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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남자

유앤미나 2008. 4. 1. 14:12



일하지 않는 남자(男子)


지난 해 ‘이유 없이 놀고 있는 남자’가
처음으로 백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들의 특징(特徵)은
한참 일해야 할 젊은 세대와
고학력자(高學歷者)라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그들도 처음부터
놀 생각은 없었겠지만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다 횟수가 거듭되자
구직(求職) 자체를 포기하고
은둔생활을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일자리 찾기가 어렵다 해도
이유 없이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재정적 여유가 있는 이들의 사치가 아니겠는가.

물론 어떤 사람은 돈은 없지만 아무데나
들어가 백만 원 이내의 돈을 받고 일한다는
자체를 구차하게 여겨 포기하는 사람도
역시 이유 없이 노는 그룹에 속한다.





놀고 있는 이유가 있든 없든 세상
어떤 부모가 성인(成人)이 되어 그렇게
놀 줄 알고 공부시킨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니 밑 빠진 독에 물 붓는다고
졸업을 해도 구직이 어려워 또 기약 없이
공부해야한다는 현실은 본인과 가족들도
답답한 일이지만 그런 사람이 늘수록
사회 구석 곳곳에 스며드는
무기력증 증세는 더 무서운 사회적 악이다.

특별히 저 출산과·노인인구 증가가 심각한
우리는 경제활동에 참여한다는 자체가
국가성장력과 연관된 일이기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사실 실업자(失業者)증가로 인한
사회적인 여러 난제들보다 더 심각한
개인적(個人的)인 피해는 당장에는
별 느낌이 없는 것 같지만 더 큰
폭풍을 몰고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첫째는 적응력(適應力) 부재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오랫동안
일하지 않으면 조직사회에 대한
적응력 자체를 잃어가게 된다.

6개월 정도만 노숙(露宿)자로 지내면
몸도 생각도 굳어버려 설령 후에
직장을 구해도 일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잠시 동안의 백수가 잘못하다가는
평생(平生) 백수도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일하고 싶어도
일할 곳이 없다고 불평(不平)하지 말고,
수입과 상관없이 아무 곳이나 들어가 일을 해야
돈과 비할 수 없는 조직과 일에 대한
적응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는 삶이 왜곡(歪曲)되어 간다.

인간은 원래 일할 것을 전제하고
모든 기능을 부여받고 지음 받았는데,
일을 거부(拒否)하면 멀쩡한 곳도
문제가 터지기 시작한다.

사람이 일을 하지 않으면,
먼저 삶의 리듬이 깨지면서 없던 병도
생겨나고 또 생각도 삐딱해지면서
사람이 자꾸만 게을러진다.

그러면서도 일 하지 않는 자신을 합리화
시키려 온갖 변명(辨明)을 하다 보니,
가족과 이웃과의 관계도 멀어지며
목적 없는 수도사가 되어간다.

더 큰 문제는 그럴수록 본인 스스로가
어떤 자긍심(自矜心)도 느낄 수 없게
되므로 일 하지 않는 자신이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은 당연한 결과다.





그러므로 일이란 먹고살기 위한 호구책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진리(眞理)가
담겨있는 통로라는 사실이다.

첫째로 일 속에 생의 의미(意味)가 있다는 진리다.

나는 지금까지 부자(富者)라고
일을 안 하고 부모 유산만 갖고
놀고먹는 이상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만약에 혹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졸부(猝富)’일 뿐 진정한 부자는
절대로 될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왜 재벌들이 더 열심히 일을 하는가.
또 자식들에게 혹사하리만큼
밑바닥부터 훈련시키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돈과 비할 수 없는 인생에서 가정
중요한 일에 대한 의미를 깨우치기 위함이다.





일이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신성(神聖)한 선물이므로 사람이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할 일 중
하나가 바로 일의 의미를 아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삶의 원리를 아는 사람은
어려운 인생의 파도를 만나도 좌절하지
않고 넉넉하게 이겨나갈 수가 있다.

오히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 일을 통해 자신은 생의 희열을 느끼며,
스스로 자신은 세상에서 가치 있는
존재임을 확인받는 기회가 된다.


하지만 일의 의미를 알지 못한 사람은
사사건건 불평불만이 일을 대신하고 있다.

땀을 요구하는 지극히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면서 사춘기아이처럼
모든 일에 삐딱 선을 탄다.

자신의 능력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며 원망(怨望)을 토해내며 마치
인생을 불행하게 살기로 작정한 사람모양
모든 것을 유기(遺棄)한 채 살아간다.





둘째로 일의 양면성(兩面性)에 관한 진리다.

계속해서 일하지 않고 노는 것만큼
힘든 지옥(地獄)도 없을 것이다.

드라마에 보면 시골 노인이
서울 아들 집 아파트에 온 후,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시골로 다시 돌아가는
이유는 며느리의 냉대가 아니라 그곳에는
자신이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일하던 사람이 일을 멈추면,
스스로 밥만 축내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자책(自責)감과 더불어 타인과의 관계도
인생도 자신감을 잃어 가게 된다.


세상만사 다 양면성이 있다.
계속해서 일만 하는 것도 힘들지만
계속해서 노는 일은 더 괴로운 일이다.

사람의 생활은 일하는 것과
노는 부분으로 적당히 이루어져야만
성취(成就)감과 함께 삶의 기쁨이 있게 된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할 수만 있으면,
땀 흘리지 않고 편안히 일하거나
조금 일하고 많은 여가(餘暇)를 원한다.

의무보다는 권리를 더 주장하는 사람,
세계자동차 시장에서 현대(現代)차의 한계성이
자꾸만 노출됨에도 오직 벌어들인 돈을 갖고
배분받는 데만 열을 올리는 그들을 보며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을 때가 많다.

진정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현실이 닥칠 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내가 아는 어떤 분은 은퇴를 한 후,
잠시 동안은 천국을 경험했는데
그런 생활에 익숙해지자 노는 것이
너무도 고통스럽다고 만날 때마다 호소한다.

현직(現職)에 있을 때는 일하는 것과
쉬는 것이 생에 리듬을 주었는데,
한 부분이 멈추자 어떤 기대도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더 빨리 늙어만 가더라는 것이다.

아니 아무리 젊은 사람일지라도
일하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는 것은
일하는 사람이 노는 사람보다 평균 14년을
더 오래 산다는 통계를 보면 금방 알 수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라는
명언은 ‘나는 일한다, 고로 존재 한다’는
현실적인 말로 다시 고쳐야 한다.





주여,

아버지가 일하니, 나도 일한다...
당신의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제 조금 알 것 같으니까,

저도 일할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생은
고통일 수밖에 없지만
당신은 우리에게 일을 통해서,

생의 의미(意味)와
자신의 가치(價値)를 스스로
깨닫게 하셨고,

무엇보다도
영혼을 치유(治癒)할 수 있는
도구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아니 일할만 때에 열심히 일해서
제 파이를 열심히 만들어
지나간 시간보다

남은 생애(生涯)가
더 가치 있고
행복한 생이 되게 하소서.


2007년 1월 21일 강릉에서 피러한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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