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스크랩] 미국의 국민화가 (그랜드마 모지스)

유앤미나 2013. 1. 22. 13:27

그랜드마 모지스(grandma moses)


=== 그랜드마 모지스 =====================================
애너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Anna Mary Robertson Moses,1860-1961)는
76세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101세 되던 해 세상과 이별하기 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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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골 농부의 아내로 자식을 10명 낳았지만 5명은 아주 어려서 죽었다. 62세 때 남편을
잃고, 농촌을 떠나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다. 1936년에야 농사일을 그만두고 딸의 집으로 갔다.

어린시절부터 그림을 그리고 딸기즙이나 포도즙으로 색깔을 칠하곤 했던 모제스는 남편이
죽은 뒤 소모사로 수를 놓은 그림을 창조했다.
수예를 하다 관절염으로 그만두고 대신 그림을
그린다. 그때 그는 76세 였다. 미술 대학을 나온 것도, 그림을 배운 적도 없었다. 시골 풍경을
그렸으며 작은 그림은 2불, 좀 큰 것은 3불에 팔렸다.




1938년경 제작된 그랜드마 모제스의 첫 작품은,커리어아이브스 그림엽서회사에서 인쇄한 그림
엽서를 베낀 것이었다. 그랜드마 모제스는 곧 뉴욕 주와 버지니아 주에서 겪은 농장생활, 그녀
의 표현을 빌리면 '그리운 옛날'의 추억을 그리는 일에 몰두하여
〈추수감사절용 칠면조 잡기 Catching the Thanksgiving Turkey>〈크리스마스 트리에 쓸 나무를
구하러 Out for the Christmas Trees〉〈강 건너 할머니 댁으로 Over the River to Grandma's
House〉·〈단풍나무 농장에서 설탕 만들기 Sugaring-Off in the Maple Orchard〉
등 미국의 지나간 생활을 그리워하는 회고적인 그림들을 그렸다.
그녀가 처음에 그린 그림들은
후식폴스의 잡화점에서 팔렸다.




그러던
어느 날 후식폴스 윈도우에 걸린 그녀의 그림이 지나가던한 수집가의 눈에 띄었다.
루이스 칼더가 시골 구멍가게 윈도에 있는 그의 그림을 사 갔고,그것이 개인전을 여는 계기
(契機)가 되었고이듬해 미술 기획가 오토 칼리어가 그의 그림을 뉴욕의 전시관에 내놓으면서
마침내 유럽과 일본에서도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열렸다.할머니는 일약 스타가 됩니다.

1939년에 이르자 미국과 유럽(그랜드마 모제스는 유럽에서 15차례의 개인전을 가졌음) 전역
에서 그녀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1952년에 그랜드마 모제스는 그녀의 그림처럼 활기찬 문체
로〈내 삶의 역사 My Life's History〉라는 자서전을 썼다.


1949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그녀에게 '여성 프레스클럽 상'을 선사했고,
1960년 넬슨 록펠러 뉴욕주지사는 그녀의 100번째 생일을
'모지스 할머니의 날'로 선포했습니다.




76세에서 101세 까지 1600 점을 그렸는데 100세 이후에 그린 것이 무려 250 점이나 된다.
그 중에는 1백만 달러가 넘는 그림도 있다.
그녀의 그림 어디에도 불행, 세월, 절망을 슬퍼하는
애탄의 색조(色調)는 없다.

그저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그림을 그린 것이 큰 발전의 계기(契機)가 되었다. 모지스는 시골의 풍경을 그렸으며 그의 화풍은 단순하면서도 밝습니다. 모지스의 밝은 심성이 그러한 계기를 가져오게 된것이라 생각됩니다.


출처 : 예스모임
글쓴이 : 반짝반짝눈부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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