 죽었을 것이다.

먼저 바람이라는 장애(障碍)다.
바람은 시원하다는 좋은 느낌이 있지만,
사막에서의 바람이란 천지를 흔드는
악령(惡靈)과 다를 바가 없다.

온 천지는 바람에 밀려온 모래가 쌓여
매시간 마다 눈처럼 치워주어야 할
정도로 시계(視界)는 어두웠다.

결국 그 바람과 싸우느라 두 아이를 잃었고,
남편과 아들은 폐렴에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모래바람이 거셀수록 그녀의 투쟁심도
더욱 강해져 아들을 집 기둥에 묶어놓고
사막으로 들어가 나무를 심었다.

이렇게 바람과 싸우며 나무 심는 일도
힘들었지만 그 나무에 물주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 자체였다.

어린묘목을 심은 뒤에 죽지 않게
하려면 2-3일에 한 번씩은
밤을 새워가며 물을 주어야만 한다.

2남 1녀를 둔 그녀는 큰아들을
임신한 상태에서도 물을 주러 다니다가
결국 조산(早産)하기까지 했다.

이렇듯 바람과 싸우며 나무를 심고
물을 주는 일도 고통스러웠지만,
외로움이라는 또 다른 적은
사람으로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어느 날 사람이 너무 그리워 어떤 남자가
남기고간 발자국 위에 큰 그릇으로
덮어 놓았다가 외로울 때마다
몇 번이고 열어보았다는
고백 앞에 고스란히 그 애처로움이
내게도 밀려와 뭉클한 가슴은 눈물로 이어졌다.





사막과 광야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람이 많이 분다는 것과 물이 없다는 것,
또 사람이 없어 외롭다는 점이다.

그녀가 사막을 오아시스로 만들었듯이,
인생도 광야에서 옥토를 만드는
여정(旅程)이 아니겠는가.

광야에서 바람은 당연한 일임에도
우리는 바람을 만날 때마다 불평하지만
그 유익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농부는 태풍만 없으면 풍년이 될 것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바람이 뿌리를
튼튼하게 하고 저항력을 길러주고 있는
고마운 필수자양분이다.

사실 인생의 바람이란 반응(反應)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바람 부는 방향에 서있으면 역풍이지만,
그 바람을 등지면 순풍(順風)이 된다.

무엇보다도 바람은 민들레 씨처럼
새 생명을 낳게 하는 도구라는 점이다.

바람이 불면 춥고 고통스럽지만
홀씨처럼 넘지 못할 땅이 없기에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바람은
자신의 울타리를 벗어나 창성(昌盛)케 한다.





다음으로 사막과 광야에서
품어야 하는 것은 들풀과 가시덤불이다.

그녀가 사막에 나무를 심는 방법은 간단하다.
버드나무를 1미터 크기로 잘라내어
구덩이를 판 후 나무를 묻고
꾹꾹 밟아 주고 매일 물을 주면 된다.

보통 평지에서야 이런 일은
당연하겠지만 사막에서는 바람 때문에
물을 주어도 뿌리 내리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그녀는 어린 묘목이 살 수 있는
토양(土壤)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하다가 풀씨가 유용함을 알고서,
지문이 닳도록 풀씨를 털어내어
모래에 뿌리는 무가치한 일을 수없이 했다.

그런데 문제는 풀씨가 뿌리를 내리고 살아날
확률은 만분의 일도 안 될 정도로
폴조차 생존율이 낮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풀이 먼저 싹이 나야만 진짜 묘목들이
모래가 날지 않고 뿌리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풀씨를 모래 속에 묻고
싹이 나야하는지를 그녀는 계산하지 않았다.

마치 모래 속에서 겨자씨를 찾아내듯이,
풀씨를 뿌렸는데 넓은 사막에
서서히 생명(生命)이 움트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땅에서 잡초(雜草)란
그렇게 애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자란다.
또 사람들은 그런 풀씨는 잡초로
알고 무조건 뽑아버리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모래사막에서 풀씨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았기에
역경 속에서도 풀씨에 열정을 다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관점(觀點)의 차이일 것이다.

밤에 운전(運轉)할 때 밖을 보기위하여
실내등을 끄듯이 인생에서도
고통가운데 운전할 때
숲을 보느냐 나무를 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아프리카 초원(草原)은 아름답지만
숲 속으로 들어가 보면 나무속에 기생하고
있는 수많은 동식물과 함께 가시덤불뿐만 아니라
늪지대까지 많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존중(尊重)받는 사람의 인생 숲에도
멀리 볼 때는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면
남이 상상할 수 없는 잡초(雜草)와
외로움 그리고 가시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아무리 선한 일을 한다 해도
장애(障碍)요소는 반드시 있는 법이다.

아니 그러한 장애들이
그 사람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만든 중요한 자원(資源)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기에 그 모든 역경 속에서도
사막이 오아시스로 변(變)하기까지
흔들리지 않고 견뎠던 것이다.

이제 그 사막은 숲이 되면서
우물이 생기고 길이 뚫리면서 사람들이
돌아오는 기회(機會)의 땅이 되었다.

세상에 기적(奇籍)이란 있을 수 없다.
다만 아무 희망이 없는 상황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최선(最善)을 다하는 마음 자체가
기적이요 그 분의 긍휼한 사랑일 것이다.





주여,

광야(廣野) 같은 세상은
이미 마음들이
굳어져 사막보다 더 말라버렸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욕심과 시기 그리고 거짓의
황사(黃砂)는 끊임없이
날아들기에,

이제라도
인생의 숲에 겸손하게
나무를 심게 하소서.

그러나
그녀처럼 잡초는 물론이요,
가시덤불도 함께
품게 하소서.

2007년 4월 8일 부활주일에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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