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을 때...
내 작은 꿈은 이 주간메일과
큰 딸 시(詩)를 함께 엮은 책을 내는 일이다.
오늘 문득 딸이 그동안 써 왔던 시를 정리하러
아이들 방에 들어가 보니 제일먼저
‘자살’(브로니쉬 작)이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다양한 책을 섭렵하던 딸에게
최근 연예인들의 자살이 촉매역할을 했는지,
의외의 주제(主題)인 책을 읽고 있었다.
가수 유니 씨 사건이 아니더라도
자살은 최근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로 등장하여 사람들을 긴장하게 한다.
현재 우리는 OECD국 중 2년 연속 자살률이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지금도 하루에
약 7백 명이 죽어가며 20, 30대에서는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할 정도다.
대한민국은 어느 덧 ‘자살 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가고 있지만,
사회 통념(通念)상 아직도
위급한 사회적 질환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자살(自殺)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는
독특한 행동양식이지만 자살하는
사람들에겐 몇 가지 공통점(共通點)이 있다.
자살 기도(企圖)는 여성이 높지만
자살 성공은 남성이 높다거나,
또 혼자 사는 사람과 나이가
많아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특징들이다.
자살하는 원인도 대상에 따라 다르지만,
청소년들은 가정불화와 학교 부적응이 많지만
성인(成人)들에게는 원인이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자살자 중 80%는 자살하기 전,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울증(憂鬱症)은
희망과 즐거움을 빼앗아가면서
소극적이고 부실한 사람으로 바꾸어 놓는다.
보통 15%가 그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보는데,
최근에는 전업주부들이 나이는 먹어 가는 데
해놓은 게 없다고 의기소침해 하며
우울증에 빠지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우울증 환자들은 덧에서 벗어나려고,
쇼핑과 분에 넘치는 사치를 부려보지만
허무함을 달래지 못하고 또 다른
중독에 빠지면서 대인 기피(忌避)증과 함께
공격적인 사람으로 돌변하게 된다.
이러한 우울증 증세들은 하루 이틀에 생긴
질환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였던 것인데,
먼저 과도한 심적 부담(負擔)이
우울증의 첫 번째 요소가 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로부터 인정받길 좋아 하나,
그 기대에 못 미칠 때는 고스란히 부담으로
다가와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이은주 씨도 노출연기 부담과 함께
연기에 대한 과도한 욕심,
그리고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 등에
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극한 길로 갔던 것이다.
우리 큰 딸도 올 해 고3이 되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열심히 공부해야하겠네!’라는
말이 얼마나 부담이 되었던지 얼마 전에는
자기가 먼저 선수(先手)를 쳤다.
‘공부 애기는 하지 마세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고3’이라는 위치가 그렇게나
부담이 되었다 싶어 내심 깜짝 놀랐다.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의 기대나 심적 부담은
자신을 채찍질하는데 약(藥)이 되겠지만,
그 이상의 부담을 안겨 줄 때는
고스란히 우울증이 되어 극단으로 치닫기도 한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든지
세상천지 부담 없이 일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부담들이 자신을 성공케 하는
요소가 되게 하는 것은 자신이 선택해야 할 일이다.
링컨도 우울증으로 두 번이나 자살을 기도했지만,
자신의 상황을 바로 인식하고 그 감정에서
벗어나려 죽기 살기로 일한 것이
그를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어차피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 줄 수도 없고
또 생명(生命)은 하나 밖에 없기에,
어떤 일이 죽고 싶을 정도로
부담이 된다 해도
기왕 해야 할 일이라면,
되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어
자신과 환경을 극복(克復)하여
프로처럼 즐기며 일할 때 자신도 모르게
우울증이라는 담을 넘게 될 것이다.
둘째로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아질 때
사람들은 우울증(憂鬱症)에 빠지기 쉽다.
헤밍웨이의 우울증은 누구나 잘 알지만
처칠수상이나 나폴레옹도 우울증 환자였다면
사람들은 다소 의아해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성공(成功)을 했음에도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실패(失敗)로 인해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은 오늘의 현실이 증명해 주고 있다.
한참 일해야 할 중년들이 줄줄이 실직(失職)되고,
졸업을 해도 취업(就業)할 곳이 없고,
경제적 여건은 IMF때보다
더 어려워져만 가니 특별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울증 걸리기에 딱 좋은 때가 아닌가.
