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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에 생각해보는 기강과 자제력, 그리고 '이런 전쟁'

유앤미나 2019. 6. 26. 13:35

6.25에 생각해보는 기강과 자제력, 그리고 '이런 전쟁'   

예병일이 노트지기의 다른 글 보기2019년 6월 24일 월요일
이 책에 쓰인 '기강'(discipline)이란 프로이센 척탄병처럼 생각 없는 로봇처럼 복종하고 자아를 지워버렸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 사회학자들과 군인들 모두 기강이란 기본적으로 자제력을 뜻한다는 데 동의한다.
자제력이란 과속하거나, 무거워서 불편한 강철 방탄모를 벗으면 제재를 가하는 합리적인 법을 어기지 않는 것, 버는 것보다 더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 전투 중 정말 필요해질 때까지 수통의 물을 다 마시지 않는 것, 그리고 특정 상황에서 받는 명령이 매우 불쾌하더라도 부모와 교사 그리고 장교에 복종하는 것을 말한다.
살면서 자제력을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들만이 합당한 기강을 두려워한다.(11쪽)
 
(예병일의 경제노트) 
 
6월25일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6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며칠전 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가 쓴 '이런 전쟁'(THIS KIND OF WAR)이 드디어 한글로 완역되어 출간되었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고마운 일입니다. 2013년 88세를 일기로 별세한 저자에게도, 의미있는 책을 완역해 만들어준 출판사에게도 그렇습니다.
 
800페이지가 넘는 이 책은 1963년 초판이 나왔습니다. 휴전이 된 지 오래되지 않아서입니다. 그래서 저자 서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북위 38도 선을 따라 어렵게 포성이 멈춘 지 10년이 지났지만, 확정적인 한국전쟁사를 쓰기란 여전히 불가능하다."
 
'이런 전쟁'은 6.25를 다룬 책 중 가장 유명한 책입니다. 미 육군사관학교와 미 육군 지휘참모대학의 필독서에 올랐습니다. 사임한 '수도승 전사'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이 꼭 읽어보라고 권했던 책이기도 하지요.
 
페렌바크는 책의 1장 '서울의 토요일 밤'을 '군사학 논고'에서 베케티우스가 한 말로 시작했습니다.
"평화를 원하는 자는 전쟁에 대비하라... 전쟁에서 우세하다고 인정된 힘은 누구도 감히 거스르거나 모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미국은 준비 없이 한국전쟁을 맞았습니다. 한국은 말할 필요도 없었지요.
 
"38선 인근에는 소련에서부터 수송선에 실려 들어오는 어마어마한 무기와 장비를 수용할 군수창고와 보급소들을 세워야 했다... 6월 23일 금요일 자정 직전 9만 명의 인민군이 안개비 속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중 전차 150대, 항공기 200여 대에 더해 많은 수량의 소화기와 박격포를 보유했으며, 122밀리 곡사포와 76밀리 자주포의 충분한 지원을 받았다."(24쪽)
 
이런 북한과는 달리 한국과 미국은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1950년 6월 24일 서울의 밤은 휘황찬란했다.... 그(채병덕 장군)는... 38선에 있는 부하 장교 상당수가 오늘 밤 나가떨어지리라 생각했고, 많은 장교들이 근무지를 나서기 전에 이제나저제나 밖에 나가고 싶어하는 병사들에게 줄 통행증을 남발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27쪽)
 
그렇게, 비참했던 6.25는 발발했습니다. 
 
페렌바크는 책에서 '기강'(discipline)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기강이란 기본적으로 자제력을 뜻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무거워서 불편한 강철 방탄모를 벗지 않는 것, 전투 중 정말 필요해질 때까지 수통의 물을 다 마시지 않는 것, 버는 것보다 더 소비하지 않는 것...
그는 "살면서 자제력을 배워본 적이 없는 사람들만이 합당한 기강을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국민은 정신적으로 항복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1962년, 페렌바크는 저자 서문을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문제는 전장을 미식축구 경기처럼 이해한다는 것이다. 바람직하거나, 좋거나, 또는 정치적으로 그럴듯한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느냐가 문제이다."
 
정치는, 국제정치는, 전쟁은 냉정하고 냉혹합니다. 
평화는 희망으로, 그럴듯한 말이나 정치적 수사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1962년의 페렌바크가 2019년을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해주는 조언이고 경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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