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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저녁과 서재, 그리고 마키아벨리

유앤미나 2014. 12. 12. 18:56

겨울 저녁과 서재, 그리고 마키아벨리  
예병일 이 노트지기의 다른 글 보기 2014년 12월 12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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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재에 있는 마키아벨리에게 돌아가자. 그가 지적인 대가들의 작품을 읽는 방식에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경건하지만 수동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그곳에서 나는 그들과 대화하길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들에게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이유를 묻는 데 주저함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신이 그들에게 말을 걸거나, 질문을 던지거나, 그들 자신이나 관념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이 하나같이 위대한 대가들인데도 그들은 마키아벨리의 용기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내게 친절하게 대답하지.' (80쪽)
 
 
많은 이들이 '서재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비슷해서, 이런 저런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서재와 관련해 가장 인상적인 모습은 마키아벨리입니다. 
 
로베르토 리돌피가 쓴 '마키아벨리 평전'(아카넷)에는 마키아벨리가 편지에서 서재로 들어가는 자신을 묘사한 내용이 나옵니다. 
 
"저녁이 오면 난 집으로 돌아와 서재로 들어가네. 문 앞에서 온통 흙먼지로 뒤덮인 일상의 옷을 벗고 왕궁과 궁중의 의상으로 갈아입지. 우아하게 성장을 하고는 날 따뜻이 반겨주는 고대인의 옛 궁전으로 들어가, 나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한 이유이자 오직 나만을 위해 차려진 음식을 맛보면서, 그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고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했던가를 물어본다네.
물론 그들도 친절히 답해 주지. 이 네 시간 동안만은 나에게 아무런 고민도 없다네. 모든 근심 걱정을 잊어버린다는 말일세. 쪼들리는 생활도 나아가 죽음까지도 나를 두렵게 하지는 못하네." (244쪽)
 
이 책의 저자 제이콥스도 마키아벨리의 모습을 '야심적인 독서'라고 표현했더군요. "대부분의 독서는 저녁에, 놀라울 정도로 지극히 공식적인 관례로서 이뤄졌다. 이는 실로 야심적인 독서다. 마키아벨리는 마치 위대한 왕이 궁전으로 들듯이 위대한 작가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그가 '위풍당당한 궁정풍의 옷'이라고 언급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에게는 자신이 그들과 어울릴 자격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마키아벨리가 이 편지를 쓴게 1513년이니, 마흔네 살 때였습니다. 정치적인 격변 속에서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다가 시골로 쫓겨난 힘든 시기였지요. 하지만 그는 이런 모습으로 책과 만나면서 '군주론'과 '로마사논고'같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저녁 때마다 성장을 하고 서재로 들어갔던 마키아벨리를 떠올리면서, 추운 겨울 저녁에 책을 펼쳐봐야겠습니다.
 
며칠 포근하더니 다시 추워진다고 합니다. 고통의 시기에 저녁 때마다 성장을 하고 서재로 들어갔던 마키아벨리를 떠올리며 이 겨울의 저녁을 보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