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스크랩] 요하네스 베르메르,[화가의 작업실]The Artist`s Studio

유앤미나 2016. 2. 10. 15:06


The Art of Painting(The Artist's Studio)
1665-67
Oil on canvas, 120 x 100 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화가의 스튜디오] 또는 [회화예술(繪畵藝術)의 우의(寓意)]는 1665년경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으로, 화실의 한 장면을 그린 아틀리에화의 한 종류로 보이지만 화가의 사명과 역할에 대하여 그 뜻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그림 역시 이치에 맞지 않는 점이 많다.

이 그림에서 누가 주인공인가?
제일 크게 그려졌지만 커튼이 주인공일리는 없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가 주인공이라면, 왜 주인공의 얼굴이 안 보이고 뒷모습만 그려 놓았을까?
얼굴이 보이는 사람 모델이 주인공이라면 왜 주인공을 저쪽 뒤편에 놓아 조그맣게 그렸을까?
또, 머리에는 웬 풀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으며, 왜 헐렁한 옷에 두꺼운 책과 긴 나팔을 들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어색하다.


이렇게 세밀하고 치밀하게 그릴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집중력과 인내심이 대단한 사람이다. 집중력과 인내심은 머리 좋은 사람, 유능한 사람이 가진 특징이다. 머리 좋은 사람이 왜 이렇게 이치에 맞지 않게 그림을 그려 놓았을까? 보고 있을수록 의구심 이 모락모락 일어난다. 이 그림에 주인공이 있다면 화가이겠지만, 얼굴이 보이지 않는 뒷모습으로 그린 것은 생각이 있어서이다. 얼굴이 보이면 구체적으로 누구를 나타내는 것이 되므로, 단지 '화가'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일부러 얼굴을 그리지 않아야 되었던 것이다. 흑인 얼굴이면 '흑인 화가'로 해석될 테고, 본인의 얼굴을 그려 넣으면 '화가 베르메르'로 해석될 테니, 아예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그린 것이다. 보는 이의 해석에 혼란이 일지 않도록, 의상도 당시의 옷이 아닌 100년전의 옷을 그려서 현실성을 줄였다.


 


그림 속의 화가는 월계관을 그리고 있다. 월계관은 모델이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이다. 월계관이 이정도 완성이 되어 있으면, 몸도 어는 정도는 그려져 있어야 이치에 맞는다. 특히, 건조 시간이 더딘 유화인 경우, 화가들은 화면 전체를 같은 정도의 완성도로 그려 간다. 이 그림에서 몸 부분은 노랑 선으로 겨우 형태만 나타날 정도로 그려져 있다.

월계관은 '영예'를 뜻한다. 화가는 영예를 그리고 있다. 이 말은 '화가는 영예를 표현하는 자' 라는 말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다. 모델인 여인은 실은 '역사'의 의인상이다. 이 여인이 들고 있는 나팔은 '명성'을 뜻하며, 두꺼운 책은 역사책이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책은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역사책에는 인류사에 명성과 영예를 날린 자들만 기록된다. 어떤 책에는 이 여인이 나팔을 들고 있으므로 음악의 신인 '뮤즈'라고도 말하나 뮤즈는 보통 책을 들고 있지 않다. 나팔은 승리자에 대한 환영 연주의 나팔, 팡파르이니까 명성이다.


책상 위에는 석고상이 놓여 있다. 화실에 흔히 있는 정물화용 모델 같지만 실은 '모방'을 의미한다. 석고상은 그 당시 고고학적 발굴의 성과로 드러난 예술품의 모조품으로서,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생각을 나타내는 것이다. 사람은 생물이기 때문에 갖는 기본적인 충동이 있는데, 이 충동이 소리를 지르는 놀이, 소리 지르며 돌아다니는 행동, 뭔가 직직 긋기와 같은 무작위적 놀이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원초적 충동이 자연의 소리를 모방하면 음악이 되고 동작이 자연물의 동작을 모방하면 무용이 되며, 긋기가 자연물의 형상을 모방하면 그림이 된다. 최초의 그림도 자연물의 형상을 닮게 나타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림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말도 이처럼 뿌리 깊은 관념이다.