그렇지만 환경이 어렵다고,
내 생각대로 무슨 일이 잘 안 된다고
우울증에 걸린다면 아프리카 사람들에겐
우울증이 아니라 빨리 죽어야 마땅할 것이다.
문제는 내 생각과 다른 일도 문제지만 그보다는
자기집착(自己執着)이라는 아집에 있다.
집착(執着)이란 그것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는
자기감정이요 자기 확신(確信)이다.
인생은 분명 빈손으로 왔건만,
살아가며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주어진 환경에 감사(感謝)치 않다가 그 환경에
변수가 생길 때는 스트레스를 받으며
스스로가 불행(不幸)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일이 있을 때,
일장춘몽(一場春夢)같은 세상에서
하루라도 빨리 잠에서
깨어나 현실을 바로 직시해야 한다.
어제까지 사장이었던 사람이 부도가 났다면
모든 아성과 집착에서 벗어나
차부터 없애고 가장 낮은 곳부터 새
출발하는 길이 자신과 가족이 사는 길이다.
물론 화려한 과거에서 벗어나는 일이란
쉽지 않지만 생각에 따라서는
금방 해결(解決)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마치 아이들이 크면서 유치한 놀이에서
벗어나듯이 그동안 자기 우리에 갇혀
그 곳을 벗어나면 죽는 줄 알고
유치하게 살았지만 현실적 아픔을 통(通)해,
자아를 벗어나 이웃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더불어 삶의 소중함이 무언인지를
알면서 새로운 가능성(可能性)과
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갈등(葛藤)이 해결할
방법이 없을 때 또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자살은 모두 달라 보이지만
이면에는 이미 오랫동안 울분을 발산하지
못하고 속으로 삭이는 마음에 상처가
있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무리 큰 댐이라도 담수 량에 맞추어
물을 빼내지 않으면 어느 순간에 무너지듯이,
자신을 알고 적당히 분노와 스트레스를
발산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칠 때,
현실과 정 반대가 되는 가상(假想) 속의
나라를 건설하면서 순식간에
자신은 이미 죽었다고
판단하고 비현실 속으로 뛰어 들어가므로
그들이 절망하는 모습을 즐기며,
자기주장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갈등(葛藤)에 대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특별히 부모로부터 형성된 경우가 많다.
유아 적부터 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늘 책망만
받은 것이 가슴에 맺혀 성인이 되어서도
남을 용납하지 못하고 본능적으로
자기방어(自己防禦)라는 뿌리가 내린 것이다.
자신은 언제나 그 껍질 속에 숨기고
타인과는 더 큰 벽을 만들며
피상적인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며
회의(懷疑)와 절망 속에 살아가지만 하루라도
이 관계를 벗어나야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다.
사람은 누구나 대인관계에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데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이 올무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상대의 입장(立場)이란
인간의 본질(本質)을 먼저 안 후에
무엇보다도 그 사람의 형편을 알아야 하는데
곧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인지,
또 개인의 사정을 정확히 알아야만
상대를 이해하고 좋은 관계를 맺을 수가 있다.
암(癌)도 치료만 잘하면 고칠 수 있는데
하물며 인간관계가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인생살이에 수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문제가 왔을 때 답은 분명히 있다는 확신,
시험(試驗)은 반드시 지나간다는 확신
그리고 어떤 갈등(葛藤)이든지
극복만하면 엄청난 축복이 기다린다는 확신들이
두려움을 사랑으로 대체하면서 치유의
역사(役事)가 시작된다.
주여,
삶이 힘겨울 때 새벽시장에 가보고
답답할 때는 기차여행을,
죽고 싶을 땐
병원에 가보라는 어는 글처럼
자신을 벗어난 여유(餘裕)가
상대를 용납하고
관계의 스트레스를 이기게 합니다.
사람들은
세상과 싸우느라,
진이 빠져 병(病)이 들어
죽고 싶다고 노래를 부릅니다.
저도 그 소리 하지 않도록
세상과 싸우기 전에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하소서!
그래야
진짜 죽었을 때,
당신 앞에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2007년 2월 4일 첫 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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