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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서재'(書齋)와 정조의 홍재(弘齋)

유앤미나 2013. 5. 2. 21:07

이 시대의 '서재'(書齋)와 정조의 홍재(弘齋)  
예병일 이 노트지기의 다른 글 보기 2013년 4월 29일 월요일
일반적으로 '서재'(書齋)란 '책을 갖추어 놓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곳'을 뜻하며 글방 혹은 서당을 지칭하였다. 특히 조선 시대에 '서재'는 성균관 혹은 유생 집단을 가리키는 통칭이나 선비들이 후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만든 서당이나 학당을 가리켰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서재'라는 용어가 몇 군데에서 보이고 있다. '효종실록'을 보면 효종 10년 3월에 "세자가 글 읽을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두서너 칸 자그마한 서재를 짓고 있으니"라는 대목이 나온다. 또 '영조실록'에도 영조 1년 3월에 "전교하기를, '창경궁 동쪽에 하나의 조그마한 서재가 있는데 바로 효종 때 주연을 열었던 곳으로서, 지금 춘궁이 개강하는 곳으로 삼아 그 서재 이름을 새기기를 장경이라고 하였는데..."라는 기록이 보인다.(295p)
 
소준섭 지음 '왕의 서재' 중에서 (어젠다)
스마트 시대에도 '서재'는 필요합니다. '왕의 서재'라는 책을 보니 서재를 '책을 갖추어 놓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곳'이라고 정의했더군요.
 
학자 정치가였던 정조. 그는 왕세손이었을 때 자신이 공부하고 휴식을 취하던 서재에 주합루(宙合樓)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리고 '뜻을 크게 하라'는 증자의 말씀을 새기기 위해 서재에 '홍'(弘)을 편액으로 걸었다고 합니다. 그 공간이 184권 100책이나 되는 그의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가 나온 '큰 서재'였던 셈입니다.
 
이 시대에 서재는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정리하는 나만의 공간'이 아닐까 합니다. 정보가 넘쳐 흐르는 세상에 더욱 필요한 그런 공간입니다. 조선시대 세자도 두서너 칸의 자그마한 서재를 지었다 했으니 공간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겠습니다. 책상 하나 들어가는 골방도 좋고,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기 어렵다면 작은 책상과 책꽂이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그런 공간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머무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