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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밀로의 비너스

유앤미나 2012. 7. 4. 14:19

 

 

       밀로의 비너스는 어떤 팔 모양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약200년 전인 1820년 봄에 그리스의 한 농부는 새 집을 장만하여 들떠있었습니다.  새 집을 멋지게 장식하고 싶어진 그는 곧장 메로스섬으로 향했습니다.  그 곳에는 고대의 유적지가 여기저기 흩어져있어서 운이 좋으면 괜찮은 물건들을 건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극장 유적지 근처를 뒤지던 그는 마침내 몇 군데가 부러졌지만, 꽤 쓸만한 조각상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마침 근처에 부러진 팔과 받침대도 찾은 터여서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의 귀족들은 고대의 유적들로 집이나 방 안을 가득히 채우고 자랑하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어찌어찌하여 이 조각상을 손에 넣은 프랑스의 한 귀족은 자기가 가지고 있기에는 부러진 팔이 보기 싫었던지 왕에게 바쳐서 생색내기라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걸 받은 루이18세도 달갑잖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젠장 주려면 좀 깨끗한 것이나 줄 것이지 이런 것을 어디에 써먹는단 말인가?  이 따위의 것은 수리비가 아깝지......’  결국 이 가엾은 조각상은 루브르 미술관의 지하 창고에 버려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영원히 받침대와 팔을 잃어버린 불구의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거미줄을 둘러쓰고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이 조각상이 바로 고전미의 절대적 상징인 ‘밀로의 비너스’입니다.  키204cm에 47인치가 넘는 가슴둘레, 38인치의 허리둘레, 50인치가 넘는 엉덩이 둘레.......  이해하시기 어려울 터이니 대충 168cm의 신장을 가진 보통 여자의 몸매로 바꾸어 보겠습니다.   ‘39-32-42’  이것이 비너스양의 몸매입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여인의 몸매입니까?

  실제로 세계 미인대회가 처음으로 개최될 때, 이 사이즈를 기준으로 삼았다가 거한의 아줌마가 1등의 영예를 차지하는 바람에 2회 대회 때부터 심사 기준을 바꾸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누가 비너스 상을 뚱뚱한 아줌마라고 비웃을 수 있습니까?  오히려 요즈음의 연예인들 같이 비정상적이고 조작된 몸매가 아니기에 수 천 년이 지난 지금, 지구 반대편의 우리에게 조차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고 있지 않을까요?

  ‘카미유 클로델’이란  엉터리 영화로 예술적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을 로뎅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오, 밀로의 비너스여.  당신을 조각한 놀랄만한 조각가는 이 고귀하고 자연스러운 생명 자체의 전율로 너의 등을 꿰뚫는 기술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오, 비너스, 생명의 개선문이여, 진리의 징검다리, 우아의 반지여!  ......  단단한 두 다리로 힘 있게 서서 두 가슴과, 바다처럼 빛나며 너그러운 배에 넘실거리는 여운으로 호흡하는 동체여!  이것은 고요한 바다와 같은 아름다움.......  참으로 당신은 신과 인간의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이 비너스는 진품이 아닙니다.  옛날 왕이나 장군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점령지의 조각이며 보물들을 마구 약탈했습니다.  그들은 당당하게 귀환하여 솜씨 좋은 장인들에게 빼앗아온 조각들을 보고 여러 개 똑같이 만들도록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김 장군 하나 박 귀족 하나 사이좋게 나누어 가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감탄하는 이 조각상은 기원전 1세기의 조각을 4세기 경에 베낀 모조품으로 생각됩니다. 



          < 밀로의 비너스>  루브르 미술관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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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결혼식에 초대되지 않은 불화의 여신 ‘에리스’는 금으로 만든 사과 한 알을 잔칫상에 던져 놓고 가버립니다.  그리스 신들은 아시다시피 좀 철이 없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는 문구가 새겨진 사과를 차지하려고 여신들이 서로 다투다가 트로이의 전쟁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그 사과는 비너스의 차지가 됩니다.

