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아버지는 방송국 엑스트라 일을 구했다며 무척이나 들뜬 모습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그 날 밤 12시까지 방송국에 가야 한다며 짐을 챙기셨다. 사극 아르바이트인데 2박 3일 정도 지방에서 합숙을 해야 한다며 친구분이랑 함께 간다고 하셨다. 집에만 계시던 아버지가 모처럼 일하러 나가신다니 어머니도 참으로 좋아하셨다. 하지만 나는 짐을 챙기는 아버지를 보면서 왜 그리 마음이 싸하던지, 가지 마시라고 아버지를 말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모처럼 구한 일자리를 놓치기 싫은 눈치셨다.
아버지가 방송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수백 명의 엑스트라 지원자가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린 탓에 인원이 초과되어 아버지와 친구분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가 되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그 때 마침 뒤에서 누군가가 달려오더니 엑스트라 두 명이 부족하다고 했던 것이다. 아버지와 친구분은 얼른 가겠다고 나섰고 곧바로 그 사람을 따라 버스에 몸을 실었다.
찻속에서 새우잠을 자며 먼 길을 가고도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촬영이 시작되었다. 처음에 아버지는 시체가 되셨다. 들것에 실려 가는 시체가 되기도 하고, 적과 싸우다 죽기도 하고…. 그 다음엔 포로가 되어 적의 무리 속에서 도망치기도 하고 대문을 지키는 포졸이 되기도 했다.
하필 비가 많이 내려 새벽의 촬영장은 무척 추웠다고 한다. 다행히 아버지는 어머니가 챙겨 준 운동복을 입고 있어서 그나마 추위를 피할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추워서 이를 바들바들 떨 정도였다고 한다. 하루는 같이 간 친구분이 몇 시간이고 보이지 않아 의아해하고 있는데, 한참 후에야 “나 죽을 것 같아”라고 말하며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분은 포로 역을 맡아 세 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땅바닥에 꿇어앉아 있었고, 그 다음엔 곧바로 또 시체가 되어 사람들이 자신을 강물에 던지는 장면을 촬영했던 것이다. 그 친구분에겐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난 아버지가 그 역을 맡지 않은 것에 정말 감사드렸다(그 친구분은 며칠간 감기몸살로 앓아 누우셨다).
일이 너무 고되다 보니, 화가 나서 도중에 그냥 가버린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하는 중간중간 집에 전화를 하셔서는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그러게 그렇게 말렸건만 왜 가서 고생을 하시는지, 화가 나고 속이 상했다. 그렇게 해서 버는 돈이 얼마나 된다고…. 그 많은 엑스트라가 한 방에서 새우잠을 잔다고 하는데, 몸도 약한 아버지가 잠까지 편히 주무시지 못했을 걸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아팠다.
마침내 아버지는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우리는 아버지의 고생담을 들으며 말없이 울고 웃었다. 며칠 뒤 아버지는 방송국에 가서 아르바이트 비 13만 원을 받아오셨다.
지금도 아버지는 수선집에서 쉬는 날도 없이 일하신다. 그런 아버지를 생각하면 잠자는 시간도, 수다를 떠는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 역시 휴일도 없이 일하면서 온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가기 위한 적금을 붓고 있다. 여행 한번 제대로 못해 본 부모님께 세상의 많은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여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