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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여...

유앤미나 2008. 3. 30. 17:45


한반도여, 강국(强國)이 되라
월드컵이 끝난 후에 곧 바로 미사일을 쏘고
그리고 '한반도'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이 모든 일들은 우연하게도
애국심(愛國心)이라는 단어가 생각나게 했다.
아이들이 방학하면서 모처럼
우리 가족은 '한반도' 영화를 보았는데
기대 이상으로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 영화는 경의선의 소유권을 놓고
일본의 도발과 그로 인해 대한제국의 비밀이
밝혀지는데 그 과정에서 국새(國璽)를 놓고
애국주의와 실용주의가 대치되면서
목숨 건 사투가 흥미롭게 펼쳐지고 있었다.
최근 독도(獨島) 영유권을 둘러싸고
일본 자위대는 동해(東海)를 위협하고 있고,
또 남북한 경의선 개통 같은 실제상황들이
사실과 허구의 결합형식으로 설정된
'한반도'는 새삼스럽게 민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했다.
작은 딸이 영화를 본 후에,
'아빠, 영화를 직접 보니까 재미있는데
평론가들은 왜 나쁘게만 말했을까...'라고 질문한다.
그렇다, 이 영화의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민족주의를 또 팔아먹는다.'는 비난과
'일본에 하고싶은 말을 했다.'라는
반응은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통해서
민족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대립구조가 각본을 넘어서 현실적 상황 속에서
재미와 함께 무언가를 다짐하게 만들었다.

먼저 민족주의(民族主義)를 생각케 한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우리는 여러 위기적
양상들이 혹시나 파시즘의 배경이
되지나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있던 차에,
'한반도'는 민족(民族)과 현실이라는
이미 결정된 구조 속에서도 민족주의가 될 수
밖에 없는 감독(監督)의 철학이 관객들로 하여금
찬사와 비난의 두 종을 울리게 했던 것이다.
일본 외상은 청와대를 자기 집처럼
드나들면서 사사건건 간섭할 뿐 아니라,
대통령에게 호통까지 치고 있다.
또 해상 자위대는 독도 인근
해상까지 와서 무력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한국은 약자니까 두들겨도 아무 소리도 못하며,
힘도 없어 삼 일이면 초토화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그들은 과거 식민지사를
반성(反省)하기는커녕
여전히 망언(妄言)을 멈추지 않고 있다.
아무리 영화라고 하지만 일본무사들이
명성황후를 잔인하게 시해하는 장면에서는
우리 딸도 울 정도로 객석(客席)은 숙연해지면서
반일(反日)을 넘어선 극일(克日)감정을
울컥 치솟케 했던 것이다.

'우리는 한 번도 이 땅에 주인인 적이없었다.'
포스터에 나오는 그 카피처럼 그 말은
지금도 유용(有用)하지 않던가.
거창하게 역사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100년 전처럼 여전히 외세에
흔들리고 있는 현실이 부끄러울 뿐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갈수록
더 똘똘 뭉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은 여전히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있고
미국은 FTA협정을 통해 목을 죄고 있는 판에
우리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하겠다는
민족주의자가 되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이런 상황 속에서 영화 구성상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자극한 것이 무슨 큰 잘못이라도 했다고 그리도
비판하는지 논평들을 보면서 의아해 했다.

그래서 실용주의(實用主義)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통령은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강조하는 반면에
국무총리와 야당 의원들은 눈앞의 현실을
강조하면서 일본에게 머리를 숙여야만
살 수 있다고 들이댄다.
우리가 아직까지 힘이 없으니
비굴하더라도 강대국의 눈치를 보며
힘을 키워가자고 주장하는 국무총리에게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현 한국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에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아야 할 일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地政學的) 개념에서
명분과 실리에만 조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곧 우리가 아무리 실리를 추구하든
명분을 내세우든 주변국들을
무시하고 우리 생각대로
결정할 수도 없는 현실에서
분명한 일은 지금 같은 냉전 시대의
사고 방식만 갖고는 우리민족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마지막 장면에서 총리가
자신이 물러나더라도
제 2, 제 3의 또 다른 자신이 나올 것이라는
저주 같은 외침은 어쩜 민족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대목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냉철한 현실 감각과 함께
비전을 꿈꾸어야 할 때다.
한반도의 주인(主人)은 결국 우리이기에
21세기 동북아 질서의 밑그림은
우리 머릿속에서 나와야 한다.
실용주의란 대의명분보다는
효용(效用)을 중시 여기는 철학이다.
상대가 아무리 얄미운 일본일지라도
무분별한 감정(感情)에 치우쳐
민족주의를 악용하는 극우적 접근마저
정당화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현실주의가
과연 먼 미래에서 바라볼 때
이상주의였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역시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이렇듯 민족주의나 현실주의가 함께 필요한
우리에게 또 하나의 과제는 진정한
자주독립(自主獨立)하는 일이다.
영화는 경의선 철도가
개통(開通)되면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물론 현실에서는 경의선과 동해선
시범운행은 실패(失敗)했지만,
정말로 남북열차가 개통된다면 그것은
중국(中國)과 러시아를 지나서 유럽으로 향하는
대륙열차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 일은 꿈에도 그리는 통일보다
더 가능하기에 더 희망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통일이든 남북열차 완전개통이든,
민족주의(民族主義)가 기본이 되지
않고서는 어떤 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강대국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자생할 수 있는 상황이든,
여전히 약소국에서 벗어나지 못한다해도
민족주의로 하나되지 않고서는
영원히 자주독립이란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언제나 불리한 지정학적인 여건 속에서
천 번 이상의 외침(外侵)받아온
우리는 고난 속에서도
4대 강대국으로 둘러 쌓여있는 현실은
과거나 현재나 또 앞으로도 변치 않을 상황들이다.
이런 처지 속에서도 안타까운 일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우리는 항상 국론(國論)이
분열돼 있었다는 일이다.
구한말 때 고종을 압박했던
을사오적과 친일적인 국무위원들은
적이란 항상 내부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고종과 대통령의 암살을
서로 대비시킴으로 은연중에
역사는 순환(循環)한다는 암시를 받게된다.

이러한 순환의 고리를 끊는 일은 민족주의로
하나되면서 현실주의로 이익을 챙기면서
강국(强國)이 되는 길밖에 없다.
어떤 학자는 10년 뒤에
우리가 격랑에 빠질 것이라는 예언을
무시한다 해도 분명한 일은
머지않아 한국은 일본이나 중국의 그늘에
가려져 동북아시아에서 어떤 모습으로
퇴락(頹落)해 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처음 근대화는
일본을 모델로 삼았지만,
이제는 세계 강대국들을 벤치마킹하고
신이 우리 민족에게 특별히 주셨던 은사(恩賜),
곧 우수한 인적자원과 과학기술의 역량을
잘 통합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
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주여,
다른 어떤 것보다
이 백성들이
냄비근성을 버리고,
일본(日本)을 잊지 않게 하소서.
힘이 정의(正義)라는 논리가
이제 한반도에서도
맞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실제적인
능력을 소유한 강국(强國)이
되게 하소서.
민족주의도 좋고
현실주의도 좋지만
...
서로를 높여주고
인정할 줄 아는 너그러운
이 땅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
먼저,
수해로 고통 당하는
저들과 하나되는
은총을 주소서.
2006년 7월 30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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