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수필집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중에서)
처음으로 북인도 대륙을 여행할 무렵,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서 며칠 동안
식사다운 식사를 하지 못했다. 음식마다 뿌려진 강렬한 향료는 식욕을 달아나게
했고, 싸구려 식당의 불결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배가 고파 식당으로
들어갔다가도 몇 숟가락 쑤석거리다 마는게 고작이었다.
게다가 식당 주인은 바닥을 닦던 걸레로 테이블도 닦고 그릇까지 닦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매번 그걸 나무랄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또 무슨 훈계를
들을지 모를 일이었다. 인도에서 불교를 전공하던 어떤 한국인 교수가 하인에게
행주와 걸레를 구분해서 쓰라고 충고했더니, 그 인도인 하인은 "더러움과
깨끗함을 차별하는 마음도 버리지 못하면서 어떻게 불교를 전공한다고 할 수
있느냐?"고 교수에게 되레 큰소릴 쳤다고 한다.
또 인도인들은 대부분 손으로 밥을 먹는다. 왜 스푼을 사용하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먹느냐고 했다가 나는 된통 설교를 들어야만 했다. 누구의 입에
들어갔었는지도 모르는 스푼으로 먹는 것보다 자기 손으로 먹는 게 훨씬
위생적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들은 손가락으로 음식의 맛을 아는
능력을 지녔다고 주장했다.
입맛이 떨어진 나는 물로만 배를 채웠다. 하지만 열흘쯤 지나자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허기에 지쳐 쓰러질 판이었다. 뭐든지 먹어야만
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선 나는 비교적 깨끗한 식당으로 들어가 맛을
따지지 않고 이것저것 시켜 먹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여행을 계속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상황이었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아침을 먹고 나서 장거리 시외버스에 올라탔는데, 당장
배탈이 나고 만 것이다.
버스는 온갖 종류의 인도인들을 빼곡이 싣고 열여덟 시간 거리에 있는 비하르
지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드넓은 들판지대를 두 시간쯤 달렸을 때, 아랫배가
쌀쌀 아프더니 급기야 장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자극적인 인도 음식을 내
소화기관이 견디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도중에 버스를 내릴 수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 동안 배운 지식을 동원해 손가락과 손바닥을 마구 지압했다. 그리고 재빨리
정로환 몇 알을 삼켰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태는 더
나빠져 아랫배가 부글거리고, 금방이라도 바지에 설사를 할 것만 같았다. 나는
그야말로 얼굴이 사색이 되어 몸을 뒤틀었다.
그렇게 반 시간쯤 참았을 때 나는 마침내 인내의 한계에 이르렀다. 더 이상
참다가는 더 걷접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운전사를 향해 소리쳤다.
"잠깐 차를 세워주세요. 배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어요. 얼른요."
그 순간, 평화롭게 오전 햇살을 받으며 북인도 들판지대를 달리던 낡은
시외버스는 그 안에 탄 유일한 외국인 여행자 때문에 잠시 소동이 일었다. 내가
쥐어짜는 목소리로 버스를 세우라고 요구하자 차 안에 탄 인도인들 시선이 전부
내게로 쏠렸다. 사리 입은 여인, 흰 두건 쓴 시크교 노인, 이마에 점을 찍은 처녀
할 것없이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남의 자리에 끼여앉아 옆사람의 호주머니를
훔쳐보던 소매치기까지도 나한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창피한게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애원하듯이 소리쳤다.
"빨리 차를 세워요! 잠깐만 내렸다 탑시다!"
운전사는 영어를 못 알아듣는지 조금 더 달리다가 한 인도인 남자의 통역을
받고는 끼익 하고 버스를 세웠다. 하도 급작스럽게 차를 세워서 승객들 모두가
와락 앞으로 쏠렸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
나는 황금히 문으로 달려갔다. 그때 일말의 불안감이 밀려왔다. 내가 내린
사이에 버스가 떠나버리기라도 하면 큰 낭패였다. 마을 조차 없는 허허벌판의
무인지대에 혼자 남겨질 순 없는 일이었다. 나는 운전사에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떠나지 말고 기다릴 것을 강력히 지시했다. 그래도 미심쩍어서 나는 버스를
내리다 말고 도로 올라가 배낭을 들고 내렸다.
버스에서 뛰어내린 나는 배낭을 들쳐안고 무의식적으로 도로옆 들판을 향해
10미터 달려갔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북인도의 들판지대는 수평에 가까운
황무지가 대부분이다. 언덕 하나 없는 평지에다 나무들조차 구경하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내가 버스에서 내린 지점이 바로 그런 지대였다.
