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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행복공식/구광열

유앤미나 2012. 7. 26. 23:50

행복공식 




쉬운 듯 어려운 질문이 있습니다.: "난 행복한가?"

이 짧은 문장이 가끔은 왜 이리 복잡하게 얽인 실타래나 난해한 큐브 맞추기 같을까요. 혹 개념의 불확실성 때문은 아닐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행복의 개념을 정리하기 위해 니코마코스 윤리학 같은 대저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복에 관한 정의를 읽다보면 겨우 실마리를 찾았다가도 미끌 놓쳐버리고 마는 느낌입니다. 덕德이니 선善이니 중용中庸이니, 질의어인 행복보다도 몇 배 더 어려운 낱말들로 답해오니 머리가 지끈 아파옵니다.

대신 우리말 사전을 들쳐봅니다.: “행복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갖게 되는 욕구 충족에 기한 만족감이다"

이제 행복의 개념이 한결 말랑해진 느낌입니다. 하지만 욕구?, 만족감?, 여전히 알 듯 모를 듯, 눈앞의 겨울안개 같은 낱말들로 모호해집니다. 체온계 같은 게 있어 행복을 잴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행복하냐고 또 얼 만큼 행복하다고 눈금으로 보고 또 보여줄 수 있다면…….

하긴, 행복을 계량적으로 표시할 수 있을 법도 합니다. 욕구와 만족감 중 욕구를 분모에다 만족감을 분자에다 놓은 뒤 곱하기 100을 하는 겁니다. 그러면 행복의 정도가 백분율로 표시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때 분자에 해당하는 "만족감"을 늘리는 일은 어렵지만 분모에 해당하는 “욕구”내지 “기대”를 줄이는 일은 쉬울 뿐만 아니라, 기하급수적인 효과까지 기대할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분모를 줄이고 분자를 늘일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이 문제 풀이에 능한 이들이 지구상에 그 본보기로 존재합니다. 중남미사람들입니다. 

중남미 인들의 돈 버는 목적은 참으로 뚜렷합니다.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셋 이상 모이면 고스톱을 친다지만 거기선 춤을 춘다 합니다. 돈 벌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춤을 추기 위한 오디오 세트를 장만하는 일입니다. 거의 매주 "피에스타"(Fiesta)라 불리는 파티에서 룸바, 차차차, 살사, 메랭게 등, 듣기만 해도 어깨가 들썩거리고 엉덩이가 씰룩대는 열정적인 춤을 춥니다. 생일, 결혼식, 국경일 심지어 제삿날에 해당하는 "죽은 자의 날"(“El día de los muertos”)에도 기꺼이 춤을 춥니다. 쿠바의 춤꾼 파파 몬테로(Papá Montero)는 죽을 때도 미소를 띤 채 죽었으며, 유언으로 ‘눈물대신 신나는 음악을 연주해 달라’했습니다. 악단들은 그의 유언대로 장례식에서 그가 즐겨 추던 춤곡들을 신나게 연주해주었습니다. 중남미에선 또한 누구의 생일인지 누구의 결혼식인지 누구의 장례식인지가 중요치 않습니다. 식장에 참석하면 모두 하객, 조문객이며 친구입니다. 왜일까요? 왜 그들은 그리도 즐겁게 사는 걸까요? 그들의 즐거운 삶의 방식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3권 10장에서 말하는 촉각과 관련된 쾌락, 특히 방종과 관련된 쾌락추구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샴페인처럼 넘쳐나는 희열을 저 역시 중남미에서 느끼곤 합니다. 그곳에서 찍은 사진에선 치즈라고 해주는 사람도 없건만 저 자신 기꺼이 웃고 있으니까요.

멕시코 유학시절,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우리 속담을 스페인어로 설명하느라 애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행복을 제철과일 따먹듯 하는 그들은 뱁새에겐 뱁새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 따로 있다고 믿으며, 그들의 행복공식의 분모 또한 작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어머니께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십니다.: “지 잘난 맛에 산다.” 이 말을 하실 땐 으레 웃으시는데, 문제는 그 웃음이 약간 김빠진 맥주처럼 씁쓸한 맛을 남긴다는 겁니다. 당신께선 결코 잘난 맛없이 사신다는 속내를 보이시는 거지요.

이 가을, 생각해봅니다. 그렇다면 난 잘 난 맛에 사는지. 그러고 보면 그런 듯합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거. 참 잘 난거잖아요. 한 사람의 성공을 한 평생 얼마나 행복했던가로 친다면 전 이미 탄생과 더불어 성공한 사람입니다. 지구 상 수십억의 여인 중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것만큼 더 이상의 성공은 없을 테니까요.  

어머니, 불행하신 당신을 떠올리는 아들은 왜 이리도 행복한지요. 오십이 넘어서야 결코 뒤집을 수 없을 저만의 행복공식을 마련했습니다. 분모에 못난 저를, 분자에 기꺼이 잘난 당신을 모셔놓는 일입니다.

어머니, 이제 더 이상 행복을 느끼기 위해 철새처럼 멀리 중남미로 날지 않으렵니다.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빛과소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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