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전연마의 노장 모리 모토나리(毛利元就)가 눈싸움을 통하여 부하들을 질타 격려했던 이야기
모리 모토나리는 쥬고쿠 지방(中國 地方) 열 개국을 가진 유력한 전국시대의 다이묘(大名)이다. 또한, 자식
셋의 결속을 위하여 타이른 <세 개의 화살이 주는 가르침>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모토나리가 다이에이(大永)3년(1523) 27세에 호주의 권리와 의무를 상속받았을 당시, 쥬고쿠 지방은 오우
치(大內), 아마고(尼子)씨의 2대 세력이 다투고 있었다.
모토나리는 처음에는 수오(周防; 야마구치-山口현)의 오우치 요시타카(大內 義隆)에게 속하여 오우치가의
가신 수에하루카타(陶晴賢)와 협력하여 아마고 하루히사(晴久)를 격퇴했지만 오우치 요시타카가 쿠테타로
하루카타에게 멸망당하자 하루카타를 이쓰쿠시마(嚴島)에서 격파하여 수오, 나가토(長門), 빈고(備後), 빗츄
(備中), 이와미(石見)등의 열 개국을 병유했다. 이쓰쿠시마 전투는 오케하자마(桶狹間)전투에 비견되는 기습
전법으로 모토나리가 역사의 주무대에 등장하는 계기가 된 전투였다.
그 모토나리가 71세가 되던 에이로쿠(永祿)10년의 겨울 어느 날.
그 날은 아침부터 계속 눈이 내리고 있었다.
객실에 있던 모토나리가 가신에게 미닫이를 열게 하자, 뜰에는 이미 꽤 많은 눈이 내려 쌓여 있었다.
“좋은 경치이다.” 하고 잠시동안 넋을 잃고 보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가신을 향하여 이렇게 말했다.
“이런 눈에서는 나도 나이가 들어 걷기도 어렵구나. 눈싸움을 하고 싶은 데 뜰에도 나갈 수가 없으니 객실에
눈을 옮겨다 주지 않겠는가.”
곁에 모시고 서 있던 자들은 “이크! 모토나리공도 나이를 드시더니결국 판단력을 잃으셨는가.” 하고 내심 의
아하였지만 주군의 명령에 거역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커다란 용기에 눈을 수북이 담아서 모토나리의 앞에 내밀었다.
모토나리는 몸소 손으로 눈을 뭉쳐서 주저하는 가신들을 잡아끌어 객실 가운데에서 눈싸움을 시작했다. 처
음에는 흠칫하며 점잔을 빼던 가신들도 위 아래 할 것 없이 점차 동심으로 돌아가 바야흐로 눈싸움은 무르익
어 갔다.
그리고, 서로 던지는 데 지쳤을 쯤에는 모두가 땀에 흠뻑 젖어 몸에서 더운 김이 날 정도까지 되었다.
한 숨 돌이킨 모토나리가 가신들을 향해 말했다.
“나이 든 나도 객실은 더럽혔지만 이렇게 눈싸움을 할 수가 있다. 온 가족이 이것을 알았다면 모두 즐겁게
눈싸움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한기도 오그린 몸에서 떠날 수 있다. 춥다, 춥다 하며 고타쓰(화로에 나무로 짠
배롱을 얹고 그 위에 이불, 포대기 따위를 씌워 몸을 녹이던 난방구) 에 들어가서 움츠리고만 있으면 기운도 약해
진다. 무사는 언제나 무사의 도를 잊어서는 안된다.”
모토나리는 이런 식으로 가신들을 질타 격려했다.
과연 백전연마의 노장답다.
고타쓰에 매달려 붙어 있는 무사들을 그저 꾸짖어서 “무예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따위의 말을 해도 늙
은이가 잔소리로 여겨 싫어할 뿐이다. 그것을 모토나리는 잘 알고 있었다.
<이 화살 한 개를 꺾으면 가장 꺾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하나로 묶으면 꺾기 어렵다. 그대들은 이것을 감찰
하여 일심동화 하도록 하라. 절대로 등지는 일을 하지 말라.>-모토나리 최후의 가르침이라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