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채근담

전집 225 와 후집 134

유앤미나 2012. 10. 1. 22:41

채근담 전집(前集)

 

1

도덕을 지키고 사는 사람은 한때 적막하지만, 권세에 아부하며 사는 사람은 언제나 처량하다.  이치를 완전히 깨친 사람은 사물 밖의 사물, 즉 재물이나 지위 이외의 진리를 보고, 육체 뒤의 몸, 즉 죽은 뒤의 명예를 생각한다.  차라리 한때 적막할지언정 만고의 처량함은 취하지 말라.

 

2

세상을 건너가는데 물결이 얕으면 그만큼 때묻는 것도 얕고, 일에 경험이 깊으면 그 수단도 깊다.  그러므로 군자는 능숙하기보다는 차라리 순박한 편이 낫고, 치밀하기 보다는 차라리 소탈한 편이 낫다.

 

3

군자의 마음은 하늘이 푸르고 태양이 빛나는 것처럼 남들이 모르게 하지 말아야 하고, 군자의 재주는 구슬이 바위 속에 숨겨진 것같이 남들이 쉽사리 알게 하지 말아야 한다.

 

4

권세와 명리(名利), 사치와 부귀를 가까이 하지 않는 사람을 결백하다 말하지만 가까이하고서도 이에 물들지 않는 사람이 더욱 결백하며, 권모와 술수를 모르는 사람을 고상하다 말하지만 이를 알면서도 쓰지 않는 사람이 더욱 고상하다.

 

5

귀에는 항상 거슬리는 말만 들리고 마음속에서 항상 어긋나는 일만 일어나면, 이야말로 덕과 행실을 갈고 닦는 숫돌이 될 것이다.  만일 들리는 말마다 귀를 즐겁게 해주고 하는 일마다 마음을 흡족하게 해준다면, 이야말로 자기 몸을 매어 짐새(鳥)의 독(毒) 속에 파묻는 일이 될 것이다.

 

6

거센 바람과 성난 비에는 새들도 조심하고, 갠 날씨와 따뜻한 바람에는 초목도 기뻐한다.  천지에는 온화한 기운이 없어서는 안 되고, 사람의 마음에는 하루도 기쁨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7

진한 술, 기름진 고기와 맵고 단 것이 참 맛이 아니다.  참 맛은 오직 담담할 뿐이다.  신기한 재주와 뛰어난 행실이 따라야 인격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인격자는 오직 평범할 따름이다.

 

8

하늘과 땅은 고요하여 움직이지 않건만 그 활동은 잠시도 쉬지 않으며, 해와 달은 밤낮으로 달리고 있지만 그 광명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한가한 때에도 다급한 일에 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바쁜 처지에서도 한가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9

밤이 깊어 사람들이 잠들어 조용할 때 홀로 앉아 자기 마음을 들여다 보면, 비로소 허망한 생각이 흩어지고 참된 마음이 나타나는 것을 깨닫게 되며, 언제나 이런 가운데서 큰 진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참된 마음이 나타났는데도 허망한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깨닫게 된다면, 또한 이 가운데서 참된 부끄러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10

은혜 속에서 본래 재앙이 싹트는 법이다.  그러므로 만족스러운 때에 주위를 빨리 둘러보라.  실패한 후에 오히려 성공이 따른다.  그러므로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손을 떼지 말라.

 

11

명아주 국으로 입을 달래고 비름 나물로 창자를 채우는 사람은 얼음처럼 맑고 구슬처럼 결백함이 많지만, 비단옷을 입고 기름진 고기를 먹는 사람은 남에게 굽실거리는 종 노릇도 기꺼이 한다.  지조는 청렴결백하면  뚜렷해지고 절개는 부귀를 탐내면 잃게 된다.

 

12

살아있을 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너그러워야 할지니, 사람들로 하여금 불평의 탄식이 없게 하리라.  죽은 후의 혜택은 길이 흘러 오래 마르지 말아야 할지니, 후세의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리라.

 

13

작은 길, 좁은 곳에서는 한 걸음 물러서서 남이 먼저 지나가게 하고, 맛있는 음식은 10분의 3만 덜어 남에게 나눠 주어라.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안락한 방법 중 하나이다.

 

14

사람이 설사 뛰어나게 위대한 일을 한 것은 없을지라도 속된 욕정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그것으로 능히 명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은 공부는 하지 못해도 물욕을 마음 속에서 물리치기만 하면, 그것으로 능히 성인의 경지에 이를 것이다.

 

15

친구를 사귀려면 반드시 10분의 3의 희생심이 있어야 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순결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16

혜택과 이익에서는 남을 앞지르지 말고, 덕행과 일에서는 남에게 처지지 말라.  남에게서 받는 보수는 분수를 넘지 않도록 하고, 몸을 닦는 일에서는 분수 안으로 줄어들지 말라.

 

17

세상살이에서 남에게 한 걸음 양보할 줄 아는 것을 고귀하게 여기나니,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은 곧 스스로 한 발짝 앞으로 나가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너그럽게 대해야 복이 되나니,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은 실로 자기를 이롭게 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18

세상을 뒤덮는 큰 공적도 자랑 긍(矜)자를 당해 내지 못하고, 하늘에 가득 찬 큰 죄도 위우칠 회(懺)자 한 자를 당해 내지 못하느니라.

 

19

좋은 이름과 아름다운 절개는 혼자서 차지하지 말라.  조금은 남에게도 나눠 줘야 해를 멀리 하여 몸을 보전할 수 있다.  욕된 행실과 더러운 이름을 남에게만 돌리지 말라.  조금은 끌어다 자기에게로 돌려야 빛을 덮고 덕을 기를 수 있다.

 

20

모든 일에 어느 정도의 여유를 갖고 여지를 남기면 조물주도 나를 꺼리지 않고 귀신도 나를 해치지 못한다.  그러나 만일 일이 반드시 다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공이 반드시 다 차기를 원하면 안에서 변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밖에서 우환이 닥치게 된다.

 

21

가정 안에 하나의 참된 부처가 있고, 일상 생활 속에 한 가지 참된 도가 있다.  사람이 성실한 마음을 갖고 화친을 도모하며 즐거운 안색을 하고 부드러운 말씨로 부모와 형제를 한 몸이 되게 하고 뜻이 맞게 하면, 부처 앞에 앉아 숨을 고르게 쉬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보다 만 배나 더 나을 것이다.

 

22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구름 속의 번개 같고 바람 앞의 등불 같으며, 조용한 것을 즐기는 사람은 불꺼진 재와 같고 마른 나무와 같다.  멈춘 구름과 잔잔한 물결 중에 솔개가 날아가고 물고기가 뛰노는 기상이 있어야 하나니, 이것이 바로 도를 깨친 사람의 마음이다.

 

23

남의 잘못을 너무 엄하게 공격하지 말라.  그가 그 공격을 받아 견딜 만한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람을 선으로 가르치되 너무 높은 것으로써 하지 말라.  그가 능히 따를 수 있게 해야 한다.

 

24

굼벵이는 더럽기 짝이 없지만 변하여 매미가 되어 가을 바람에 맑은 이슬을 마시고, 썩은 풀은 빛이 없지만 변하여 반딧불이 되어 여름 달밤에 광채를 낸다.  그러니 깨끗함은 언제나 더러움에서 비롯되고, 밝음은 항상 어둠으로부터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5

뽐내고 교만한 마음은 모두 객쩍은 기운이 아닐 수 없다.  이 객쩍은 기운을 항복받아 물리치고 나야 참된 기운이 자랄 수 있다.  정욕은 모두 망령된 마음이다.  이 망령된 마음을 소멸한 후에야 참된 마음이 나타나는 것이다.

 

26

배부른 뒤에 음식 맛을 생각하면 맛이 있고 없는 구별이 모두 사라지고, 관계한 뒤에 욕정을 생각하면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어진다.  그러므로 사람이 언제나 일이 끝난 뒤의 후회로써 일을 시작할 때의 어리석음을 깨뜨린다면, 본성이 자리잡혀 행동을 그르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27

고관의 자리에 올라 있을지라도 자연에 묻혀 사는 취미가 있어야 하며, 자연에 묻혀 살아갈지라도 반드시 조정의 경륜을 품어야 한다.