사람은 대개, 대상을 닮게 그리고 싶어하고, 닮게 그린 것을 좋게 보고, 닮게 그리기를 잘하는 사람을 소질이 있다고 말한다. 모방이 예술의 기본적인 충동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반적 속성 때문에 '석고상'도 모방을 뜻한다. '석고상을 들고 있는 여인'이 자연의 모방을 뜻하는 것도 같은 이치이다. 그러나 남자가 석고상을 들고 있으면 이는 수집가의 초상이다.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또 한 가지 구도상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정면의 벽 위에 걸어 놓은 커다란 지도이다. 지도를 정히 그려 넣으려면 4분의 1 정도로 좀 작게 그려 넣거나, 아예 빼고 창문을 뚫어, 뭉게구름이 인 하늘을 그려 넣었더라면 시원하고 보기도 좋았을 것을, 화면 가득히 그려서 아주 갑갑하게 만들고 말았다.
여기서 지도를 크게 그린 것은 '세상'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이 지도는 당시 네덜란드를 나타낸 지도이다.

커튼은 감추머 가린 것을 열어 보여 준다는 뜻이다. 당시에는 그림에도 커튼을 씌워 놓고, 볼 때만 열었었다.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네덜란드인들의 생각으로는, 그림을 보지도 않으면서 열어 놓는 일은 적절하지 못하며. 평소에는 가려서 보호하다가 볼 매만 열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 읽든「플랜더스의 개」에서도, 화가 지망생인 주인공 네로가 죽어 가면서 성당에 걸려있는 루벤스의 성화를 보는 장면에서 드려져 있던 커튼이 열리면서 그림이 드러났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이 그림에 나온 명사(名詞)들은 화가, 모방, 역사, 명성, 영예, 그림. 세상, 드러냄이 된다. 여기에 살을 붙여 문장으로 연결해 보자.

"화가는 영예를 표현하는 자이다. 단지 자연의 모방, 즉 꽃을 아름답게, 나체를 아름답게 그려서 권력자나 부자에게 아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넘어서 역사관을 가지고, 역사에 드러난 위대한 인간들의 명성과 영예를 그림으로 그려서 세상에 드러내어 보여 주는 것이 화가이다. "

제목 그대로 '회화예술의 우의'이다. 예술에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회화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화가 자신에 대한 물음과 함께 자신의 견해를그림으로 그려 놓고 있다.


네덜란드는 특히 이런 그림의 전통이 깊은 곳이며, 서양화 캔버스의 크기를 인물형, 풍경형, 海景形으로 나누고, 각각의 형에 적용되는 호수(號數)로 나타내기 시작한 곳도 여기였다. 그들의 합리적인 생각으로는, 그리기 어려운 사람의 얼굴과 웬만큼 잘 그리지 못해도 표가 나지 않는 벽면을 같은 값으로 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었으므로, 같은 인물화라고 해도 인물이 차지하는 면적과 배경이 차지하는 면적을 다른 값으로 계산하여 그림 가격을 매겼었다. 이렇게 번번이 그림마다 면적을 계산하는 일이 번거로웠으므로, 나중에는 화면을 세 가지 형태로 나누고 여기에 각각 적용되는 호수를 정하여 거래에 편리를 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화가가 가지고 있는 끝이 등근 막대기는 몰스틱(mahlstick)이라고 부르는 화구의 한 가지이다. 아직 마르기 전의 화면은 끈적거려 물감이 묻어 나므로. 섬세한 그림을 그릴 때는 이렇게 막대기를 한 손에 잡고 높이를 조절하면서 그려 갔던 것이다. "엣다. 모르겠다. 시원하게 그리자1" 하는 태도로 제작에 임했던 것이 아니다. 그 당시에 이런 기구까지 기성품으로 개발하여 사용한 그들의 섬세하고 과학적인 태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그림은 다른 그림과는 달리, 아름다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그려져 있지 않다. 아름답게 이상화한 것도 없다. 모델도 결코 미인이라고 볼 수 없고, 그렇다고 옷이 예쁘지도 않다. 그런가 하면 실내장식이 화려하지도 않은 그림이다. 그렇지만 화가의 그림에 대한 순수한 성찰의 태도가 잘 나타나 있고, 진지하게 추구하여 완성해 나간 그 태도가 실로 아름답다. 저자도 이 뜻을 살려서 "한국에 있어 화가는 전통적 미술 양식의 올바른 토대위에 새로운 민족문화를 창달할 책임이 있다. "는 뜻으로, '새로운 회화예술의 우의'를 그려보고 싶다.

