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항상 좋은 글과 음악이 있는 곳에 있으면서 자주 들리지 못합니다.
이런걸 마음 따로 몸 따로 라 그러지요?
자주 들려 좋은 님들과 대화 나누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오늘은 수필 한 토막 남기고 갑니다
인 생 / 人 生
몇 년 전이었지 아마.
생전 하루도 어기지 않던 부천 아파트의 임대료가 몇 달치 밀려 받으러 갔다.
갑자기 찾아 온 나를 거실로 들어오라 했지만 혼자 있는 부인의 거실로 차마 들어 갈수 없어 문 앞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인의 얼굴은 많이 변해 있었다.
남편의 사업실패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계속 늦어졌다며 미안해 하는 부인의 사정만 헤아릴 수 없어 조금 냉정하게 지불약속을 받고 돌아 나오는데 정원의 나무 한 그루 가장 가냘픈 가지에 아침 습기를 흠뻑 먹은 한 잎 나뭇닢이 빨갛게 매달려 있었다.
문득 소월이 생각났다.
소월은 어릴 때 금광을 하는 조부님 밑에서 부유하게 자랐는데 사주 보는 사람이 소월은 짧은 명을 타고 났다 해서 조부님이 어린 소월의 대명을 깟놈이라 지어 불렀다.
소월은 어린 시절 공책에 연필로 일기를 썼다.
소월의 담임이었던 고당 안서로부터 그 일기가 시로 인정을 받아 추천시인으로 문단으로 나갔지만 그는 문단활동보다는 자유창작을 더 많이 했던 시인이다.
소월이 유명한 진달래를 쓴 배경이 오순을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지만 사실 소월의 글엔 항상 누나에 대한 연민이 더 서려있다.
정신병을 심하게 앓고 있던 미친 누나가 밤마다 오리나무로 귀신 좇는 체벌을 받을 때 울부짖는 비명이 싫어 소월은 집 뒷산 옥녀봉으로 매일 밤 갔고 그 곳에서 오순의 사랑을 발견한다.
그 때 그가 누나의 고통을 일기에 적었던 글이 시 접동새다.
그러나 누나는 얼마 후 죽었고 소월은 오순마저 잃게 된다.
가난한 집 딸이었던 오순의 사랑을 조부님이 인정하지 않았던 때문이었다.
오순과의 사이를 떼어 놓기 위해 조부님은 소월을 상일이란 여자와 결혼 시키는데 상일은 소월의 시에서 오순에 대한 사랑을 발견하고 소월을 위해 한평생 자신의 사랑을 헌신했다.
오순이 폐결핵에 걸려 시집에서 쫓겨 오자 소월은 아내 상일의 도움으로 오순을 치료 시키지만 오순도 얼마 후 죽는다.
소월은 오순을 지켜 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조부님이 남겨 준 유산을 거의 방황생활로 탕진해 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을 떠나게 되는데 고향을 떠나기 전 오순의 무덤을 마지막으로 찾은 이른 봄 날 그는 아직 메마른 오순의 무덤가 죽은 잔디를 쓰다듬으며 오순을 위한 마지막 시 금잔디를 남긴다.
그 후 소월은 오순을 그리워하다 34세의 나이로 죽고 상일의 아내는 얼마 전까지도 부산 동래에서 소월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소월이 가산을 탕진하고 살림이 궁색해 지자 아내 상일이 일수놀이를 했는데 어느 날 일수 장부를 본 소월이 상일에게 내가 한 끼 굶으면 불쌍한 사람이 하루 편하게 살 수 있다며 일수 장사를 못하게 했다.
더욱 비참해 진 소월은 죽기 전 아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시 한편을 남기게 되는데 그 시가 소월의 최고 대표작 초혼이다.
소월은 아내 상일에게 사랑은 주지 못했으나 그의 깊은 마음은 모두 주고 떠났던 것이다.
얼마나 아내에게 미안했으면 시 한편 써주지 못하고 죽는 마지막 순간에 비로소 한 줄 시로 그의 마음을 전했을까?
나는 아파트 나뭇가지에 매달린 붉은 마지막 잎새 한 잎을 보면서 소월이 죽기 전 아내에게 했던 말을 다시 떠 올렸다.
내가 한끼 배고프면 불쌍한 사람 하루를 먹인다.
나는 걸었던 시동을 끄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부인이 놀라 나왔다.
나는 부인에게 내가 잘못 생각했다며 있는 날까지 임대료 걱정 말고 편히 계시라고 정중히 인사하고 돌아섰다.
부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문 앞에 그대로 서있었고 나는 총총 걸음으로 그 부인의 모습을 등에 남긴 체 아파트를 떠났다.
처음 느껴 보는 시원한 바람이 가슴에서 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쁨이 마음에서 휘돌고 있었다.
아!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잔디
잔디
금잔디
심심산천에 붙는 불은
가신 님 무덤가에 금잔디
봄이 왔네
봄빛이 왔네
버드나무 끝에도 실 가지에
봄빛이 왔네
봄날이 왔네
심심산천에도 금잔디에
소월 / 김정식 / 금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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