 

28

세상을 살아 가는 동안에 언제나 성공만 따르기를 바라지 말라.  일을 그르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성공인 것이다.  남에게 줄 때 상대방이 그 은덕에 감동하기를 바라지 말라.  상대방이 원망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은덕인 것이다.

 

29

걱정이 되어 부지런히 일하는 것이 미덕이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수고하면 본성에 따르거나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없다.  청렴하고 결백한 것은 높은 기개이지만, 지나치게 깨끗하면 사람을 돕거나 일을 이롭게 할 수 없다.

 

30

일이 막혀 궁지에 빠진 사람은 마땅히 그 처음의 심정으로 되돌아가 생각해야 하고, 공을 쌓아 만족스러운 사람은 그 말로를 내다보아야 한다.

 

31

부귀를 누리고 있는 집안은 마땅히 너그럽고 후해야 하는데 도리어 남에게 각박하게 군다면 이것은 곧 부귀를 누리면서도 그 행실은 가난하고 천한 것이니, 어찌 그 부귀를 능히 간직할 수 있겠는가!  총명한 사람은 마땅히 그 재주를 감춰야 하는데 도리어 드러내어 자랑한다면 이것을 곧 총명하면서도 어리석고 어둠에 병들어 있는 것이니, 어찌 실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32

낮은 데 살아본 후에야 높은 데 올라가는 것이 위태로운 줄 알게 되고, 어두운 데 있어본 후에야 밝은 빛이 눈부신 줄 알게 된다.  안정을 지켜본 후에야 활동을 좋아하는 것이 수고롭기만 함을 알게 되고, 침묵의 수양을 해본 후에야 말많은 것이 시끄러운 줄 알게 된다.

 

33

부귀와 공명에 얽매인 마음을 다 털어 버려야 비로소 범속에서 벗어날 수 있고, 도덕과 인의에 얽매인 마음을 다 벗어 버려야 비로소 성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다.

 

34

이욕(利欲)이 다 마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독단적인 생각이 바로 마음을 해치는 해충이다.  애욕이 반드시 도를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총명하다고 보는 생각이 바로 도를 가로막는 것이다.

 

35

사람의 마음은 변하기 쉽고, 세상을 살아가는 길은 험난하다.  가기 어려운 곳에서는 한 걸음 물러설 줄 알아야 하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에서는 3분(三分)의 공을 사양하여 남에게 나눠 주어야 한다.

 

36

소인을 대할 때엔 엄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미워하지 않기가 어렵고, 군자를 대할 때엔 공손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예절을 잃지 않기가 어렵다.

 

37

차라리 순박함을 지키고 총명함을 물리쳐 공명정대한 기운을 지녀 천지로 돌리라.  차라리 화려함을 사양하고 청렴결백함을 달게 여겨 깨끗한 이름을 세상에 남기라.

 

38

악마를 항복시키려거든 먼저 자기 마음을 다스리라.  마음이 잘 다스려지면 모든 악마들은 스스로 물러갈 것이다.  남의 횡포를 누르려거든 먼저 자기의 혈기를 누르라.  혈기가 가라앉으면 외부의 횡포는 침입하지 못할 것이다.

 

39

자녀를 가르치는 것은 마치 규중의 처녀를 가르치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출입을 엄하게 하고 친구를 조심해서 사귀게 해야 한다.  만일 한번 악한 사람과 접근하게 되면 마치 깨끗한 논밭에 잡초의 씨앗을 뿌리는것과 같으니, 한평생 좋은 곡식을 심기가 어려울 것이다.

 

40

정욕에 관한 일은 쉽게 즐길 수 있을지라도 결코 손끝에 물들이지 말라.  한번 손끝에 물들면 만 길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이다. 

바른 길에 관한 일은 어렵더라도 결코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  한 걸음 물러서면 일천 산을 사이에 둔 거리만큼 멀리 떨어질 것이다.

 

41

마음이 후덕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후하고 남에게도 후하여 이르는 곳마다 두텁다.  마음이 말쑥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도 박하고 남에게도 박하여 하는 일마다 말쑥하다.  그러므로 군자는 평상시에 즐기고 좋아하기를 지나치고 두텁고 후하게 하지 말아야 하고,  또 지나치게 말쑥하고 박하게 하지도 말아야 한다.

 

42

그가 부를 내세울 때 나에게는 인(仁)이 있고, 그가 지위를 내세울 때 나에게는 의가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임금이나 대신에게 농락되지 않는다.  힘을 다하면 천명도 이기고, 뜻을 모으면 기질도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군자는 조물주가 만들어 준 사람의 기질과 운명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

 

43

몸을 한 걸음 높이 세우지 않는다면 마치 먼지 속에서 옷을 털고 흙탕물에 발을 씻는 것과 같으니 어찌 인생을 깨칠 수 있으리요!  세상을 한 걸음 뒤져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마치 불나방이 춧불로 날아들고 양이 울타리를 들이받는 것과 같으니 어찌 생활이 안락할 수 있으리요!

 

44

학문하는 사람은 정신을 가다듬어 한 곳에 집중해야 한다.  만일 덕을 닦으면서도 마음을 공적과 명예에 둔다면 틀림없이 깊은 경지에까지 이르지는 못할 것이며, 책을 읽으면서도 읊조리는 맛이나 놀이에만 감흥을 느낀다면 결코 깊은 마음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45

사람은 누구나 큰 자비심을 갖고 있으니 유마거사와 백정도 두 마음이 아니요, 곳곳마다 한 가지 참된 취미가 있으니 호화로운 집과 초가집이 다른 곳이 아니다.  다만 욕심에 덮이고 감정에 가려 눈앞에 당하여 한번 실수를 범하게 되면, 이것이 바로 지척이 천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46

덕을 기르고 도를 닦으려면 목석과 같은 굳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  만일 부귀를 부러워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문득 욕망의 세계로 내닫게 될 것이다.  세상을 구하고 나라를 다스릴 때에는 구름이 지나가고 물이 흘러 가는 것같이 무심하고 담담한 취미를 지녀야 한다.  만일 지위를 탐내게 되면 이내 위기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47

착한 사람은 행동이 안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잠자는 동안의 정신까지도 온화하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하는 일이 거칠고 사나울 뿐만 아니라 목소리나 웃는 말까지도 살기를 띠고 있다.

 

48

간이 병들면 눈이 보이지 않고 콩팥이 병들면 귀가 들리지 않는다.  병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 들지만 반드시 남들이 보는 곳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군자가 밝은 곳에서 죄를 얻지 않으려면 먼저 어두운 곳에서도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49

일이 적은 것보다 더 큰 복은 없고, 마음을 많이 쓰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다.  일에 시달린 사람이라야 일이 적은 것이 복됨을 알게 되고, 마음이 편한 사람이라야 마음을 많이 쓰는 것이 화임을 알게 된다.

 

50

태평한 세상에 살때에는 마땅히 방정해야 하고, 어지러운 세상에 살 때에는 마땅히 원만해야 하며, 평범한 세상에 살 때에는 마땅히 방정하고도 원만해야 한다.  선량한 사람을 대할 때에는 마땅히 너그러워야 하고, 악한 사람을 대할 때에는 마땅히 엄격해야 하며, 보통 사람을 대할 때에는 마땅히 너그럽고도 엄격해야 한다.

 

51

내가 남에게 베푼 공은 마음에 새겨 두지 말고 남에게 잘못한 것은 마음에 새겨 두라.  남이 나에게 베푼 은혜는 잊지 말고 남에게 원망이 있으면 잊어버리라.

 

52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안으로 자기를 헤아리지 않고 밖으로 상대방을 헤아리지 않는다면, 그때 베푼 한 말의 곡식은 만 섬의 은혜와 같다.  그러나 남에게 이롭게 해주는 사람이 자기의 은혜를 계산하고 그 사람이 갚을 것을 따진다면, 비록 천 냥의 돈일지라도 한푼의 공도 되기 어렵다.