  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비너스와 금 사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깊은 관계를 가집니다.  조각상이 발견 되었을 때, 사과를 쥔 왼팔이 함께 나왔다는 옛 기록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비너스의 팔 모양을 어림할 수 있는 다른 하나는, 뼈의 모양입니다.  어깨 뒤쪽에는 역삼각형의 손바닥만한 널찍한 뼈가 있습니다.  견갑골이라 불리는 이 뼈는 항상 팔과 함께 움직입니다.  팔을 오르내리거나 벌리고 오므릴 때, 견갑골도 따라서 움직입니다.  그래서 그 모양을 살펴보면 팔의 움직임을 짐작해 낼 수 있는 것이지요. 

  로마의 바티칸 미술관에는 에로스(큐피드)와 함께 서 있는 아프로디테(비너스)상이 있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이것은 밀로의 비너스상의 팔 모양을 어림짐작해 내는데 결정적인 단서를 줍니다.  두 조각상은 신기하리만치 닮은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다리에 무게를 싣고 왼쪽다리를 가볍게 앞으로 내 딛고 있는데, 이런 자세에서는 오른쪽 골반이 위로 올라가게 됩니다.  등뼈는 오른쪽으로 부드럽게 휘어지고 왼쪽 어깨가 위로 올라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시선은 올라간 어깨 쪽으로 두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거울 앞에서 한번 따라해 보시면 쉽게 이해가 갈 것입니다.

  두 개의 비너스는 모두 이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차이를 말하자면, 밀로의 비너스는 눈길을 드리운데 반하여, 바티칸의 그것은 하늘을 향하고 있다는 정도입니다.  아마도 밀로의 비너스는 그를 올려다보는 에로스와 눈길이 맞닿아 있었을 것입니다.  옷 주름으로 보아 그녀의 오른손은 바티칸의 것처럼 옷깃을 잡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좀 더 자연스럽게 늘어뜨리고 있을 것입니다.  어깨의 각도나 몸의 기울기, 견갑골의 모양을 종합하면  왼 손은 밀로의 비너스가 팔꿈치를 조금더 들었을 뿐,두 조각상 모두 거의 같은 모양을 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 손위에는 자그마한 사과가 살포시 놓여 있었을 것입니다.            

         

 < 아프로디테상 > 바티칸 미술관  로마       

 

 

루브르에 가면 두 여인이 있다.

11월 마지막 날 루브르를 찾았을때도 그들은 거기에 있었다
루브르의 두 여인..
한 여인은 미소의 신비로 다른 한 여인은 형상의 완벽함으로
우리를 사로 잡는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한 여인은 모나리자요 다른 한 여인은 밀로의 비너스...
모나리자는 회화작품으로 밀로의 비너스는 조각작품으로
각 각 그 쟝르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지금은 루브르라는 지붕밑에 같이 있지만 비너스는 기원전 130-120년의 작품이요
모나리자는 기원 후 1503경의 작품이니 조각이라는 쟝르가 무려 1600여년이나
회화에 앞서 완성의 극치에 이르고 있다고 말할수도 있겠다.
물론 예술에서 영원한 완성과 극치는 없지만 일단 표현기법의 완성도에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인류가 먼저 손에 쥐었던것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대답은 간단하다
그것은 당연히 붓이 아니고 돌이었다.
아스트랄로피테쿠스가 나무에서 내려와 두발로 땅에 섰을때
믿을수 있던것은 단지 하나…그것은 돌뿐이었다
그것은 기본연장이자 무기,말하자면 만능열쇠였다
쉽게말해 돌을 삶아 먹지만 않았지 돌가지고 모든걸 다 했다
이름도 다양한 찍개, 자르개, 주먹도끼, 뚜르개, 찌르개, 새기개…
이걸로 하는일도 다양해서 치고, 때리고 잡고 벗기고, 자르고, 찌르고…
그것도 유인원이었던 인류의 조상이 돌을 손에 쥔 그날부터
기원전 3000년 어간에 청동기가 시작할때까지
무려 근 3백만년동안을 인류는 돌에만 의지해 생존해 온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돌과 더불어 인류는 진화해 왔으니
돌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동반자요 벗인셈이다

이처럼 오래동안 벗해왔던 돌도
결국 청동기 시대와 더불어 용도폐기되고 말았다

그러나
돌은 희랍 예술사에서 보듯 화려하게 재 등장했다
연장이었던 돌이
이번에는 철이라는 다른 연장에 의해 다듬어지는
연장의 대상이 되어 되 돌아 온것이다.