나는 달려가다 말고 주위를 살폈다. 몸을 가릴 만한 장소가 한 군데도 눈에
띄지 않았다. 바위나 언덕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그 뒤로 돌아가 일을 볼 텐데
사방은 그저 툭 트인 황무지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문명국가에서 온 내가
아무데서나 바지를 내리고 일을 치를 순 없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고개를 돌려 버스를 쳐다보았다. 차 안에 탄 인도인들
모두가 일제히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한참 무료하던 판에 이게 웬 구경거린가
하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다시 10여 미터를 달려갔다. 그래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방에 가냘픈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있는 것 말고는 내 한 몸
가릴 만한 은폐물이 천지간에 없었다. 인도인들은 저 친구가 왜 저렇게
허둥대는지 이해가 안간다는 듯 저마다 차창에 얼굴을 대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갑자기 광야에 홀로 선 외로운 문명인이 되고 말았다. 인도인들은
아침마다 들판이나 철둑길 같은 곳으로 몰려가 일을 보지만, 나마저 멀건 대낮에
아무데서나 엉덩이를 내보일 순 없었다.
그렇다고 아주 멀리 지평선 너머로 거위처럼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는 사이 배탈은 더욱 심해져 조금만 더 지체하다간 영락없이 바지를 적실
판이었다. 나는 너무도 당황스럽고 황당해서 영혼이 몸부림칠 것만 같았다.
마침내 나는 배낭을 끌어안고 스무 걸음 정도를 더 뛰어가 전방에 외롭게 서
있는 나무 뒤로 돌아갔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나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굵기가
팔뚝 정도에 불과해서 내 몸을 전혀 가려 주지도 못했다. 그러자니 더욱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덩치가 크고 머리는 장발을 한 사람이 지팡이만한 나무 뒤에
몸을 숨긴 셈이 되었다. 바지를 내리고 그 나무 뒤에 쪼그리고 앉아 일을 보기
시작했지만, 버스에 탄 인도인들은 볼 것을 다 보고 있었다.
비록 지팡이만한 나무일지라도 무언가에 의지할 수 있어서 그나마 안심이었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완전히 정신적 공황에 빠질 뻔했다. 인도인들은 나를 낱낱이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애써 나무둥치에 눈을 갖다대고 그들이 보이지 않는
척했다.
어쨌든 위기는 면했다. 바지에 실례를 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볼일을
마친 나는 잃어버린 권위를 되찾기라도 하려는 듯 어깨에 힘을 주고 천천히
버스로 돌아갔다. 그리고 도중에 괜히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어 멀리 던지는
여유까지 부려 보였다. 인도인들은 내 마음속을 다 간파하고 있다는 듯, 저
친구가 정말 왜 저러나 하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북인도의 초가을 아침 햇살은 지친 영혼을 위로하는 부드러운 힘을 갖고 있다.
먹을 것이 별로 없는 인도인들은 저 아열대의 태양광선을 먹고 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올라타자 버스는 서둘러 먼지르 날리며 출발했다.
목적지 고락푸르까지는 먼 여정이었다.
또다시 배탈이 날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한결 속이 편안해 졌다. 좌석으로
돌아온 나는 느긋하게 기대앉아 옆자리 승객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인도인들은 왜 화장실을 이용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들판이나 철둑길이나
강변에 마구 볼일을 보니 더럽기 짝이 없잖아요. 전염병의 원인이 될 수도
있구요. 화장실을 더 많이 지으면 한결 깨끗한 나라가 되지 않을까요?"
그러자 건너편에 앉은 50대 남자가 내 말을 받았다.
"자연 속에서 자연적인 일을 처리하는데 뭐가 나쁘다는 겁니까? 왜 당신들
외국인들은 성냥갑만한 공간 속에 숨어 냄새를 맡아가며 똥 위에 똥을 누고
있지요? 우린 아침마다 대자연 속에 앉아 바람과 구름을 바라보며 볼일을
봅니다. 그것이 우리에겐 최고의 명상이지요."
다른 남자가 말을 받았다.
"그래요. 자연스러움을 혐오하고 인위적인 것들을 추종하는 세상이 됐어요.
우리처럼 물로 닦지 않고 화장지를 사용해야 문명생활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어디 정말로 그런가요. 강은 더 더러워졌고, 나무들은 더 없어졌지요."
그 옆의 남자도 한탄을 했다.
"그 결과 세상은 점점 위선적이 되어버렸어요. 명상적인 생활이 무엇인지도
모그구요. 무엇으로든 자신을 가려야만 문명인이라고 생각하게 됐지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들의 말을 조용히 경청하고 있는
도리밖에 없었다. 자연스런 볼일을 보는데도 지팡이만한 어린 나무에 몸을
가리려고 허둥대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배낭을
잃어버릴까봐 잔뜩 끌어안고서.
버스는 창피함으로 얼굴이 붉어진 한 외국인 여행자와 묵묵히 창밖을 응시하는
사리 입은 여인, 흰 두건 쓴 시크교 노인, 이마에 점을 찍은 처녀, 그리고 또다시
옆사람의 호주머니를 훔쳐보는 손이 시커먼 소매치기 등을 싣고 광활한 북인도
대륙을 달려갔다. 나를 숨겨줄 아무런 은폐물도 없는 들판지대가 야속하긴
했지만, 한편으론 저 따사로운 평원의 햇살과 툭 트인 바람 속에서 내 온 존재를
마음껏 드러낸 채로 평생을 살아가고 싶었다.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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