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피러한님의 글모음

대신 살 수 없는 인생

유앤미나 2008. 3. 21. 14:00


대신(代身) 살 수 없는 인생
하루 동안 엄마, 한 시간 애인을
대행해 주는 회사가 지금 호황을 누리고 있다.
조선족 신부는 하객도우미,
노부모 병원 갈 땐 자녀 도우미 등
핵가족사회에서 맞벌이 부부가 늘어가면서
별난 서비스들이 급팽창하고 있다.
'짝뚱'의 천국이라는
이웃 중국에서는 한 술 더 뜬다.
대신 욕해주고
대신 죽여주는 일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대리모(代理母)를 모집하는데 학생과 주부들이
앞 다투어 지원하고 있는 것은
손쉽게 일확천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거짓과 가짜가 판치는 세상이
이젠 돈으로 모든 일들을 대신(代身)하려고 한다.
그렇게 물질로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이
과연 어디까지 대신할 수 있을까.
바쁠 때 나는 가끔 딸들에게 이상한 부탁을 한다.
'둘째야, 아빠 바쁘니까 대신 화장실 갔다 와!'
'아빠, 작은 거야? 큰 거야?'
말도 안 되는 명령에
아이들도 동문서답하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해서
해 줄 수 있는 일이란 지극히 한계적이다.
혹 누가 도와준다 해도 인생은
내 자신이 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분명한 일들이 있다.

먼저 내가 가야할 인생의 길이다.
인생에 왕도(王道)는 없지만
오직 나만이 가야할 길은 반드시 있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뇌 속에서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고 있는 것이 인생이다.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내가 어디로 가야하는 그 길은
어쩜 철새의 항로(航路)보다 더 정확하다.
그 길은 내가 마지막 죽음 앞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멋지게 생(生)을
마감하게 한다.
인생에서 방황(彷徨)이란
자신이 가야할 길을 찾지 못하는 시기이다.
가끔 일탈(逸脫)로 인해 틀에 짜여 진 나의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을 가기도 하지만 그것이
내가 찾았던 길 일 때도 있다.
어떤 이는 왕의 길을 버리고
고행의 길을 선택했다.
고갱은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그림 그리는 길에 들어서므로 역사적인
작품을 남겼던 것이다.
'말아톤' 주인공 형진이는
자신의 길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므로
그 길을 외면하지 않았기에 마라톤뿐 아니라
수영(水泳)에서도 그런 좋은 성적을 얻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가야할 길은
나의 욕심으로 찾는 것이 아니라,
신의 뜻을 알고 오직 사명으로 가는 길이다.
산 넘고 물 건너 언젠가는 가야 할 길,
비록 구름이 머물고
함께 해 주는 이가 없을지라도
지구상에서 나만이 가야할 길을 가야만 한다.
그 길은
누구도 대신 할 수 없기에
오늘도 스스로 내 삶을 빚어 가는 것이다.

둘째로 노후준비도 누가 대신 할 수 없는 일이다.
평균 수명은 높아지고 있지만
은퇴연령은 점점 낮아지고 있는 요즘
20년 벌어 50년 먹고사는 인생설계가 절실하다.
준비된 사람만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풍요와 행복을 누릴 수 있음에도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는 사람은 불과
5%도 채 안 되고 있다고 한다.
현재도 내 대신 살아줄 사람 없지만
자신의 노후를 대신할 사람은 더더욱 없기에
노후는 내가 확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노후준비는 먼저 생활자금이다.
돈 없는 노년은 한 마디로 서럽다.
지금 생활에 불편이 있다 해도
노후에 빈곤한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소수의 부자를 빼놓고는
돈을 미리 준비해 놓은 사람은 드물다 해도
더 이상 늦추지 말고 당장
저축이든 투자를 하든지 기본에 충실하여
내 몸에 맞는 방법으로 꼼꼼하게
미래자금 계획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

또 노후에 할 일을 준비해야 한다.
이것은 돈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직장은 그만두어도 일은 그만두지 말아야
영원한 청춘(靑春)으로 살 수 있다.
아무리 건강하고 돈이 많아도 할 일이 없다면
긴긴 노년의 시간은 외로움으로만
채워질 수밖에 없다.
괴테의 말처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만 하는 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지금부터 차근차근
찾으며 준비해야 한다.
사람이 죽을 때까지 지탱해 주는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니라 사랑과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후에는 반드시 친구가 있어야 한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노년의 가장 큰 적은 고독(孤獨)과 소외다.
오래된 친구와 친밀한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적금만큼 좋은 일이다.
또한 젊은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지낼 수 있도록
청결과 열린 마음은 필수 사항이다.
좋은 친구를 사귀려면 먼저 자신이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
말을 줄이고,
욕심을 버리고 베풀며 살며,
운동을 생활화하여 건강을 유지한다.
물론 종교생활은 필수항목이 될 것이다.

셋째로 죽음에 대한 준비도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나의 일이다.
올 여름에 임종체험이라는 특별한 체험을 했다.
유언장 작성 후 수의(壽衣)를 입고 입관 후
자신이 쓴 유언장을 들으면서
몇 분 동안 묵상한다.
지금 외국에서는 장례적금을 많이 든다고 한다.
이것은 어느 순간에 죽더라도 모든 장례를
알아서 다 치러 주는 프로그램이다.
지금 중병(重病)에 걸려서가 아니라
어느 순간에 생을 마감할지 자신도 모르기에
항상 죽음을 염두 해 두면서
생을 반성(反省)하고
오늘을 겸손하게 살아가므로
올바른 미래를 대비하고자 하고 마음에서
그 적금(積金)을 드는 것이다.
'죽지 않는 법이 있습니다.'라는
광고카피를 내 옆에서 본 어느 어르신은,
'뭐 죽지 않는 법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화를 내셨다.
그 광고는 광고를 전공하는
어느 대학생의 습작광고카피의 일부였다.
‘아버지는 2005년에 돌아가셨지만
2006년 월드컵을 보실 것입니다.’
사연인즉 안과 의사였던 아버지 평소 소원대로
당신이 눈을 감는 순간이 오면 각막을 떼어
누군가의 눈을 열러달라는 것이었다.
육신은 떠났지만 그 눈은 여전히 남아
독일월드컵도, 북경올림픽도
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광고를 보며
진정 영원히 사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내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어느 사형수 절규처럼
'죽을 준비해!'라는 말에 오늘도
부끄러움 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주여,
이 땅 그 무엇으로도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代身)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당신,
오직 제가
가야만 하는 길을 가게 하시고,
제가 준비할 것을
지혜롭게
잘 감당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 날
당신 앞에
정금(正金) 같이
나아가길 소원하옵나이다.
2005년 9월 11일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그룹명 > 피러한님의 글모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염려하느냐  (0) 2008.03.21
불공평한 세상  (0) 2008.03.21
행복의 두 가지 요소  (0) 2008.03.21
가슴 속에 담은 충고  (0) 2008.03.21
불황일 때 해야 할 일  (0) 2008.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