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보다 무서운 일
전쟁 중에도
예배는 쉬지 않았는데
코로나19는 교회 문까지 닫게 할 정도로
차원이 다른 재난이 되고 있다.
코로나는 좀비보다 무섭다.
물론 가상이지만
좀비는 볼 수 있어서 도망이라도 가지만
이 바이러스는
투명 인간 대하듯 그냥 막연한 두려움만
주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재앙이
얼마나 큰 피해를 주고 떠날지 몰라도
어느 시점에 가서는
지나갈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역시 믿고 있다.
요즘 국민들은
코로나19에 신경 쓰느라
다른 뉴스들은 상대적으로 와 닿지가 않는다.
그렇게 지나쳐 버린 이슈 중의 하나가
‘인구감소 소식’이다.
이것은 역사상 대한민국에 중차대한 전환점이 될
뉴스가 아닐 수 없다.
2019년 10월에 우리나라는
사망자와 출생아 수가 25,000명으로
거의 같았는데 불과
4달 만에 인구감소 추세로 돌아서 버렸다.
이런 조짐은 2016년부터 시작되었다.
인구 증가가 완곡한 성장에서
거의 수평에 가까워지더니 전쟁도 아닌
평화 시기에
인구 감소가 된 것이다.
이런 결과는 통계청 예견보다
10년이나 빠르기에
충격은 더 크게만 느껴진다.
한국이 2000년도에
OECD 중 최저 출산율을 기록할 때
콜먼 교수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종족으로 한국을
지목했던 이유를
이제야 실감하고 있다.
13년 전에 일본에서는
인구감소가 시작될 때 아베는 ‘국난’이라며
모든 정책을 총동원하라는 기사가
생각났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출산율이 1.4명이지만
우린 0.9명이기에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알 수가 없다.
인구 감소 시대가 되면
먼저 염려되는 일은 생산 인구다.
지금 5명이 1명을 부양하는데
2050년이 되면
생산인구 1명이 노인1명을 부양해야 한다는데
세금이 얼마나 늘어나겠는가.
더구나 우린 OECD 중
노년 빈곤율이 가장 높기에 그들에 대한
부담을 국가는 기업에 전가하려고
은퇴 나이를 늦추려고 한다.
21C가 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자기나라 은행을 못 믿는
나라들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분명하게 은행을 믿는다 해도
인구감소가 계속 진행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복지나 국민연금까지
어찌 안심할 수 있겠는가.
이렇듯 인구감소는
생산인구 감소가 되면서 더불어
소멸 가능한 읍면동 속에 빈집이 생겨난다.
일본은 버블 경기 붕괴 후
도쿄까지 10.6%,
오사카는 무려 15.2%가 빈집이 생겨나면서,
치안과 공공서비스 유지 문제 등
외면할 수 없는 재앙에 몸살을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는 인구 사회 경제구조가
그들과 유사하여 이런 추세라면
10년 뒤 약30%이상
빈집이 생겨날 것으로 예측한다.
참 어이없게도
국가 목숨을 인구감소가 쥐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은 망할 일만 남았는가.
아니다. 천천히 망한다.
다만 경제주체별로 상황이 다를 뿐이다.
정부는
줄어드는 세수와
늘어나는 세출에 대해
어떤 대처를 하느냐에 따라 체감도가
달라지겠지만,
일본을 통해 예견되는 일은
모든 세금 인상밖에 없다는 것이다.
누가 뭐라 해도
누가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우리도 2050년부터 역피라미드 인구구조를
피할 수 없다.
코로나19는 한 차례 재난이라 쳐도
인구 감소는 지속적으로
조여 오는
재앙으로 여기는 것은
내일에 대한 어떤 대안도 속수무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구 감소 현실은
진보와 보수가 갈라져 싸우는
분열이나 갈등보다 훨씬
더 무섭고 심각한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이 핵폭탄이 서서히 대한민국을 향해
날아오고 있음을 깨달고
모든 지혜와 역량을 모아 어찌하든지
이 뇌관을 제거해야 한다.
정부는 저 출산과 고령 사회를 대비하여
새로움과 마지막이라는 의미로
‘새로마지’정책을 위해
10년 동안 무려 143조나 투입했지만
결과는 더 악화된 상황이다.
학생 교과서엔
저 출산 해결방안으로
양육비 지원, 출산 및 육아 수당 지급,
보육시설 확대, 여성 활동 지원 제도 등으로 나와 있다.
이런 교과서적인 모범답안으론
어림도 없다.
1인 가구 30% 시대가 되었다.
노인이나 중년은
가족관계로 혼자 살지만,
젊은이는 취업에 부딪치고
취업 후엔 결혼 자체를 기피하는
비혼주의자가 증가하기에
해결은 더 꼬인다.
결혼을 골인했다 해도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출산은
자꾸만 멀어져 간다.
중요한 포인트는 두 가지다.
누구라도 아이를 낳아도 걱정 없이
양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외적조건 충족이다.
2050년에 대한민국은 3,000만이 될 때
세계 인구는 100억이 된다.
다만 그 때가도
인구증가국은 아프리카나 개도국들이다.
이제 다문화 가정은
이방인이 아니라 국가생존 건이 달린
가까운 이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염려되는 일은
무슬림들이다.
지금 유럽에선
중동과 북 아프리카에서
유입해 온 ‘피난민 이민’이 실은
이민을 가장한 이슬람 테러분자들이기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미 우리도 경험했듯이
나라의 법과 상충되는 그들만의 법을
주장하면서 파생되는
각종 이슈들이 문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여건들을 감안한
우리 특성에 맞고
우리 문화를 지킬 수 있는
좀 더 현실적이고 무언가 혁명적인
법안을 기대하는 것은
진정 꿈이란 말인가.
또 하나의 근본대책은
인식 바꾸기다.
스웨덴은 오래 전부터
저출산에 대한 정책은 다름 아닌
양성평등 문화에 있었다.
아이는 여자의 몫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키우는 것을 정부는 40년 전부터
매스미디어를 통해 강조했다.
정책적인 여러 지원과 함께
인식을 바꾸기 위한
캠페인 덕분이었는지 스웨덴은 급기야
출산율도 회복되었고
아울러 양성이 평등한 사회도 되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가부장적 문화와 유교적 질서는
결혼과 출산을 어렵게 만들고 있기에
반드시 기본의식 개혁에서
출발해야만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사춘기라고
말하는 것은
경제는 성장했지만
의식은 따라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직접적 지원보다는
이런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의사소통에
더 많이 투자해야 한다.
이제 세상을 바꾸는 일은
커뮤니케이션이 담당하면서 누구도
상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보통 우리는 환경이
생각을 만든다고 여기지만,
사실 생각은
삶의 방식을 만들기에
오늘의 그런 환경이 있었던 것이다.
세상만사가 그런 식이다.
근본적 생각을 패턴화 시켜주는
사회 구석 곳곳의 문화를
바꾸어줄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기에 바로 여기에
정책을 펼쳐야 하고 투자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결혼을 꺼리고
출산을 꺼리는 문화적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회통합보다 중요한 최우선 과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2020년 3월 3일 삼겹살 Day에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드립니다.
사진작가:하누리님, 머신닥님, 이요셉님^경포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