 

53

사람들의 형편을 보면 가진 이도 있고 갖지 못한 이도 있는데, 어찌 나만 홀로 다 가지려고 할 수 있겠는가?  또 자기의 심정을 보더라도 도리에 맞는 것도 있고 맞지 않는 것도 있는데, 어찌 사람이 다 도리에 맞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남과 나를 견주어서 다스려 나간다면, 이것도 세상을 살아가는 편리한 한 방법이 될 것이다.

 

54

마음을 깨끗이 한 다음에 비로소 책을 읽고 옛 것을 배워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한 가지 착한 행실을 보아도 이것을 훔쳐 자기 욕심을 채우는 데 이용할 것이고, 한 마디 좋은 말을 들어도 이것을 빌어 자기으ㅟ 잘못을 덮는 데 이용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바로 원수에게 무기를 빌려 주고 도둑에게 양식을 대어 주는 것과 같다.

 

55

사치하는 사람은 아무리 부유해도 늘 모자라니, 검소한 사람이 가난하면서도여유 있는 것과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능란한 사람은 애써 일하고서도 원망을 사니, 서툰 사람이 편안한 가운데 천성을 지키는 것과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56

책을 읽으면서 성인이나 현자를 보지 못한다면 그는 글씨를 베끼는 필생에 지나지 않으며, 벼슬자리에 있으면서도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관복을 입은 도둑에 지나지 안흔다.  학문을 가르치면서도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구두선(口頭禪)일 뿐이며, 사업을 일으키고도 덕을 심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눈앞에 피고 지는 한때의 꽃이 되고 말 것이다.

 

57

사람의 마음속엔 저마다 하나의 참된 문장이 있건만 옛사람들이 남겨 놓은 몇 마디 기록 때문에 모두 묻혀 있고, 또 한 곡조의 참된 음악이 있건만 요염한 노래와 춤 때문에 모두 막혀 있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은 마땅히 외부의 사물을 쓸어 버리고 본래의 마음을 찾아야만 비로소 참된 보람을 얻게 될 것이다.

 

58

괴로와하는 가운데서 항상 마음을 기쁘게 하는 취미를 얻게 되고, 일이 뜻애로 되고 있을 때 문득 일이 실패했을 때의 슬픔이 싹트게 된다.

 

59

부귀와 명예가 도덕으로부터 온 것이면 마치 숲속의 꽃과 같이 스스로 무럭무럭 잘 자라고, 공적으로부터 온 것이면 마치 화분 속에서 자란 꽃과 같이 이리저리 옮겨지기도 하고 흥망이 있게 된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권력으로부터 얻어진 것이라면 마치 꽃병 속의 꽃과 같아서 뿌리가 없으므로, 그 시들어 가는 모습을 선 자리에서 기다려 지켜 볼 수 있을 것이다.

 

60

봄이 되어 날씨가 화창해지면 꽃도 한층 아름다와지고 새도 고운 노래를 부른다.  선비로써 다행히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어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면서도 훌륭한 말을 하고 좋은 행실을 행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백년을 산다 해도 하루도 살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다.

 

61

학문하는 사람은 조심스럽게 행돋하고 삼가는 마음을 가지는 한편 시원스러운 멋도 지녀야 한다.  만일 외곬으로 졸라 매어 지나치게 결백하기만 하다면, 쌀쌀한 가을의 살벌한 기운만 있고 따스한 봄의 생기가 없을 터이니 무엇으로 만물을 자라게 할 수 있겠는가?

 

62

참된 청렴에는 청렴이라는 이름조차 없다.  그러므로 청렴하다는 이름을 얻고자 함은 바로 탐욕스럽기 때문이다.  큰 재주에는 교묘한 술책이 없다.  그러므로 교묘한 술책을 부리려는 것은 바로 재주가 졸렬하기 때문이다.

 

63

물그릇은 가득 차면 엎어지고 저금통은 비어야 온전하다.  그러므로 군자는 차라리 무에 살지언정 유에 살지 않고, 모자라는 데 처할지언정 가득한 데 처하지 않는다.

 

64

명예심을 완전히 뿌리뽑지 못한 사람은 설사 제후의 부귀를 가벼이 알고 한 표주박의 음식을 달가와할지라도 사실은 세속의 욕망에 떨어진 것이요, 객기를 아직 없애지 못한 사람은 비록 천하에 은덕을 베풀고 만세에 이익을 끼칠지라도 결국 쓸모없는 재주에 그칠 뿐이다.

 

65

마음 바탕이 밝으면 어두운 방안에도 푸른 하늘이 있고, 마음 속이 어두우면 밝은 햇빛 아래에서도 도깨비가 나타난다.

 

66

사람들은 명예와 지위가 즐거운 것인 줄만 알고, 이름 없고 지위가 없는 것이 진정한 즐거움인 것은 깨닫지 못한다.  또 사람들은 춥고 배고픈 것만 근심인 줄 알고, 주리지 않고 춥지 않은 것이 더 심한 근심거리인 것은 알지 못한다.

 

67

악을 행하고 나서 남들이 알까 두려워하는 것은 악한 중에도 선한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이며,  선을 행하고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선한 가운데 악의 뿌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68

하늘의 조화는 헤아릴 길이 없어 눌렀다가는 펴고 폈다가는 다시 누르니, 이것은 모두 영웅을 희롱하고 호걸을 거꾸러 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군자는 운수가 사나와도 이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편안한 때에도 위태로움을 생각하기에, 하늘도 또한 그 재주를 부릴 수가 없다.

 

69

성미가 조급한 자는 타오르는 불길과 같아서 만나는 것마다 태워 버리고, 은덕이 적은 자는 싸늘한 얼음과 같아서 만나는 것마다 죽여 버리며, 꽉 막힌 고집스러운 사람은 고인물이나 썩은 나무와 같아서 생생한 기운이 이미 끊겨 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들은 모두 공적을 세우고 복을 누리기가 어렵다.

 

70

복은 마음대로 받을 수 없는 것이니 즐거운 마음을 길러 행복을 불러들이는 근본으로 삼아야 하고, 재앙은 마음대로 피하지 못하는 법이니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버려 재앙을 멀리 하는 방법으로 삼아야 한다.

 

71

열 마디 말 가운데 아홉 마디가 맞아도 신기하다고 칭찬하지도 않으면서, 한 마디 말이 맞지 않으면 원망의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 온다.  열 가지 계획 가운데 아홉 가지가 성취되어도 공로를 그에게 돌리지 않으면서 한 가지 계획이 실패하면 헐뜯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 온다.  군자가 차라리 입을 다물지언정 떠들지 않고, 서툰 체할지언정 재주 있는 체하지 않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72

천지의 기운이 따뜻하면 만물을 자라게 하고 추우면 만물을 죽게 한다.  그러므로 성질과 기질이 차가운 사람은 복을 후하게 받지 못한다.  오직 기질이 온화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야 복을 후하게 받고 혜택도 또한 오래 가는 법이다.

 

73

하늘의 도리에 이르는 길은 매우 넓어, 조금이라도 여기에 뜻을 두면 가슴 속이 넓어지고 또한 명랑해지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의 욕심에 따르는 길은 매우 좁아서, 여기에 조금만 발을 들여놓아도 눈앞이 모두 가시덤불과 진흙탕으로 되어 버린다.

 

74

괴로움과 즐거움을 모두 연마하고 얻은 행복이라야 그 복이 오래 간다.  의심과 믿음을 모두 참작한 끝에 얻은 지식이라야 그 지식이 참된 지식이다.

 

75

마음은 언제나 비워 두지 않으면 안된다.  비어 있으면 정의와 진리가 와서 산다.  마음은 언제나 채워 두지 않으면 안된다.  꽉 차 있으면 욕심이 들어오지 못한다.

 

76

더러운 땅에서는 초목이 많이 자라고 맑은 물에는 고기가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때묻고 더러운 것도 용납하는 아량이 있어야 하며, 깨끗한 것을 좋아하여 혼자만 행하려는 마음만 지녀서는 안된다.

