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워낭소리의 여운
보미/전순복
"도저히 안 일어나요. 낭패 일세." 팔순노인의 입에서 황망한 한탄이 나온다. "아이, 씨…."소의 눈처럼 순박하기만 하던 노인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린아이 같은 한 마디가 튀어나온다. "조금 더 살게 해 줄 수는 없능교?"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네요." 눈물이 그렁그렁한 노인의 눈을 바라보는 수의사는 거짓으로라도 노인을 안심시켜주고 싶었지만…. 사형선고를 받은 듯 비감해진 표정의 노인이 낫을 들어 소의 고삐와 코뚜레를 끊어준다. 그리고는 워낭을 풀어준다. 순간 소의 눈이 크게 뜨이는가 싶었다. 잠시 후, 소는 사십년 지기 동반자를 바라보며 편안하게 눈을 감는다. "좋은 데로 가거래이…." 목젖까지 올라온 울음 덩어리를 다 뱉지 못한 노인은 날갯죽지가 꺾인 작은 새처럼, 망연자실 웅크리고 있을 뿐이다.
경북 봉화의 작은 마을에 마흔 살 먹은 소와 여든 살이 된 할아버지가 함께 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소의 수명은 십 오년이라고 하는데 할아버지의 소는 마흔 살이 된 것이다. 하지만 늙은 소는 아직까지 논에 나가서 일을 한다. 다른 집들은 농약을 치고 기계로 농사를 짓는데 늙은 소와 함께 쟁기질을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안타까운 할머니는 늘 불만이 많다. "우리도 농약 칩시다!" "그렇게 하면 소가 풀을 못 먹어서 안 되는 기라." "그러면 소에게 사료를 먹이면 되지 안능교." 할머니의 거듭된 성화에도 할아버지는 묵묵부답이다.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침을 잘 못 맞아 한 쪽 다리근육이 덜 자라 걸음이 시원치가 않다. 할아버지에게 소는 없어서는 안 될 일꾼이며 소달구지는 멋진 자가용이다. 걸음을 제대로 못 걷는 늙은 소와 아픈 다리로 일을 하는 할아버지는 참 많이 닮아있다. 젊었을 때부터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 아홉 남매를 키우셨다는 할아버지는 몸에 배인 부지런함이 팔순이 되어도 여전하시다.
고혈압증세로 머리가 자주 아파 일을 줄이라는 의사의 당부에도 할아버지는 날마다 소를 끌고 밭으로 나가신다. 소도 이런 주인에게 투정 한 번 없이 아픈 무릎을 끌고 터벅터벅 일터로 간다. 할아버지와 늙은 소의 걸음걸이는 누가 먼저 앞설 것도 없이 항상 일정하다. 굳이 방향을 일러주지 않아도 할아버지를 이끌며 논밭으로….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이 소가 차가 오면 비킬 줄도 아능기라. 하루는 술을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까 집에 데려다 놓았더라고." 소달구지를 타고 장에 나간 할아버지는 장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늘어놓는다. 행여 자신의 늙은 소를 얕보이게 하지 않으려는 속셈이다.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자랑 해 주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소도 감사의 눈길을 보낸다.
하지만 소 때문에 아픈 몸으로 일을 많이 하게 되니까 소를 팔아버리자는 할머니와 자녀들의 지속적인 성화(成火)가 계속된다. 결국,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뜻을 따르기로 하고 삼십년이 넘게 동거 동락해 왔던 멋진 친구(best friend)를 팔기로 작정한다.
우시장에 가기로 한 날 아침, 다른 날 보다 곱빼기로 준 삶은 쇠죽을 전혀 먹지 않고 무엇인가를 감지한 늙은 소의 눈에 눈물이 흐른다. "어르신, 이 소 얼마에 팔고 싶은가요?" "오백만원." "뭐라구요?" 소 값을 모를 리 없는 할아버지가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한다. "이렇게 늙고 마른 소는 뼈다귀 값 밖에 쳐 줄 수 없습니더." "육십 만원 줄 테니까 팔고 가소." "오백만원 아니면 안 팔아!" "에이, 그냥 집으로 데리고 가소." 소장수들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질겨서 고기도 못 먹고 뼈다귀 밖에 소용이 없다는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 늙은 소의 눈에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자신의 몸뚱이가 비싼 값이 되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우는 것처럼, 아침에 흘렸던 것 보다 더 굵은 눈물을 흘린다.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러 놓고서는…. 소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모처럼 여유롭다.