이렇게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수백 년 전이라는 시간과 지구 반대편이라는 거리에도 불구하고 대화가 되는 것 같아, 즐겁기 그지없다. 그림감상을 통해 천재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은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이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국내의 유명 화집을 보면, 유감스럽게도 이런 얘기는 전혀 소개되어 있지 않다. 제목부터가 [화가의 아틀리에]로 되어 있다. 제목을 이렇게 붙여 놓으면, 그림을 과학적으로 보는 눈을 가로막게 된다. 차라리 감상문을 적는 공란을 남겨 놓는 편이, 각자 생각할 기회라도 주기 때문에 더 나을 것이다. 섣불리 설명하여 감상자의 생각할 기회마저 빼앗는 꼴이다.

그러나 이 그림의 원리를 아는 사람이 이런 전통적 독화법을 무시하고 그렸다면. 이는 창의적이고 훌륭한 일이다. 같은 행동이라도 알고 한 일과 모르고 한일은, 그 평가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

문화란 창조, 전달, 수용의 전과정을 균형적으로 겪어야만 비로소 문화로서 가치를 갖게 된다. 아무리 가치 있는 창의라 할지라도, 그것이 구현되어 창조가 되고 또 효과적으로 전달되어 수용층인 대중의 가슴에 살아 남아야만 비로소문화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이 창조한 것이, 한국인에 의하여 전달되고. 이것이 한국인에게 수용된다면 바람직한 문화 전달 경로를 밟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고대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것을 일본으로부터 전달받아 단지 수용만 하고 있다면 이건 분명히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문화의 줄기를 바로잡아 구부러진 곳은 펴고 누운 것은 바로 세우는 일만이, 박두하는 새로운 민족주의와 문화 경쟁 시대에 당면하여 다시는 부끄러운 민족사의 전철을 밟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북구의 화가들에게서 이런 그림이 특히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좌뇌가 우세했기 때문이다. 자원이 적고 기후도 좋지 않아 교역에 의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자연히 계산적, 타산적 성격이 길러지게 된 결과 좌뇌가 우세하게 되어 사고하는 그림, 사고를 요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던 것이다.

단, 이들의 그림이 의미는 풍부하나 한국인의 감각으로 볼 때는 딱딱한 것이 흠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보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의 감각에 맞지 않더라도 우리의 정신을 살찌우는 일이라면 차근차근 그림을 읽어 나가는 것이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이런 독화법에 대하여 우리는 이제 공부하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이미 1400년대에 리파의 「이코놀로기아」가 출판되어 있었고, 도상학자들의 출현이 잇따랐다. 새로운 사조를 화가들이 주도했고, 화가에 의하여 대중에게도 생각하는 습관이 길러졌다. 화가에 의하여 머리가 좋아진 것이다. 「이코놀로기아」가 당시에 30여년 동안 8판이나 인쇄되었는데, 그 때 큰 도시의 인구가 10만을 넘지 못했었다는점을 감안하면, 그런 지식이 유럽 지식인들에게 보편적인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있다.

출처 : 대영사 조각과 사진展
글쓴이 : 대영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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