 

77

수레를 뒤엎는 사나운 말도 길들이면 부릴 수 있고, 녹여 붓기 어려운 쇠도 잘 다루면 결국 틀에 부어져 그릇이 된다.  언제나 우물쭈물하고 분발하지 않는다면 평생토록 조금의 진전도 없을 것이다.  백사 선생이 말하기를 "사람이 병이 많음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평생토록 병이 없는 것이 바로 나의 걱정거리"라 했으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78

사람이 한번 자기의 이익을 탐내는 마음을 가지면 꿋꿋한 기상도 녹아 약해지고, 지혜는 막혀 어두워지며, 어진 마음이 변하여 사나와지고, 깨끗한 마음이 물들어 더러워지거나 한평생 인품을 망가뜨리게 된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은 탐내지 않는 것을 보배로 여겼으니, 이것이 곧 세상을 초월하는 방법이다.

 

79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은 바깥 도둑이고, 정요과 물욕은 안의 도둑이다.  다만 주인인 본심이 정신을 차려 흐려지지 않고 안채에 홀로 앉아 있으면, 도둑들도 변하여 집안 식구가 될 것이다.(탐심과 욕망이 침범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80

아직 시작하지 않은 일의 성취를 게획하는 것은 이미 성취한 일의 업적을 보전함만 같지 못하며, 이미 저지른 실수를 후회하는 것은 장차 일으킬 실수를 미리 막는 것만 같지 못하다.

 

81

사람의 기상은 높고 넓어야 하나 세상과 너무 동떨어져 어둡고 거칠어서는 안 되며, 마음은 치밀해야 하나 조잡해서는 안 되며, 취미는 담백해야 하나 너무 메말라서는 안 되고, 지조를 지킬 때는 엄정해야 하나 과격해서는 안 된다.

 

82

바람이 성긴 대숲에 불어 와도 사라지고 나면 소리가 남지 않으며, 기러기가 찬 연못을 건너 날아도 건너고 나면 그 그자가 남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일이 생겨야 비로소 마음이 나타나고, 일이 끝나면 마음도 따라서 빈다.

 

83

청렴결백하면서도 도량이 넓고, 인자하면서도 결단을 잘 내리며, 총명하면서도 남의 결점을 잘 들춰 내지 않고, 정직하면서도 지나치게 따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꿀을 넣은 과자이면서도 달지 않고 해산물이면서도 짜지 않은 것과 같으니 이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덕이다.

 

84

가난한 집일지라도 깨끗이 청소하고 가난한 집 여인도 머리를 깨끗이 빗으면, 그 모습이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절로 기품이 있어 아름다와 보인다.  그러니 군자가 한 때 곤궁과 적막함을 당한다 할지라도 어찌 자포자기할 수 있겠는가!

 

85

한가한 중에도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면 급할 때 도움이 되고, 고요한 중에도 마음을 허공에 두지 않으면 활동할 때 도움이 되며 어둠 속에서도 숨기지 않으면 밝은 곳에서 쓸모가 있게 된다.

 

86

생각이 일어난 때에 그것이 조금이라도 욕심의 길로 향해 가는 것을 깨닫게 되면 곧 도리의 길로 따라오게 인도하라.  생각이 일어나자마자 깨닫고 깨닫자마자 전환한다면, 이것이 곧 재앙을 행복으로 만들고 죽음을 삶으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이다.  참으로 소홀히 지나칠 말이 아니다.

 

87

고요한 때에 생각이 맑으면 마음의 참된 모습을 볼 것이요, 한가한 때에 기상이 조용하면 마음의 참된 활동을 알게 될 것이며, 담담한 가운데 취미가 깨끗하면 마음의 참된 맛을 얻게 될 것이니, 마음을 성찰하여 도를 체득하는 데는 이 세 가지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88

고요한 가운데 고요한 것은 참된 고요가 아니다.  분주한 가운데 고요를 얻어야 비로소 천성의 참된 경지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즐거움 가운데 즐거운 것은 참된 즐거움이 아니다.  괴로움 가운데 즐거움을 얻어야 비로소 마음의 참된 움직임을 볼 수 있다.

 

89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려거든 의심을 갖지 말라.  의심을 갖게 되면 희생하려던 본래의 뜻에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남에게 베풀었을 때에는 갚아 주기를 재촉하지 말라.  갚아 주기를 재촉하면 베풀어 준 마음까지도 함께 그르치게 될 것이다.

 

90

하늘이 나에게 복을 박하게 준다면 나는 내 덕을 후하게 해서 이를 맞이할 것이고, 하늘이 내몸을 수고스럽게 한다면 나는 내 마음을 편안히 하여 이를 보충할 것이며, 하늘이 내 처지를 곤궁하게 한다면 나는 내 도를 깨쳐 이를 트이게 할 것이다.  그러니 하늘인들 나를 어찌하겠는가!

 

91

지조가 곧은 선비는 복을 구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하늘이 오히려 그 마음을 찾아가 복의 문을 열어 주고, 간사한 사람은 재앙을 피하려고 애쓰나 하늘이 오히려 그 피하려는 마음에 재앙을 내려 그의 넋을 빼앗는다.  이 하늘의 권능은 얼마나 기묘한가!  그러니 사람의 지혜와 잔꾀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92

기생도 늘그막에 남편을 따르면 한평생의 분 냄새가 사라져 버리고, 열녀라도 머리가 센 뒤에 정조를 잃으면 반평생의 절개가 물거품이 된다.  옛말에 이르기를 "사람을 보려거든 그 후반생을 보라"고 했으니, 이는 실로 명언이다.

 

93

평민이라 할지라도 덕을 심고 은혜를 베풀면 곧 벼슬 없는 재상이요, 사대부라 할지라도 권세를 탐내고 은총을 팔면 마침내 벼슬 있는 거지가 될 것이다.

 

94

조상의 덕택이 무엇이뇨?  내 몸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이 곧 그것이니, 오랫 동안 어렵게 쌓아 올린 그 노고를 생각하라.  자손의 행복이 무엇이뇨?  내가 그들에게 끼쳐 주는 것이 곧 그것이니, 그 행복이 기울어지기 쉬운 것을 생각하라.

 

95

군자로서 위선을 행한다면 소인이 악을 거침없이 저지르는 것과 다름이 없고, 군자로서 절개를 꺾는다면 소인이 스스로 잘못을 뉘우쳐 고침만 못하다.

 

96

집안 식구가 잘못을 저지르면 몹시 성내지도 말고 가볍게 내버려 두지도 말라. 그 일을 말하기 어렵거든 다른 일을 빌어서 넌지시 일깨워 주고, 오늘 깨닫지 못하면 내일 다시 일깨워 주되, 봄바람이 얼어 붙은 것을 녹이듯 하고 온화한 기운이 얼음을 녹이듯 하라.  이것이 곧 가정을 다스리는 법도니라.

 

97

자기 마음이 항상 원만해질 수 있다면 천하는 저절로 불만이 없는 세계가 될 것이요, 자기 마음이 언제나 너그럽고 평온하다면 천하에서 저절로 악한 인정이 사라질 것이다.

 

98

청렴하고 검소한 선비는 반드시 호화로운 것을 좋아하는 자의 의심을 받게 되고, 엄격한 사람은 방종한 사람의 미움을 받게 마련이다.  군자는 이에 처하여서 그 지조를 조금이라도 바꾸지 말아야 하며, 또 그 주장을 너무 드러내지도 말아야 한다.

 

99

역경 속에 있을 때에는 그 주위가 모두 침이 되고 약이 되어 절개와 행실을 갈고 닦게 하는데 사람들이 이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순경 속에 있을 때는 눈앞에 있는 것이 모두 칼이 되고 창이 되어기름을 녹이고 뼈를 깎는데도 사람들이 미처 이를 깨닫지 못한다.

 

100

부귀를 누리는 집안에서 자란 사람은 그 욕심이 사나운 불길과 같고 그 권세가 사나운 불꽃과 같다.  만일 조금이라도 맑고 서늘한 기운을 띠지 않는다면, 그 불길이 남을 태우게까지 되지는 않을지라도 반드시 장차 자기 자신을 불사를 것이다.