결과는 금의환양이었다
연장이었던 돌의 투박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연장의 대상으로 태어난 돌의 모습!

3백만년 돌과 더불어 익숙해진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다

그것은 길고 긴 예술사의 새로운 장의 시작이었고
희랍 미술사의 숨막히는 승리의 스토리였고
그 최고 스타가 바로 밀로의 비너스인것이다

 

희랍예술의 본질은 조각에 있다고 말한다
그 중에서도 밀로의 비너스는 가히 최고의 걸작이라 말 할만하니
나의 이러한 흥분이 과장은 아닐것이다

물론 희랍미술 이전에도
우리는 수메르, 에집트, 바빌로니아, 앗시리아등에서
조소예술의 예를 본다.

하지만 그것들은 미술사의 진화적 차원에서 의미를 가질뿐
진정한 미인식의 공감대를 나누기 어렵다고
나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말하고 싶다.

이에 반해
희랍예술이야말로
보편적인 미적 공감대를 느끼게 해주는 최초의 예라는것이
나만의 비밀스러운 주관적 확신일까?

밀로의 비너스는
우리 모두가 희랍예술에서
보편적인 미적감각을 공유할수 있음을 보여주는
충분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밀로의 비너스…

이 여인은
원래 정확히 말해 “멜로스의 아프로디트” 이다
멜로스라는 그리스의 섬에서 발견된 아프로디트이다.

발견후 정황상 半裸의 이 여인이
아프로디드라고 확인하기 까지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밀로의 비너스란 로마식 명칭일뿐이다
(이하 계속 밀로의 비너스로 칭하기로 한다)

아프로디트..
그녀는 누구인가?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제우스 혹은 우라누스의 딸로서
아름다움, 사랑, 多産의 여신이다.

아프로디트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있지만
나의 관심은 신화의 서술적-문학적 아름다움이 아니고
시각적-예술적 아름다움이다

따라서 중요한것은
그녀가 제우스의 딸이냐 우라누스의 딸이냐 그것이 아니고
이 작품 “밀로의 비너스” 가 누구의 손길에 의해 탄생되었느냐 하는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는 그 藝人의 이름을 알지 못한다

우습게도 역사가 기억할수 있는것은
1820년에 우연히 그녀위를 찍던 곡괭이를 가졌던
요르고스(Yorgos)라는 멜로스섬의 한 농부의 이름일뿐이다

비너스에 팔이 없는것은
그러나 결코 요르고스의 힘찬 팔뚝에 책임이 있는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발견 당시부터 있어야 할 제자리에 없었다

우여곡절끝에 이 작품을 헌정받은 프랑스의 루이 18세는
이 아름다운 여인에게 팔을 돌려주기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으나
결국 실패한채 루브르에 소장됨으로써
밀로의 비너스는 “미완의 완벽”이라는
최고의 모순미를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비록
예인의 이름을 우리가 알지 못한다해도
단 하나 분명한 사실은 밀로의 비너스는
기원 1000년에서 부터 시작한 희랍예술의 결정판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밀로의 비너스를 낳은것은 곧 희랍예술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희랍예술의 본질을 살펴본 다음
이 여인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그 미학의 실체가 “손에 잡히듯” 느껴지리라 생각한다

희랍예술
그 본질은 무엇인가?

첫째,
희랍예술은 아름다움 그 자체를 본격적으로 추구한 최초의 예술이다.
주술적이거나 정치권력적인 예술외적 요인이 배제되어 있다.
물론 종교적인 희구나 기능성까지 사라진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종교적 목적보다 그 표현 자체의 미적 완성도에
최선을 다 하고 있다

둘째,
희랍예술에서 아름다움의 이상은 조화였다
이것은 단지 미술에만 해당되는것은 아니고
사실은 희랍정신 일반에 해당되고 있다.
즉 철학, 음악, 연극, 정치…
모든 분야에서 진, 선, 미 최고의 합일로 지향되는것
그것은 조화였다

따라서 희랍예술에는
어느 일정부분이 과장되어 강조되는 경우가 없다.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단지 한 부분 부릅뜬 눈이
전체의 조화를 깨며 강조되는것은 예컨대 금기였다
모든 부분은 전체의 조화에 어울려야 했다

