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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부실했다

유앤미나 2008. 3. 21. 14:06
모든 것이 부실(不實)했다


'얼마나 아팠을까..밟혀 죽다니..'

MBC가요콘서트를 보려다
11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한 사건이 발생한
상주(尙州)는 해방 이래 가장 큰
슬픔 속에 잠겨있다.

특히 이날 참사에서는
노인과 어린이들의 피해가 커
유족들은 물론 시민들은 할말을 잃고 있다.

어떻게 이런 한심한 참사가 아직도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 일이 아니더라도
허무한 인생들에게는 이와 같은
위험한 일들이 사실 항상 노출되어 있지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첫째는 인생의 목마름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도대체 연예인이 무엇이 길래
방송에나 보았던 가수들의 노래 한 소절을
직접 들으려다가 마지막이 되었단 말인가.

청계천 복원 개통 된 주말에는
하루 평균 60만 명의 인파가 몰렸었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이름 있다는 곳에 가보면
어딜 가나 압사할 지경이다.

주 5일 근무제가 시작되었지만
다들 삶의 패턴이 비슷해서 갈 곳이 빤하다.


이 시대는 물질적으론 부요하여
온갖 과학적인 이기를 누리고 있기에
행복하게 사는 것 같으나,
실상 내적인 삶을 들여다보면
이런 것들은 참된 행복의 양식도 아니고
삶을 배부르게 하지도 못한다.

사람들의 마음은 영양실조에 걸려
그 공허함 들을 달랠 길이 없어 오락이나
연예 행사 등에서 갈증을 메우려하지만
심적인 목마름은 더해만 갈 뿐이다.


헤밍웨이는 이름만큼 인생도 화려했다.
그는 명예도 있고 돈도 있었으나
행복하지 않았기에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그의 유서는 허무와 좌절의 결산서였다.

'난 필라멘트가 끊어진 텅 빈 전구처럼 공허하다'


그(HIM)는 이러한
인생의 한계적인 상황을 아시고,
친히 십자가상에서 '내가 목마르다'고 부르짖으심은
목마른 인생을 부르시는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육체적인 존재가 아니기에
그 무엇으로도 심령의 목마름을 대신할 수 없으므로
인류 역사에 빛을 남겼던 수많은 사람들은
반드시 4M의 인생을 살았던 것이다.

4M이란 인생의 주인(Master)을 만나서,
생(生)을 쏟아 부어도
후회하지 않을 사명(Mission)을 발견하고,
훌륭한 인생의 멘토(Mento)의 도움을 받아
동역자(Mate)와 함께 죽음의 순간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다.





둘째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무사 안일(安逸)한 생각이 이런 참사를 낸 것이다.

상주참사의 전말이 속속 공개되면서
안일했던 태도에 대한 질타가
계속 쏟아지고 있다.

안전관리가 전무했던
무사안일주의가 빚어내는 사고가
고질병처럼 되풀이 되고 있다는 현실이 답답할 뿐이다.


관료화된 사회 조직에서 요령과 처세술만
터득하여 무사 안일주의로 살아가는
좀비(Zombie)족은 이제는
꼭 사라져야할 유산(遺産)에 속한다.

낡고 고루한 타성에 젖어서
무슨 일이든 미리 미리 예측하지 못하다가
일만 터지면 서로 떠넘기고 있는
무책임한 사고는 모두를 망치게 하는 지름길이다.


관계 기관의 무사 안일한 태도도 문제지만
아수라장에서 빚어진 경쟁심리는
더욱 부끄러운 일이다.

아이들과 노인이 30분 동안이나 쓰러져 있었건만
나만 구경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밟고 지나간
그들은 다름 아닌 이 백성들의 자아상이요,
변병 할 수 없는 우리 수준이다.

법은 있지만 존중되지 않고,
규율(規律)보다는 자신의 특권으로
앞서 가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힘없는 백성들이 희생된 것이다.


우리가 그리도 싫어하는 일본은
단순히 경제력만을 갖고 오늘을 이룬 것이 아니다.

뿌리 깊은 무질서(無秩序)와 오기근성으로는
일류는커녕 영원한 후진성(後進性)을
면할 수가 없는 일이다.





문화적 지연(遲延)이란 말이 있다.
물질문명은 앞서가는 데
정신문명은 거기에 따라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최단기간에
기술과 경제적인 면에서 다른 나라를
따라 잡았지만 정신문화는 아직도 유아적 단계다.

줄을 서야한다는 것은 다 아는 일이나
많은 사람이 몰려들 때의 일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은
서로 자기 이익에만 급급했지
남을 배려하는 성숙한 마음이 결핍되므로 일어난
이 사회의 정신적(精神的) 지체현상들이다.





셋째는 진보(進步)없는 세상이다.

우리교육의 문제점과 대안을 생각하여
쓴 최시한님의 '구름 그림자'가 있다.

일기형식으로 쓰여 진 그 책은
주인공의 성찰과 방황을 담으면서 이 시대의
혼란스러움을 담담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 공감이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 책을 읽으면서
그 당시의 학교와 사회의 모습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것을 느꼈다.


글 초반에 '질서를 지키자'라는 주제로
글을 써오라는 선생님의 지시에 주인공 선재는
이렇게 고뇌(苦惱)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질서(秩序)란 무엇인가.
질서를 지키자고 상(賞)까지 내걸며 억지로
글을 쓰게 한다고 질서가 잘 잡힌다고
믿는단 말인가.

직접 체험하고 쓰는 것보다는
읽고 외우는 것이 수업이라고 여기는 질서.
어떤 질문에서도 '아니요'가 아닌
'예'밖에 정답이 없는 질서.
그런 질서들의 질서.





몸은 21C에 와 있건만
정신 상태는 15C에 있는 국민들이다.

문화는 물질이 아니라 질서에 있다.
역사는 과정이 아니라 성숙에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와 지금을 비교해 볼 때
외형적인 모습은 많이 변화되었지만
정신적인 성숙도에서는 오히려
퇴보되었을지 모른다.

그 때나 지금이나
획일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기에
천재도 문제아가 되고
영웅도 바보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무슨 일이 터질 때마다
긍정적인 해결 구도가 아니라
더 추한 내면만 드러나고 있기에
젊은이들 말대로 개념이 없는 세대가 되었다.


이렇게 사고가 멈춰버린 세상 속에서
'왜'라고 질문을 던지지만
그 의문을 풀어줄 사람이 없기에
사람들은 고민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고뇌하고 방황하는 일들이
지금은 구름그림자가 되고 있지만
그것이 밑거름되어 비도 내리고 태양도 비추어
성숙한 내일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주여,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채워지지 않았던
그녀처럼

개인의 목마름과
사회의 정신적 지체현상
그리고 진보 없는 이 시대 속에서도
대안(代案)을 발견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젠 날마다
인생의 주인을 만나서
사명을 알고
당신의 도움으로
당신과 동역(同役)하게 하소서.


2005년 10월 9일 한글날에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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