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로왕 전설
"수로왕 신화는 주몽, 혁거세, 탈해, 알지 등과 같이 난생신화로서 수로와 탈해가 벌이는 시합은 다른 부족에서 모시는 신보다 자기들이 받드는 신이 더 우월함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아유타국(인도) 공주와의 결혼으로 무대가 멀리 인도로 옮겨졌고 불교적인 색채가 반영된 것을 엿볼 수 있다. 수로왕의 부인 허씨는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 |
한반도 동남쪽 끝에 자리잡고 있는 낙동강은 태초로부터 이 고장의 젖줄 노릇을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었지만 나라의 이름도 없었고, 또한 군신의 칭호도 없었다.
다만 이곳에 몰려온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아홉 마을을 이루고 살았는데 마을마다 간(干)이라고 하는 추장이 있었다. 그들은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귀간 등 아홉 사람인데 이들을 통틀어 구간(九干)이라고 했다. 이들은 추장으로서 각기 자기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통솔했다. 아홉 마을에 사는 사람은 모두 7만 5천 명이나 되었는데 이들은 그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 밥을 먹는 정도의 생활을 하였다.
이 지방에서는 매년 3월 첫 뱀의 날을 계욕일이라고 해서 계단을 만들어 놓고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냈다. 아홉 마을의 어른과 여러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년을 비는 제사였다. 아홉 마을이 힘을 합해서 지내는 제사이기 때문에 성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음식을 정성들여 차려놓고 경건한 마음으로 풍년이 들기를 빌었다. 제사가 끝나면 물가에 가서 목욕을 하고 마음껏 음식을 먹고 마시고 춤과 노래로 즐겼다. 이 날도 아홉 마을 추장들은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한창 제사가 무르익어 갈 무렵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며 바람이 불더니 어느새 화창한 날씨로 변하였다. 구간들은 어리둥절한 채 서서 구지봉을 바라보았다. 구지봉에는 안개 구름이 감돌고 있었다. 이 때, 구지봉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이 삼백 명의 사람들은 구지봉으로 달려갔다. 조금 전에 들리던 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리는데 그것은 사람의 소리 같이 들렸다. 그러나 그 소리를 내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곳에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
우람한 목소리였다.
"우리들이 있다."
구간들이 대답했다.
"내가 있는 이 곳이 어디인가."
"구지봉이다."
"그러면 잘 듣거라. 나는 황천(皇天)의 명령으로 이곳에 와서 나라를 새로 세우고 임금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이곳에 내려왔으니 너희들은 모름지기 산 꼭대기의 흙을 파면서 이렇게 노래하여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 놓아라
내놓지 않으면 구워서 먹겠다
이 노래를 외치면서 춤을 추어라. 그러면 곧 대왕을 맞이하게 되어 더욱 기뻐서 춤추게 될 것이니라."
구간들은 이 말을 듣고 무리들과 함께 모두 기쁜 마음으로 노래하고 춤추었다. 그런 뒤 얼마 되지 않아서 그들은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하늘 한 가운데에서 자주빛 줄이 구지봉으로 길게 드리워졌다. 그들은 신기한 생각이 들어서 줄끝을 찾아보았더니 붉은 보자기에 금합이 싸여 매달려 있었다.
그들은 금합을 열어 보았다. 아, 그랬더니 금합 속에는 해같이 둥근 황금 알 여섯 개가 들어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모두 놀랐으나 또 한편으로는 신비로운 일이어서 기쁘기도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알들을 향해 수없이 절을 했다.
조금 뒤에 그들은 알을 다시 싸서 아도간의 집으로 가져갔다. 아도간은 금합을 아도간의 집 탑(榻- 깔거나 눕는 좁고 기다란 의자) 위에 모셔 놓았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에서 왜 여섯 알을 보냈는지 그 뜻을 몰랐다. 그들은 그저 뭔가 좋은 일인 것 같아서 기뻐할 따름이었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사람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아도간은 금합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금합을 열었다. 그랬더니 여섯 개의 황금알은 모두 사내아이로 변해 있지 않은가. 그들은 모두 용모가 빼어나게 잘 생겼다. 아도간은 그들을 상에 앉히고 모두 엎드려 절을 하였다.
사내아이들은 무럭무럭 커갔다. 십여 일이 지나자 그들은 키가 9척이나 되고 얼굴은 용 같았으며, 눈썹은 여덟 가지 색으로 되었는데 눈동자는 둘씩이나 되었다. 그들은 금빛 알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을 김(金)이라 하고 가장 먼저 태어난 사내아이를 수로(首露)라고 불렀다.