드라마틱한 감정의 얼굴표현은
단지 노예들이나 야만인들의 표현에서만
예외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 이것을 잘 말해준다

셋째,
아름다움의 대상을 인간의 육체에서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작품의 대상은 거의가 영웅이거나 신화적 신들이다
하지만 이름만 신을 빌리고 있을뿐 그 표현은 철저히 “인간적”이다

도대체 어느 나라 작품에서
신의 “아랫도리” 까지 불경스럽게 표현되는 경우가 있는지 묻고 싶다

결국
보편적 美 자체 추구
조화에서 발견한 美의 보편성
인간의 몸에서 보편적 美의 이상을 발견...
이 세가지에 희랍예술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하겠다

이 정신은 희랍예술사에서 3 단계를 거치면서
구체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제 일기는 고대적(800-500 BC) 시기로써
이 당시의 조각은 아직 에집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제는 남녀상인데 다리를 모은 곧은 자세, 정면을 응시하는 시선,
남자는 누드, 여자는 옷을 걸친것이 그 특징으로 되어 있다

제 이기는 고전시대(500-400 BC) 이다
고전기는 말 그대로 희랍예술이 최고의 수준에 도달한 시기이다
피디아스(Phidias)에 의해 파르테논 신전이 세워지고
미론(Myron)에 의해 우리가 잘아는
"원반던지는 사람”이 만들어지던
황금기가 바로 이때이다.

무엇이 희랍인들로 하여금 이러한 황금기를 가능케 했을까?

이때는 희랍이 막 마라톤 전쟁(BC 490)에서 강국 페르시아에 승리하여
자신감이 넘치고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것은 철학에도 영향을 미쳐
합리적인 이성이 신화적 사유를 대치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세계는 이에따라 설명가능한것으로 여겨졌고
보이는 세계가 곧 “이상의 현실”로 발견되어 지기 시작했다

바로 이러한 정치적, 철학적 바탕에서
최고의 예술가들은 미의 최고이상을 현실세계에서,
인간에게서
그리고 급기야 인간의 몸에서 추구한것이다

단지…
아직은 그러나
神이라는 “윤리적 방패막”이 필요했을뿐이다.

하지만
정치적 자유와 자신감에서
인간과 그 육체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 "여유"의 배후에는
노예제도라는 또 다른 그늘이 있음도 지적만은 해두고 싶다

제 3기는 후기 헬라 시대(323-31 BC)로써
보다 드라미틱하고 동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밀로의 비너스는 바로 후기 헬라시대의 작품인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희랍예술의 정신과 축적된 기술이 그대로 녹아 있다

하지만
그녀는 단순히 후기 헬라기의 특징만을 보여주는것이 아니다
바로 여기에 밀로의 비너스의 예술성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녀의 치마의 역동적인 선은 분명히 후기 헬라적이지만
얼굴을 포함한 상반신은 고전적 스타일이다
말하자면 밀로의 비너스는
헬라와 고전성의 복합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얼굴에서 보이는 차거울 정도의 고전적 품위, 우아함, 단아함, 엄격함이
흘러 내리는 치마의 “관능미"와 묘한 불일치를 일으키면서
보는 사람을 혼란하게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기에
한쪽 발을 앞으로 내 딛는 접근자세로 인해
허리, 무릎에서 펼쳐지는 치마의 파도는 매우 유혹적이지만
상체는 약간 물러서며 오히려 “싸늘하게” 접근금지 싸인을 보내고 있으니
2,2 미터의 훤칠한 이 미인앞에 선 모든 남성은 혼란을 겪을수 밖에 없는것이다

비너스는 신화에 따르면
무척이나 자유분방한 사랑을 즐기는 여신인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상반신과 하반신의 스타일상의 불일치를 통해서
고전주의의 지나친 엄격함과 헬레니즘의 지나친 방종을
상호견제하고 있는것이다

이 얼마나 절묘한 조화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비너스상 즉 아프로디트의 상은
밀로가 유일한것은 아니다

팔이 온전한 비너스가 있고
옷을 멋지게 갖추어 입은 비너스가 있다

하지만
과연 팔이 있어 다른 비너스가 더 아름답고
옷을 입어 다른 비너스가 더 우아하다고 말할수 있을것인가?

천만에!