 

101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이 진실하면 능히 서리가 내리게도 할 수 있고, 성을 무너뜨릴 수도 있으며, 쇠붙이나 돌도 뚫을 수가 있다.  그러나 거짓이 많은 사람은 형체만 갖추었을 뿐 본체는 이미 망한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남을 대하면 그 얼굴이 얄밉고 홀로 있으면 자기 몸과 그림자에 대해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102

문장이 극치에 이르면 유난히 기이하게 보이지 않고 다만 알맞을 뿐이요, 인품이 극치에 이르면 다만 본래의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103

이 세상을 꿈처럼 본다면 부귀와 명성은 말할 것도 없고 내 몸뚱이도 빌어 가진 형체에 지나지 않으며, 실체로 본다면 부모와 형제는 말할 것도 없고 만물이 다 나와 한 몸이다.  사람의 일체가 거짓 형체임을 깨닫고 만울이 나와 한 몸임을 깨닫는다면 능히 천하의 책임도 맡을 수 있고 또 세상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104

입에 맞는 음식은 모두가 창자를 곯게 하고 뼈를 썩게 하는 독약이니 반쯤 먹어야 재앙이 없고, 마음에 즐거운 일은 모두 몸을 망치고 덕을 잃게 하는 매개물이니 반쯤에서 그쳐야 후회가 없을 것이다.

 

105

남의 작은 허물을 꾸짖지 말고 남의 비밀을 들추어내지 말며 남의 지난날의 잘못을 생각지 말라.  이 세 가지가 덕을 기르고 해를 멀리하게 해줄 것이다.

 

106

선비와 군자는 몸가짐이 가벼워서는 안된다.  가벼우면 외계의 사물이 나를 동요케 하여 여유 있고 침착한 맛이 없게 된다.  또 마음 쓰는 것이 무거워서는 안된다.  무거우면 사물에 얽매여 시원하고 활달한 기상이 없어진다.

 

107

하늘과 땅은 영원히 있으나 이 몸은 두 번 얻지 못하며, 인생은 백년에 불과한데 이 하루는 쉬 가버린다.  다행히 그 사이에 태어난 사람인 바에야 삶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해서도 안 되고, 또 헛되이 살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서도 안된다.

 

108

원망은 덕으로 말미암아 나타난다.  그럴 바에는 남이 나를 덕이 있다고 여기게 하기보다는 덕과 원한을 모두 잊어버리게 하는 편이 낫다.  또 원수는 은혜로 말미암아 생겨난다.  그럴 바에는 남이 내 은혜를 알게 하기보다는 차라리 은혜와 원수를 함께 없애는 편이 낫다.

 

109

늙어서 생기는 병은 모두가 젊었을 때 불러들인 것이며,쇠퇴한 후의 재앙은 모두가 번성할 때에 지은 것이다.  그리므로 군자는 젊었을 때 몸을 조심하고 운수가 좋을 때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110

사사로이 은혜를 베푸는 것은 공정한 여론을 편드는 것만 같지 못하고, 새로 친구를 사귀는 것은 엣친구와의 우정을 두텁게 하는 것만 못하며, 영예로운 이름을 내세우는 것은 숨은 덕을 심느니만 못하고, 기이한 절조를 숭상하는 것은 평소의 행실을 삼가는 것만 못하다.

 

111

공평하고 올바는 의견에는 반대하지 말라.  한번 반대하면 수치를 만세에 남기게 될 것이다.  권세와 사리사욕을 탐내는 곳에는 발을 들여놓지 말라.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평생 그 더러움이 낙인직힐 것이다.

 

112

뜻을 굽혀 남을 기쁘게 해주는 것은 몸을 곧게 가져 남의 미움을 사느니만 못하고, 착한 일을 하지 않고 남의 칭찬을 받는 것은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남의 비난을 받느니만 못하다.

 

113

부모나 형제가 변을 당하면 침착해야지 격정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친구의 잘못을 보면 마땅히 적절하게 충고를해야지 주저해서는 안된다.

 

114

작을 일도 빈틈없이 처리하고 어둠 속에서도 속이거나 숨기지 않으며 실패하고서도 낙심하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 할 수 있다.

 

115

천금으로도 한때의 환심을 사기 어려운가 하면, 한끼 밥에 평생을 두고 감사할 수도 있다.  사랑이 지나치다가 도리어 원수가 될 수 있고, 지나치게 각박하다가도 도리어 기쁨을 이루게 된다.

 

116

교묘한 재주를 서툰 솜씨 속에 감추고, 어둠으로 밝음을 드러내며, 청렴하면서도 혼탁한 가운데 머물러 있고, 굽힘으로써 몸을 펴는 바탕으로 삼는 것, 이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안전한 길이요 몸을 보호하는 안전한 곳이다.

 

117

쇠퇴해 가는 모습은 풍성한 가운데 있고 새로 자라나는 움직임은 시듦 속에 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편안할 때에 마음을 바르게 가져 후환이 없게 하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는 백 번을 참아 성공을 도모해야 한다.

 

118

진기한 것에 경탄하고 이상한 것을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원대한 식견이 없으며, 외롭게 절개를 지키면서 홀로 생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지조가 없다.

 

119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고 욕망의 물결이 끓어오르는 때를 당하여, 분명히 이것을 알고 또 분명히 이것을 억제하려는 것이 있으니, 이것을 아는 것은 누구이고 이것을 누르려는 것은 누구인가?  이때에 홀연히 생각을 돌릴 수 있다면 사악한 악마도 곧 변하여 참된 마음이 될 것이다.

 

120

한쪽 말만 믿어 간사한 사람에게 속지 말고, 자기 힘만 믿어 객기를 부리지 말며, 자기의 장점으로 남의 단점을 드러내지 말고, 자기의 서투름으로 남의 유능함을 시기하지 말라.

 

121

남의 단점은 되도록 덮어 주어야 한다.  만일 그것을 들춰 내어 남에게 알린다면 이것은 자기의 단점으로 남의 단점을 공격하는 것이다.  남이 완고하면 잘 타일러 깨우쳐 줘야 한다.  만일 성내고 미워한다면 이것은 완고함으로써 완고함을 구제하는 것이 된다.

 

122

음흉하게 말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을 털어 놓지 말고, 화를 잘 내고 잘난 체하는 사람을 만나면 입을 다물라.

 

123

마음이 어둡고 산란할 때에 깨달을 줄 알아야 하고, 마음이 긴장되어 있을 때에 풀어놓을 줄을 알아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마음의 어두운 병은 고칠지라도 조바심을 하는 괴로움이 다시 찾아들 것이다.

 

124

맑게 갠 날 푸른 하늘도 갑자기 변하여 우뢰가 울리고 번개가 치며, 사나운 바람이 몰아치고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내리다가도 별안간 밝은 달, 맑은 하늘로 변하니, 천지의 움직임이 어찌 한결같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털끝만한 막힘 때문이니, 하늘의 상태가 어찌 한결같겠는가.  그것은 털끝만한 막힘 때문이니, 사람의 마음 바탕도 이와 같다.

 

125

사사로운 욕심을 억제할 경우에 "그것을 빨리 알지 못하면 억제하는 힘을 기르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비록 알았다고 하더라도 참는 힘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인식은 악마를 비추는 한 알의 밝은 구슬이요 힘은 악마를 베는 한 자루의 지혜로운 칼이니 이 두 가지가 다 있어야 한다.

 

126

남의 속임수를 알면서도 말로 표현하지 않고 남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얼굴빛에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 가운데 무궁한 뜻이 있으며 또 무궁한 효용이 있다.

 

127

역경과 곤궁은 곧 호걸을 단련하는 하나의 용광로요 망치다.  그 단련을 받으면 몸과 마음이 아울러 유익하고, 그 단련을 받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아울러 손해다.

 

128

내 몸은 하나의 작은 천지이다.  그러므로 기쁨과 분노를 절도있게 하고 좋아하고 싫어함을 알맞게 하면 그것이 곧 내 몸과 조화를 이루는 공부가 된다.

천지는 하나의 위대한 부모다.  그러므로 백성에게 원망이 없게 하고 만물에 병이 없게 하면 이것이 곧 화목을 이루는 기상이다.

 

129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지만, 남에게 받는 피해를 막으려는 마음을 갖지 않아서도 안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생각이 소홀함을 경게한 말이다.  또 "남에게 차라리 속을지언정 남이 속일 것을 앞질러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데, 이것은 지나치게 살펴 손상을 받게 되는 것을 경계한 말이다.  이 두 가지 말을 아울러 명심하면 생각이 맑아지고 덕이 두터워질 것이다.