구간들은 그들을 임금으로 대하여 무질서했던 이곳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김수로를 첫 번째 임금으로 모시었다. 나라는 대가야 또는 대가락이라 하였는데 이는 6가야 중에 하나였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다섯 가야의 임금이 되었는데 다섯 가야는 아라가야, 고령가야, 대가야, 성산가야, 소가야였다.
대가락을 이룬 여섯 가야국은 동쪽으로는 황산강, 서쪽으로는 창해, 서북쪽으로는 지리산, 동북쪽으로는 가야산에 이르렀다.
수로왕은 왕위에 오르자 임시로 궁궐을 짓고 거처했다. 임시로 지은 궁궐은 말할 수 없이 검박했다. 풀로 만든 지붕은 이엉을 자르지 않았고, 흙으로 만든 계단은 석 자를 넘지 못하게 하였다.
수로왕이 즉위한 이듬해 봄에 수로왕은 신하들과 함께 새 도읍지를 정하기 위하여 신답평으로 갔다. 수로왕은 사방을 둘러보고 나서 신하들에게 말했다.
"이곳은 여뀌 잎사귀처럼 좁다랗고 길기는 하나 산천이 빼어나게 아름다워서 16나한 같은 신물이 늘 여기서 지켜줄 것이오. 구지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줄기가 우뚝 솟았는가 하면 거기서 시작하여 다시 세 번, 그리고 이곳에 이르기까지 다시 세 번, 이리하여 모두 일곱 번을 솟아오른 형상이 마치 칠성(七聖)이 살 만한 곳이오. 이곳을 개척하여 나라의 터전을 열어놓으면 마침내 훌륭한 나라가 될 것이오."
수로왕의 말을 들은 신하들은 모두 왕의 뜻을 따르기로 작정했다. 그리하여 도성을 만들 계획이 마련되었는데, 외성의 둘레가 1천5백 보였으며 그 안에 궁궐과 여러 관서의 청사와 무기고 및 창고를 건축할 터를 잡았다. 그 뒤 수로왕은 명령을 내려 새 궁궐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그 해 시월에 시작하여 이듬해 이월에 마쳤다. 수로왕은 새 궁궐로 옮겨가서 나라 일을 부지런히 보았다.
태평한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용성국의 왕자 탈해가 바닷길을 따라 가락국으로 왔다. 그의 키는 석 자이고 머리통의 둘레는 한 자였다. 그는 홀연히 수로왕의 궁궐로 들어와서 소리쳤다.
"수로왕은 들으시오. 나는 왕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왔소이다."
수로왕은 뜻밖의 침입자를 대하고 위엄있게 말했다.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왕위에 오르도록 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렸다. 그런데 그대가 감히 하늘의 명을 어기고서 왕위에 오르겠다니 내가 줄 수 없다. 어찌 나를 따르는 백성들을 너에게 맡기겠는가."
이 말을 들은 탈해는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좋다. 우리 서로 나와서 재주를 겨루어 승부를 정하자."
수로왕은 좋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재주를 겨루는데, 탈해는 한 마리의 매가 되어 하늘 높이 올라갔다. 이것을 본 수로왕은 금새 독수리가 되어 그의 뒤를 쫓아 올라갔다. 그러자 탈해는 참새가 되었다. 수로왕은 얼른 새매가 되었다. 이게 모두 잠깐 동안의 일이었다.
탈해는 제 모양으로 돌아왔다. 수로왕도 역시 자기 모양으로 돌아왔다. 기세가 등등하던 탈해는 수로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미처 대왕을 알아보지 못하고 경솔하게 행동한 것을 사과드립니다. 매가 독수리에게, 참새가 새매에게 쫓기되 죽음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대왕께서 살생을 싫어하신 인덕으로 압니다. 제가 외람되게 왕위를 다툰 것을 진실로 사과드립니다."
수로왕은 인자하게 웃으며 그를 용서했다. 탈해는 올 때와는 달리 풀이 죽어서 바다로 나가 배를 타고 떠났다. 수로왕은 탈해가 이곳에 머물러 반란을 일으킬까 경계하여 수군 오백 척을 내어 탈해를 쫓았다. 탈해는 그곳에서 빠져나와 신라 쪽으로 달아났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수로왕에 대한 백성들의 신망은 더욱 높아갔다.
그런데, 한 가지 백성들에게 근심이 있었다. 그것은 왕께서 훌륭한 배필을 맞이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루는 구간들이 수로왕을 찾아뵙고 아뢰었다.
"대왕께서 이 땅에 강림하신 이래로 나라가 번창하고 있으나 아직 좋은 배필이 없으니 걱정입니다. 아뢰옵기 외람되오나 저희들에게 있는 처녀 가운데서 좋은 처녀가 있으면 고르시어 왕비로 맞이하십시오."
수로왕이 대답했다.