없는 팔 그대로
半裸인 그대로의 비너스가
최고의 비너스인것을…

이제 밀로의 비너스 美學의 본질은
어느정도 파악되었으니 좀더 여유를 가지고
약간은 주변적인 이야기도 다루어 보고싶다

사실 밀로의 비너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수수께끼는
매우 흥미롭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우선 팔의 문제…

도대체 잃어버린 팔은 어디에 있는것일까?
팔은 왜 떨어져 나간걸까?
팔은 원래 무슨 포즈였을까?

세심한 관람자가 되어
우선 팔 부분을 잘 살펴보면
두개의 작은 구멍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분명히 그 부분에 무엇인가 값진 팔찌가
장식되어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결국 이 장식팔찌가 화근이었던셈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셔일록 홈즈의 추리력을 빌려볼 필요가 있다
원래 비너스는 발견된곳 근처에 있던 연극장에 서 있었던것 같다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났고 이곳은 약탈되었다.
약탈자는 통채로 가져 가기에는 무겁기만 하고 의미도 없는 이 석상에서
가장 값진 장식부분이 있는 팔만을 떼어가 버린것이다.

오호 통재라..
사정이 이러하니
그 팔을 도대체 어디에서 다시 찿을수 있으랴…
머리나 목에 장식품이 없었던것만으로 천만다행 위안을 삼아야 하리라

하긴
서안의 진시황 무덤 속 병정들 손에 들렸던 진짜 창들도
항우가 모조리 수거해 실제 전투에 사용했다니
더 무엇을 말하랴..

그런데
팔은 도대체 원래 어떠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을까?
학자마다 여기에는 각각 의견이 있으니
천개의 팔을 같다 붙여도 다 나름대로 제 자리를 찿을 것이다

기둥에 팔을 대고 있었을까?
아니면 사랑하던 연인 아레(Arès)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을까 ?

손에는 무엇을 들고 있었을까 ?
활, 창, 아니면 트로이 전쟁의 영웅 파리스에게서 받은 사과.. ?
(이 부분은 그리스 신화 참조하시기 바람)

하지만
어깨의 모습으로 미루어 보건데
오른손은 치마를 잡고 있었고
다른 왼손은 하늘을 향하고 있었으리라는것이
대체적으로 일치된 견해이다

두번째,
밀로의 비너스는 대리석 한덩어리로 만들어 졌을까
아니면 둘 혹은 셋?

여기에서도 우리는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사진상으로도 확인하게된다
비너스는 돌 두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는것이다
치마가 막 시작하는 바로 아랫부분이 상하 의 분기점을 이루고 있다

세번째,
거의 아무도 모르는
그녀의 성형수술의 비밀을 털어놓아야 하겠다

사실은
그녀의 코 끝부분, 아랫입술, 오른쪽 귀두덩이는
발견이후에 붙여진것이라는것은 루브르 일급비밀에 속하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나는 억제해 왔던 질문
그러나 읽는 님들에게는 어쩔수없이 떠 올랐을수 밖에 없었을 질문을
솔직하게 그러나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싶다

밀로의 비너스는 서구미의 전형으로 칭송되고 있다.
아니, 이상적인 여성미의 모델이 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칭송에 동참하는 나 동양여인은
사이드(E. Said)가 지적하는대로 결국
오리엔탈리즘의 피해자요 세뇌된 바보일뿐일까?

대답은 “아니다” 이다
하지만 이로써 나는 동양의 미를 부인하는것이 아니다

나는 “미학적 관점”에서 밀로의 비너스의 미술사적 의미를 언급한것이지
여성미에 대한 주관적이고 민족적인 미 관념 그 자체에 관한
논의를 한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이다

바로 이점에서 관용이 허락된다면
다음에는 다른 위대한 조각가 한분을 다루어 보겠다.
거기에서는 남성미에 대한 미술사적 접근이 가능할것이다
그는 누구?

밀로의 비너스가
이름모를 한 예인의 정과 끌에서 탄생한지
약 1600년후…

인류는 비로소
또 한명의 위대한 예술가를 만나게 된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카프레세에서
아기가 태어난 날 그의 아버지 부오나로토(Buonarotto)는
일기에 이렇게 적고있다

"1475년 3월 6일 오늘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아기 이름을 지어 주었다
.....

미켈란젤로라고..”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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