영화 <워낭소리>의 주인공은 다섯 명(名)이다. 「名」이라는 칭(稱)은 사람 수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그들에게도「名」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도 굳이 주, 조연급을 따지자면 늙은 소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주연이다. 그리고 조연급으로는 소리와 자연이 있다. 하지만 다섯 명의 역할이 다 공평하게 배역이 분할되어 있다.
기계를 조립하기 위해서는 커다란 본체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작은 나사들이 꼭 있어야 하는 것처럼 그들의 배역은 적절하고 작품의 완성도에 깊이 관여한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영화에는 배경음악이 거의 없는 대신 소리가 있다. 바람소리, 시냇물소리, 참매미소리, 뻐꾸기소리, 개구리소리, 맹꽁이소리, 말썽꾸러기 송아지를 떠나보내는 젊은 어미 소의 울음소리,
젊은 소에게 밀려 먹이를 못 먹게 된 늙은 소가 도움을 청하는 소리, 여름철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장맛비소리, 쇠죽을 끓이는 가마솥아래 타닥타닥 장작불 타는 소리, 그리고 구수한 쇠죽냄새에 군침 흘리며, 풀쭉풀쭉 우는 소쩍새소리,
할아버지가 맨 무릎으로 논밭을 기어 다녀도, 상처하나 주지 않는 착한 흙의 소리. 산사의 풍경소리, 또는 상여가마의 선소리꾼이 흔들어주는 요령소리 같은, 워낭소리가 있다. 그리고 그 소리들을 넓은 품으로 안아주는 대자연이 함께 어우러져있다.
마흔 살이 되도록 살아온 소는 자신의 목에 달린 방울소리를 들으며 깨우침을 얻었을까? 고요한 산사, 적막을 건드리는 풍경소리에서 얻은 도(道). 그렇지 않으면, 상여꾼의 요령소리 같은 워낭소리에서 이미 피안의(彼岸)세계를 보아왔을지도 모른다. 싸리비처럼 긴 속눈썹 속에 늙은 소의 맑고 고요한 눈망울은 경지를 깨우친 그것이었다.
"우리 영감이 이렇게 오래 살 수 있었던 것도 다 소 덕분이고, 아홉 남매 다 공부 시킬 수 있었던 것도 이 소 덕택이지요." 당신보다 소를 더 끔찍하게 아낀다는 생각에 항상 불평이 많으신 할머니가 앙상하게 말라있는 늙은 소를 보며, 모처럼 살가운 칭찬을 해 준다. "지가 먼저 죽으면 내가 상주 질 해주지 뭐."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친구로서, 그보다 더 듬직한 말을 할 수 없는 할아버지다.
겨울바람이 골짜기를 스쳐 지나가는 어느 날. " 이려, 이려!" 할아버지가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쳐도 소는 일어나지 않는다. 할아버지의 농기구와 자가용 노릇을 하면서 할아버지와 함께, 참 많이도 걸어 왔던 소. 늙은 소는 그렇게 할아버지에게 상주 질을 부탁하고는 먼저 떠나갔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겨울에 쓸 땔감을 산더미처럼 해 놓은 채….
사십 년 지기 친구가 떠나가는 순간, 싸리나무에 내린 눈처럼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던 할아버지의 백발이 푹 꺾인다. 날개 다친 작은 새처럼 마냥 웅크리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내 가슴에 상여꾼의 요령 소리처럼 땡그랑 땡그랑 워낭소리가 울려왔다.
<하눌마을>골짜기에 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늙은 소와 할아버지가 아픈 다리를 끌며 함께 다니던 그 들녘에도 "땡그랑 땡그랑……워낭소리 울리겠지. 영화가 끝나도 관객들은 한 동안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울음 끝을 정리한다.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메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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