'내가 이곳에 내려온 것은 하늘의 명령이오. 나와 짝하여 살 왕비도 하늘이 주실 것이오. 그러니 그대들은 너무 염려하지 마시오."
구간들은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그들은 쓸쓸하게 수로왕의 곁에서 물러 나왔다. 그 뒤 수로왕은 왕비가 올테니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명령하며 유천간에게 가벼운 배와 날쌘 말을 이끌고 남쪽바다에 있는 망산도에 가서 기다리게 하고, 신귀간에게는 승점 땅에 나가 있다가 빨리 알리라고 말했다. 신하들은 너무 뜻밖의 일이라 아무 영문도 모르고 왕이 시키는 대로 했다.
유천간은 왕명을 받고 쏜살같이 망산도로 나갔다. 바로 그때, 가락국 앞 서남쪽 바다에 붉은 돛을 단 배 한 척이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북쪽으로 향해오는 것이 보였다. 망산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천간은 횃불을 올렸다. 배는 마구 달려와 앞을 다투어 상륙하려고 하였다. 승점에 있던 신귀간은 이 광경을 보고 대궐로 달려가 왕에게 아뢰었다. 수로왕은 이 말을 듣고 기뻐했다. 그리고 구간을 보내어 그들을 영접해 오게 했다. 구간들이 달려가 왕후를 모시려 했다. 그러자 왕후는 입을 열었다.
"나와 그대들은 평소에 알아온 터수가 아닌데 어찌 내가 경솔하게 따라가겠소."
유천간 등은 왕에게 돌아가 왕후의 말을 전했다. 왕은 왕후의 말이 그럴 듯하여 신하들을 데리고 대궐을 나서서 서남쪽 60보 가량 되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장막을 치고 임시로 행궁을 마련하여 왕비를 기다렸다.
"지금 대왕께서 마중을 나와 계십니다."
수로왕의 신하가 달려가 말했다.
왕후는 이 말을 듣고 배를 벌포 나루에 매어놓고 뭍으로 올라 언덕에서 잠시 쉬었다. 그런 다음 왕후는 자기가 입고 있던 비단치마를 벗어 산신에게 예물로 바쳤다. 왕후는 자기를 따라온 신보, 조광의 내외와 노예 등 20여 명을 이끌고 사신의 안내를 받아 왕이 와서 임시로 머물고 있는 행재소 가까이 갔다.
수로왕은 왕후의 행차를 멀리서 바라보다가 그가 가까이 오자 행재소를 나가 그를 맞이하였다.
"멀리서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소. 과인은 그대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소."
수로왕은 그를 장막 안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수로왕은 왕후를 모시고 먼 길을 따라온 시종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귀한 선물을 내린 다음 편히 쉬도록 하였다.
드디어 저녁이 되었다. 수로왕은 왕후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건너갔다. 왕후는 조용히 왕을 항하여 입을 열었다.
"저는 아유타국(지금의 인도)의 공주입니다. 성은 허(許)씨이고 이름은 황옥(黃玉)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이는 열여섯 살입니다. 제가 본국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그러니까 금년 5월의 어느 날입니다. 부왕과 왕후는 지난 밤 꿈에 황천상제를 뵈었다고 하면서 상제는 가락국의 임금 수로는 하늘이 내려준 신령스러운 사람이나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저를 보내어 짝을 짓게 하라는 분부를 하였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저에게 곧 이곳으로 가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배를 타고 이곳에 와서 용안을 뵙게 되었습니다."
왕후는 약간 수줍은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수로왕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신령을 받고 태어나서 공주가 언젠가 이 나라에 올 것을 알았소. 그래서 신하들이 왕비를 맞으라고 권하였으나 따르지 않았소. 이제 현숙한 공주를 맞이했으니 더 이상 기쁜 일이 어디 있겠소."
수로왕의 말을 들은 왕후도 그 기쁨을 형언할 길이 없었다. 그들은 하늘이 이루어준 결합이었으므로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었다.
두 밤이 지난 뒤에 왕후를 따라 온 시종들과 배를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배에 딸린 사람들에게 각각 쌀 열 섬과 베 30필을 주었다.
수로왕은 왕후를 맞이한 뒤로 더욱 나라를 잘 다스려 대가락국의 기틀을 바로 잡아나갔다. 그리하여 나라는 점점 융성해갔다.
그의 나이 157세가 되던 해 봄에 세상을 떠났다. 백성들의 슬픔은 대단했다. 그들은 구지봉 동쪽에다 장사를 지내고 왕후가 처음 와서 내린 나루터가 있는 마을을 주포촌(主浦村)이라 하고 비단 치마를 벗었던 산등성이를 능현(綾峴)이라 하였다. 그리고 붉은 돛대가 들어온 바닷가를 기출변(旗出邊)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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