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는 없다
"차베스가 베네수엘라에 남긴 것은
파괴뿐이었다."
베네수엘라대학
에르난데스 정치학 교수는
자국 경제 몰락을 차베스에게 돌렸다.
베네수엘라는
인플레이션율이 170만%,
해외 난민이 340만 명에 이를 정도로
5년 째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차베스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여
사회주의 경제를 내용으로 한 볼리바르
혁명을 추진했다.
빈민에겐 집을
농민들에겐 땅을 나눠주었고,
저소득층에게
특별 보조금까지 주면서
무상교육, 무상의료까지 시행하니
누가 그를 싫어하겠는가.
당연히 정권 초기에는
49% 빈곤율이 25%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그런 식의 호경기는
오래갈 수 없다.
역시 세상엔 공짜가 없음을 증명해 주었다.
그가 주도한
경제 혁명 20년 만에
민간 기업 67%가 줄도산하면서
빈곤율은 90%를 넘어섰다.
석유는 분명
자원의 축복이었건만
그들에겐 저주가 되었던 것은
벌어들인 돈들이
모두 포퓰리즘 정책과 부패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석유 뿐 아니라
전기, 은행, 철강까지 국유화가 되면서
임원자리는 무능력한
낙하선 인물로 채워지면서
그들의 경영실패와 생산성 하락들은
불 보듯 다음 수순이
되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근본적 문제 해결보다는
주민 통제를 위해 무상복지에 더 많이
쏟아 부었다.
잦은 봉급 인상, 임시 지폐,
‘조국카드’ 등은 친정부 행사에 동참
할 수밖에 없었기에
90% 국민들이 현 정권을 규탄하면서도
대규모 대중 봉기가
아직까지 없었던 이유가 되고 있다.
지금 베네수엘라는
정부지지층 아니면 빈민층이라는
두 계층밖에 없다.
그럼에도
마두로 대통령은 물러나지 않고
사태를 장기화하려는
조짐밖에 없다.
차베스는 평소
자신의 정치, 사회적 운동은
자본주의나
공산주의와는 다른
‘제3의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과격한 반미와 국유화 등
포퓰리즘적 사회주의 정책만을 밀어붙여
온 것이 화근이 되었다.
아르헨티나는
1차 대전 이전에는 세계 5대 부국 중에
하나였을 땐
남미의 파리였고 남미의 뉴욕이었다.
하지만 후안 페론이 집권하면서
변곡점을 맞았다.
그는 유권자 표를 의식하여
수많은 퍼 주기식의
근시안적 정책들은 과도한 재정 지출로
이어져 부채를 이기지 못해
21C 들어서 첫 번째
외환위기를 맞는 나라가 되었다.
1980년대 이후 그리스 정부는
포퓰리즘 정책으로
국민 불만 달래기에 치중했다.
성장률 추락과 높은 실업난을
기형적 해법으로
불필요한 공공부문 인력만 늘렸다.
그들이 기득권이 되면서
자신들을 위한
포퓰리즘 정책은 계속 악순환 되었다.
오로지
기득권층을 위한 연금확대 등
누적된 모순은
2009년 재정위기 때 폭발하고 말았다.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그리스
세 나라가 망한 원인은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답이 나온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퍼주기 포퓰리즘 정책을
난발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는 이러한 정책에
제동을 걸만한 장치가 무력화되어갈 때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마약 중독자들이
이전에 각성했던 느낌을 잊지 못하듯
포퓰리즘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중독성은
아직도 남미 뿐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무상 정책’이라는
엔돌핀 도파민 주사가 통하는지
유사한 정권들이
계속 되살아나고 있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는 말처럼
공짜에 맛 들인 사람들은
파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남이 만들어 놓은 파이를
나눠 갖는 일에만 정신 팔리는 사이에
인생에서
이것과 비할 수 없는
더 본질적인 요소를 놓치고 살아간다.