 

130

사람들이 의심한다고 해서 자신의 견해를 굽히지 말고, 자기의 의견에만 얽매여 남의 말을 물리치지 말라.  작은 은혜에 이끌려 대국을 손상시키지 말고, 여론을 빌어사사로운 감정을 풀지 말라.

 

131

착한 사람과 빨리 친해질 수 없거든 미리 그를 칭찬하지 말라.  간악한 사람의 모함이 있을까 두렵다.  악한 사람을 쉽게 멀리할 수 없거든 그 사실을 미리 입 밖에 내지 말라.  뜻밖의 재앙이 닥칠까 두렵다.

 

132

푸른 하늘에 빛나는 태양처럼 드높은 절개도 어두운 방 한 구석에서 길러진 것이요, 천지를 뒤흔드는 뛰어난 경륜도 깊은 연못가에서 살얼음을 밟듯 조심스럽게 마련된 것이다.

 

133

어버이는 사랑하고 자식은 효도하며 형은 우애가 있고 아우는 공경하며 그것이 극진한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마땅한 것이니 조금도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볼 것이 못된다.  만일 베푸는 쪽에서 덕으로 자처하고 받는 쪽에서 은혜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길가에서 만난 사람의 관게와 다름이 없으니 곧 장사꾼의 관계가 되고 만다.

 

134

아름다움이 있으면 반드시 추함이 있어 맞서게 되는 법이니, 내가 스스로 아름다움을 자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추하다고 말하겠는가?  깨끗함이 있으면 반드시 더러움이 있어 맞서게 되는 법이니, 내가 스스로 깨끗함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더럽다고 말하겠는가?

 

135

더워졌다 차가와졌다 하는 마음의 변화는 빈천한 사람보다 부귀한 사람이 더욱 심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는 마음은 육친이 남보다 더 심한 법이다.  만일 이런 처지에서 냉정한 마음으로 대처하지 않고 가라앉은 마음으로 억제하지 않으면 번뇌 속에 빠지지 않는 날이 없을 것이다.

 

136

공로와 과실을 혼동하지 말라.  이것을 혼동하면 사람들이 게으르게 될 것이다.  은혜와 원한을 지나치게 밝히지 말라.  이것을 밝히면 사람들이 헤어져 떠나게 될 것이다.

 

137

벼슬자리는 너무 높지 말아야 하나니, 너무 높으면 위태롭다.  뛰어난 재주는 다 쓰지 말아야 하나니, 다 쓰면 쇠퇴하게 된다.  행동은 너무 고상하지 말아야 하나니, 너무 고상하면 비난과 핀잔을 받게 된다.

 

138

악은 그늘에 숨어 있기를 꺼리고 선은 햇빛에 나타나기를 꺼린다.  그러므로 드러난 악은 재앙이 작지만 숨은 악은 재앙이 크며, 드러난 선은 공이 작고 숨은 선은 공이 크다.

 

139

덕은 재능의 주인이고재능은 덕의 종이다.  그러므로 재능만 있고 덕이 없는 것은 마치 집안에 주인이 없고 종이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어찌 도깨비가 날뛰지 않겠는가.

 

140

간악한 무리를 제거하고 아첨하는 소인들을 막으려면 한 가닥 도망칠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만일 그들로 하여금 몸 붙일 곳이 없게 한다면, 이것은 마치 쥐구멍을 틀어막는 것과 같으니 도망칠 길을 모두 막는다면, 소중한 물건을 다 물어 뜯어 버릴 것이다.

 

141

실패의 책임은 남과 같이 나눠 지고 공은 남과 나눠 갖지 말라.  공을 함께 하면 서로 시기하게 될 것이다.  고난은 남과 함께 겪어도 좋으나 안락은 남과 함께 누리지 말라.  안락을 같이 하면 서로 원수가 될 것이다.

 

142

선비와 군자로서 가난하여 물질로 남을 도와 주지 못하더라도 어리석은 사람이 미혹에 빠져 있을 때 한 마디 말로써 그를 깨우쳐 주고, 위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 한 마디 말로써 그를 구제해 줄 수 있으니, 이 또한 무한한 공덕이라 하겠다.

 

143

배고프면 가까이하고 배부르면 떠나며, 따뜻하면 모여들고 추우면 버리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공통된 마음의 병이다. 

 

144

군자는 마땅히 냉철한 눈을 깨끗이 닦아야 하며, 굳은 신념을 갖고 가볍게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145

덕은 도량을 따라 발전하고 도량은 식견에 의해 자라난다.  그러므로 자기의 덕을 기르려면 불가불 도량을 넓혀야 하고, 도량을 넓히려면 불가불 식견을 키워야 한다.

 

146

외로운 등불이 반딧불처럼 가물거리고 삼라만상이 소리 없이 고요한 밤, 이때가 비로소 우리가 편안히 잠들 때다.  새벽 꿈에서 막 깨어나 만물이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때, 이 때가 우리가 혼돈 속에서 벗어날 때다.  이때를 틈타 마음의 빛을 밝혀 환히 돌이켜 보면, 비로소 이목구비가 모두 몸을 묶는 수갑이요 정욕과 기호가 다 마음을 타락시키는 기계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47

자기를 반성하는 사람에게는 닥치는 일마다 모두 약이 되고, 남을 원망하는 사람에게는 일어나는 생각마다 모두 창과 칼이 된다.  하나는 모든 선의 길을 열어 주고 또 하나는 모든 악의 근원을 이루게 되는 것이니, 그 양자는 하늘과 땅만큼의 거리가 있다.

 

148

사업과 문장은 몸과 더불어 사라지지만, 정신은 만고에 한결같이 새롭다.  공명과 부귀는 세상을 따라 바뀌지만 절개는 천년이 하루 같은 법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저것과 이것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149

고기잡이 그물에 기러기가 걸리고, 버마재비가 먹이를 노리니 또 그 뒤에서는 참새가 노리고 있다.  계략 속에 또 계략이 숨어 있고 이변 밖에서 또 이변이 일어나니, 지혜와 기교를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150

사람이 되어 한 점의 진실한 생각도 없다면 그는 일개 허수아비일 뿐이니 하는 일마다 헛될 것이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한 가닥 원활한 활동이 없으면 그는 곧 일개 나무 인형이니 이르는 곳마다 막힐 것이다.

 

151

물은 물결이 일지 않으면 스스로 조용하고, 거울은 먼지가 끼지 않으면 저절로 밝다.  그러므로 굳이 마음을 맑게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흐린 것을 버리면 스스로 맑아질 것이다.  또한 굳이 즐거움을 찾으려 애쓸 필요가 없다.  괴로움을 버리면 저절로 즐거운 것이다.

 

152

한 가지 생각으로써 천지신명의 금계를 범하고, 한 마디 말로 천지의 조화를 깨뜨리며, 한 가지 일이 자손에게 재앙으로 남는 수가 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153

일을 급히 서둘면 분명하게 도지 않지만 너그럽게 늦추면 저절로 밝혀지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조급하게 서둘러 남을 성나게 하지 말라.  사람은 부리려고 하면 순종하지 않지만 놓아 두면 감화를 받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심하게 부려 그 완고함을 더해 주지 말라.

 

154

절개가 청운을 내려다 볼 만하고 문장이 백설보다 높을지라도, 덕성으로 도야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혈기의 사사로운 행실이 되고 재주의 말단이 되고 만다.

 

155

일을 그만두고 물러서려거든 전성기에 해야 하고, 몸을 두려거든 홀로 지친 자리를 차지하라.

 

156

덕을 삼가 이루려거든 작은 일에서 조심하고, 은혜를 베풀려거든 보답할 수 없는 사람에게 하라.

 

157

거리의 사람을 사귀는 것은 산골 늙은이를 사귀는 것만 못하고, 고관의 집에 가서 굽실거리는 것은 오두막에 안주하는 것만 못하며, 거리에 떠도는 말을 듣는 것은 나무꾼과 목동의 노래를 듣는 것만 못하고, 지금 사람들의 부덕과 그릇된 행실을 말하는 것은 옛사람의 바른 말과 아름다운 행실을 이야기 하는 것만 못하다.

 

158

덕은 사업의 토대이다.  토대가 튼튼하지 않은데도 그 집이 오래가는 법은 없느니라.

 

159

마음은 자손을 위한 뿌리다.  뿌리를 심지 않고도 그 가지와 잎이 무성한 일은 지금까지 없었느니라.

 

160

옛사람이 이르기를 "자기 집의 무진장한 재산을 버려 두고 쪽박을 차고 이집 저집 돌아다니면서 거지 흉내를 낸다"고 했다.  또 이르기를 "벼락부자가 된 가난뱅이들아, 꿈 같은 이야기는 그만두어라.  뉘 집 부엌인들 연기가 나지 않겠는가!"  했다.  하나는 스스로의 소유에 어두운 것을 경계한 말이고, 또 하나는 스스로의 소유를 자랑하는 것을 깨우쳐 주는 말이다.  도를 배움에 간절한 훈계로 삼아야 할 것이다.

 

161

도는 공중의 것이니 사람마다 이끌어 행하게 하라.  학문은 날마다 먹는 밥과 같은 것이니 일마다 깨달아 삼가게 하라.

 

162

남을 믿는 사람은 남이 반드시 성실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성실하기 때문이며, 남을 의심하는 사람은 남이 반드시 속여서가 아니라 자기가 먼저 속이기 때문이다.

 

163

소견이 너그러운 사람은 마치 봄바람이 품어 키워 주는 것과 같아서 만물이 그를 만나면 살아난다.  시기심이 많고 각박한 사람은 마치 북풍한설이 얼어 붙게 하는 것 같아서 만물이 그를 만나면 죽고 만다.

 

164

착한 일을 하여도 그 이득이 보이지 않는 것은 마치 풀 속의 동아와 같아서 모르는 가운데 절로 자라나고, 약한 일을 하여도 그 손실이 보이지 않는 것은 마치 뜰 앞의 봄 눈 같아서 반드시 모르는 사이에 녹아 없어지고 만다.

 

165

옛친구를 만나면 우정을 더욱 새롭게 해야 하고, 은밀한 일을 당하면 마음을 더욱 뚜렷이 드러내야 하며, 불운한 사람을 만나면 은혜와 대우를 더욱 후하게 해야 한다.

 

166

부지런하다는 것은 덕과 의리에 민첩함을 말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부지런함을 빌어 자기의 가난을 구제한다.  또 검소하다는 것은 재물과 이익에 냉담함을 말하는데, 세상 사람들은 검소를 빌어서 자기의 인색함을 꾸민다.  군자의 몸을 닦는 방법이 도리어 소인배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도구가 되어 있으니 애석한 일이다.

 

167

생각나는 대로 시작하는 일은 시작하자마자 곧 멈추게 되니 어찌 쉬지 않고 굴러가는 수레바퀴일 수 있으랴!  또한 감정적인 인식으로 깨닫는 것은 깨닫자마자 곧 흐려지게 되니 항상 밝은 등불은 되지 못한다.

 

168

남의 잘못을 용서하되 내 잘못은 용서하지 말고, 나의 곤욕은 참되 남의 곤욕은 구제해 주어라.

 

169

세속을 벗어나면 기인이다.  일부러 기이함을 숭상하는 사람은 기인이 되지 못하고 괴이한 자가 되고 만다.  더러움에 섞이지 않으면 청렴하다.  세속과 인연을 끊고 청렴을 구하면 청렴한 사람이 아니라 과격한 자가 되고 만다.

 

170

은혜는 엷은 데서 짙은 데로 나아가야 한다.  만일 먼저 짙고 나중에 엷으면 사람들은 그 은혜를 잊어버린다.  위엄은 엄한 데서부터 너그러운 데로 나아가야 한다.  만일 먼저 너그럽고 나중에 엄하면 사람이 혹독하다는 원망을 듣게 된다.

 

171

마음이 비어 있으면 본성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마음을 계속 움직이면서 본성을 보려고 하는 것은 마치 물결을 헤치면서 달을 찾는 것과 같다.  뜻이 맑으면 마음이 맑아지게 마련이다.  뜻을 밝게 하지 않고 마음이 밝기를 바라는 것은 마치 거울을 찾으면서 먼지를 더 일으키는 것과 같다.

 

172

내가 귀하여 남들이 나를 받드는 것은 높은 관과 큰 띠를 받드는 것이요, 내가 천하여 남들이 나를 업신여기는 것은 이 베옷과 짚신을 업신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본래의 나를 받드는 것이 아닌데 어찌 내가 기뻐하며, 본래의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 아닌데 어찌 내가 화를 내겠는가!

 

173

"쥐를 위해 언제나 밥을 남겨 두고 부나비를 가엾게 여겨 등불을 켜지 않는다"  했으니, 옛사람들의 이런 생각은 우리 인간을 생장하게 하는 기틀이다.  이것이 없다면 흙이나 나무와 같은 형체일 따름이다.

 

174

마음의 본체는 천체와 같다.  인간의 기뻐하는 마음은 별과 상서로운 구름이요, 성내는 마음은 진동하는 우뢰와 사나운 폭우요, 인자한 마음은 온화한 바람과 단 이슬이요,엄격한 마음은 여름 햇볕과 가을 무서리니, 어느것이나 없어서는 안된다.  다만 때에 따라 사라져 텅 비어 막히지 말아야 하나니, 이것이 곧 하늘과 한 몸이 되는 길이다.

 

175

일이 없으면 마음이 어두워지기 쉬우니 고요한 가운데 밝은 지혜로 비춰야 하고, 일이 있으면 마음이 흩어지기 쉬우니 마음을 밝게 하여 고요함에 주로 힘써야 한다.

 

176

일을 의논하는 사람은 그 일 밖에서 이해의 실정을 다 살펴야 하며, 일을 맡은 사람은 그 일 안에서 이해에 대한 생각을 잊어야 한다.

 

177

군자가 권세 있는 높은 지위에 올랐을 때에는 몸가짐을 엄정히 하고, 마음을 화평하게 가져야 하며, 조금이라도 탐욕스러운 무리는 가까이하지 말고, 또 과격하여 독침을 가진 자를 건드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178

절개와 의리를 내세우는 사람은 절개와 의리 때문에 비난을 받고, 도덕과 학문을 내세우는 사람은 도덕과 학문 때문에 원망을 듣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악한 일에 가까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명성도 내세우지 않나니, 오직 원만한 화기만이 몸을 보전하는 보배가 된다.

 

179

속이는 사람을 만나거든 정성껏 그를 감동시키고, 포악한 사람을 만나거든 온화한 마음으로 감화시키며, 마음이 비뚤어져 사욕에 눈이 어두운 사람을 만나거든 정의와 기절(氣節)로 격려하라.  이렇게 하면 하늘 아래 나의 도야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180

조그마한 자비심도 능히 천지 사이에 온화한 기운을 빚어내며, 한 치 결백도 가히 꽃다운 이름을 백대에 전할 것이다.

 

181

음흉한 계략과 괴이한 습관, 이상한 행동과 기이한 능력은 모두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재앙의 씨앗이 되는 법이다.  오직 평범한 덕행만이 혼돈을 바로잡아 화평을 가져 올 수 있다.

 

182

옛말에 이르기를 "산에 오르면 험한 비탈길을 견디어 내고 눈을 밟거든 위험한 다리를 견디어 내라"  하였으니 이 '견딜 내(耐) 한 글자는 깊은 뜻을 지니고 있다.  비뚤어진 험한 인정과 울퉁불퉁한 세상 길을 , 만일 이 '내(耐)' 자 한 글자에 지탱하여 나가지 않는다면, 어찌 가시덤불과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183

사람들은 공명과 사업을 뽐내고 문장을 자랑하지만, 이것은 바깥 사물에 의해 훌륭해진 것일 뿐이다.  마음 바탕은 원래 밝은 것이니 그 본래의 모습을 잃지않는다면, 비록 한 치의 공적이 없고 글 한 자를 모른다 할지라도 절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한다.