어느 왕이
백성들에게 지혜를 주고 싶어
신하와 학자들에게
세상의 모든 지혜를 모으라고 했다.
왕은 여러 해 동안
세상 지혜를 모아온 자료들을 오직
한 문장으로 줄이라고 하자,
신하들은 주저 없이
‘세상엔 공짜가 없다.’를 내놓았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놓여 있다.’는
격언처럼 인생에서
공짜는 한 순간도 없었다.
10억 이상 OO당첨자들을
조사해보니 90%가
이전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한 순간의 불로소득 때문에
인생에서 그러한 돈과 비할 수 없는
일상, 성실 그리고
성취감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인생을 파멸시키는 것은
사기꾼이 아니라
‘공짜’에 있었다는 것은
마치 내 인생을
남에게 맡기는 것처럼
졸지에 의존적인 삶이 그러한 불행을
키워왔던 것이다.
‘마귀는 주는
쾌락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처럼
심지어 마귀가 주는
즐거움이나 기쁨을 누리려고 해도
먼저 정신과 영혼은
근저당 잡혀야만 가능하다.
세상에 공짜가 없기에
마귀에게
대가없는 거래란 있을 수 없다.
한 호리라도 다 갚지 못하면
어둠의 포로에서 풀려날 길이 없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자연의
기본적 원리대로
진정한 자유와 참된 평화를 누리려면
양심에 부끄럽지 않는
‘뿌림’이 먼저 있어야만 한다.
어찌 경제를
공짜로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더욱이 어찌 자유를
공짜로 얻을 수 있단 말인가.
허무는 비록 많아도
공짜는 결코 있을 수 없다.
두레공동체 김진홍목사가
청계천에서 남양주로 옮길 때 비화다.
‘공동체에서 돈 빌려간 사람은 대부분
야반도주했지만,
어려워도 끝까지 버틴 사람은
자활하더라...'
내가 이 말을
27살 때 직접 들었을 때,
‘나는 평생 OO을 의지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누구라도 일을 안 하고
3개월만 지나면
뇌에서는 일 하겠다는 의욕 자체가
사라지면서,
몸도 사용하지 않기에 서서히
굳어지면서
정신적인 노숙자를 만들어 버린다.
‘도움’도 마찬가지다.
당시에는 분명 힘이 되지만
스스로 생각한 시한을 넘어가면
독약이 되고 마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무엇이든 내가 하겠다는 생의
기본적 자세가
노숙자처럼 사라지면서
자립심도 없고
의존감만 증감되면서
어느 덧 삶의 겨울을 만나게 된다.
‘도움’만 바라보니
땅강아지처럼 땅만 쳐다보며
하늘을 놓치고
인생의 하늘도 사라진다.
그러니
언제 남을 돕고
언제 인생의
사명을 생각해 보겠는가.
록펠러는 최대 부자가 되었음에도
행복하지 않았을 때
시한부 인생으로 선고 받았다.
그는 어느 날 병원 로비에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라는
글을 읽으며 반전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남을 돕지 않았던
그가 같은 병원에 어려운 환자를
은밀히 도왔는데
기적같이 회복되자 놀랍게도
록펠러도 거짓말같이
시한부 생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일 후에 그는
수많은 선한 일을 하다가 웃으며
눈을 감았다.
인생 100세 시대다.
50년은 사람답게 사는
웰빙(Well-being)적 삶이었다면
남은 50년은
웰에이징(Well-aging) 곧
사람답게 늙어가는 것이 요구되어진다.
웰에이징(Well-aging)이란
이웃이 있는 삶이다.
이웃이란
내가 아무리 가난해도
설령 도움을 받고 살아도 내가 연약한
약자를 돕는 사람이 있어야
그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볼 수 있고
남을 판단하지 않고 더 겸손하게
웰다잉(Well-dying)을 바라볼 수 있다.
2019년 7월 30일 강릉에서 피러한(한억만) 올립니다.
사진허락작가:하누리님, 이요셉님^경포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