 

184

바쁜 가운데 한가함을 얻으려고 하면 먼저 한가한 때에 마음의 자루를 꼭 잡아야 하고, 시끄러운 속에서 고요를 취하려면 먼저 고요한 때에 마음의 주체를 세우라.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경우에 따라 변하고, 일에 따라 흔들리게 된다.

 

185

자기 마음을 어둡게 하지 말고, 인정을 없이해 남에게 가혹하게 대하지 말며, 물력을 다 써 버리지 말라.  이 세 가지는 하늘을 위하여 마음을 세우고, 만민을 위하여 목숨을 세우고, 자손을 위하여 복을 이루느니라.

 

186

관직에 있는 사람에게 할 말이 두 마디 있으니, "오직 공평하면 맑은 지혜가 생기고, 오직 청렴하면 위엄이 생긴다"는 것이다.  집에 있는 이를 위해 할말이 두 마디 있으니, "오직 남을 용서하면 불평이 없고 오직 검소하면 살림이 넉넉해진다"는 것이다.

 

187

부귀한 처지에 있을 때에는 빈천함의 고통을 알아야 하고, 젊은 시절에는 노쇠한 처지의 괴로움을 생각해야 한다.

 

188

몸가짐이 지나치게 결백해서는 안 되며 욕되고 더러운 모든 것도 용납해야 한다.  남과 사귈 때에는 지나치게 분명하게 따지지 말아야 하며 선악과 현우를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189

소인과 원수를 맺지 말라.  소인은 저대로 상대가 있는 법이다.  군자에게 아첨하지 말라.  군자는 원래 사사로운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

 

190

욕심을 부리는 병은 고칠 수 있지만, 이론만을 고집하는 병은고치기 어렵다.  사물의 장애는 고칠 수 있지만, 의리에 얽매인 장애는 없애기 어렵다.

 

191

수양은 백 번 단련된 쇠와 같으니 급히 이룬 것은 깊은 수양이 아니다.  실행은 천균의활과 같으니 가벼이 쏜 것은 큰 공이 없다.

 (균; 鈞30근)

 

192

차라리 소인에게 미움과 비난을 받을지언정 소인들이 아첨하고 좋아하는 대상이 되지 말라.  차라리 군자에게 꾸짖음을 당하고 일깨워질지언정 군자가 감싸고 용서하는 자가 되지 말라.

 

193

이(利)를 좋으하는 사람은 도의 밖으로 벗어나기 때문에 그 해독이 밖으로 드러나나 얕으며,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은 도의 안에 숨어 들기 때문에 그 해독이 보이지 않으나 깊다.

 

194

남한테서 받은 은혜는 깊어도 갚지 않으면서 원망은 얕아도 갚고, 남이 악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비록 뚜렷하지 않아도 의심하지 않으면서 착하다는 이야기는 뚜렷해도 의심한다.  이것이야말로 각박의 극단이요 경박의 극치니,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195

참소하고 헐뜯는 사람은 마치 조각 구름이 햇빛을 가리는 것과 같아서 오래지 않아 스스로 밝아지며, 아양을 떨고 아첨하는 사람은 마치 창틈으로 스며든 바람이 살갗을 스치는 것과 같아서 그 해로움을 깨닫기 어렵다.

 

196

산이 높고 험한 곳에는 나무가 없으나 골짜기에는 초목이 무성하고, 물살이 센 곳에는 고기가 없지만 연못 물이 고요하고 깊게 고이면 물고기와 자라가 모여든다.  군자는 지나치게 고상한 태도와 좁고 급한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197

공을 세우고 사업을 이룬 사람은 대개 마음이 담담하고 원만하며, 일에 실패하고 기회를 잃은 사람은 너무 집착하고 고집이 세다.(큰 일을 하는 사람은 대개 포용력이 있고 원만하며, 일에 실패하고 기회를 놓친 사람은 으레 욕심이 앞서 악착같고 고집이 세다.)

 

198

세상을 살아가는 마당에서는 세속과 보조를 같게 하지도 말고 또 다르게 하지도 말라.  일을 하는 마당에서는 남으로 하여금 싫어하게 하지도 말고 또 기뻐하게 하지도 말라.

 

199

하루 해가 이미 저물었으되 오히려 연기와 노을이 아름답고,한 해가 장차 지려 하지만 귤은 더욱 향기롭다.  그러므로 인생의 마지막 만년에 군자는 정신을 백 배 가다듬어야 한다.

 

200

매가 조는 듯 앉아 있고 호랑이가 병든 듯 걸어가지만, 이것이 바로 사람을 움켜 쥐고 잡아먹는 수단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총명함을 드러내지 말고 재능을 나타내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어깨에 큰일을 짊어질 힘이 될 것이다.

 

201

검약은 미덕이지만 지나치면 인색하고 비루해져 도리어 정도를 해치고, 겸손은 아름다운 행실이지만 지나치면 아첨과 비굴이 되어 음흉한 마음이 나타나게 된다.

 

202

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마음에 흡족하다고 기뻐하지 말며, 오랫 동안 편안하기를 믿지 말고, 처음이 어렵다고 꺼리지 말라.

 

203

술잔치의 즐거움이 잦으면 좋은 집안이 아니고, 명성을 떨치기를 원하면 훌륭한 선비가 아니며, 높은 벼슬을 탐내면 훌륭한 신하가 아니다.

 

204

세상 사람들은 마음에 맞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으니 오히려 즐거움에 이끌려 괴로움 가운데 몸을 담게 되며, 통달한 선비는 마음에 거슬리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으니 마침내 괴로움이 변하여 즐거움이 된다.

 

205

가득 찬 곳에 있는 사람은 마치 물이 넘치려다가 채 넘치지 않은 것과 같아서 다시 한 방울을 더하는 것도 꺼리고, 위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마치 나무가 꺾이려다가 아직 꺾이지 않은 것과 같아서 조금이라도 더 누르는 것을 싫어한다.(너무 가득한 상태나 위험한 지경에는 이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206

냉정한 눈으로 사람을 보고, 냉정한 귀로 남의 말을 들으며, 냉정한 감정으로 일을 대하고, 냉정한 마음으로 도리를 생각하라.

 

207

어진 사람은 마음이 넓고 느긋하니 복이 많고 경사가 오래가 하는 일마다 너그럽고 여유 있는 기상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천한 사람은 생각이 좁고 다급하니 복록이 박하고 혜택이 짧아 하는 일마다 그 규모가 옹졸하고 조급하다.

 

208

악한 말을 듣더라도 곧 미워하지 말라.  참소하는 자의 분풀이가 될까 두렵다.  선한 말을 듣더라도 급히 친하지 말라.  간사한 자의 출세를 끌어 줄까 두렵다.

 

209

성질이 조급하고 마음이 거친 사람은 한 가지 일도 이룰 수가 없고, 마음이 부드럽고 성질이 화평한 사람에게는 백 가지 복이 절로 모여든다.

 

210

사람을 부릴 때에는 각박하지 말라.  각박하게 대하면 성과를 올리려고 생각하던 사람도 떠나 버린다.  친구를 사귈 때에는 함부로 사귀지 말라.  함부로 사귀면 아첨하는 자도 찾아올 것이다.

 

211

바람이 세차고 빗발이 사나운 곳에서는 다리(脚)를 튼튼히 세워야 하고, 꽃이 만발하고 능수버들이 아름다운 곳에서는 눈을 들어 높이 보아야 하며, 길이 위태롭고 험한 곳에서는 머리를 빨리 돌려야 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버티고 서듯, 어지러운 역경에서는 정신을 가다듬어 침착하게 살아가야 한다.  꽃향기가 짙고 버들이 아름다운 곳에서는 한눈을 팔기 쉽다.  음탕과 유흥에서 눈을 돌려 큰 목표를 향해 매진해야 한다.  험하고 위태한 길에서는 곧 발길을 돌려야 한다.  어물어물하다 보면 어려움에 깊이 빠지게 된다.)

 

212

절의(節義)가 있는 사람은 온화한 마음을 길러야 비로소 분쟁의 길을 열지 않을 것이고, 공명이 있는 사람은 겸양의 덕을 체득해야 시기의 문이 열리지 않을 것이다.

 

213

선비가 벼슬자리에 있을 때에는 편지 한 장이도 절도있게 써야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 마음을 들여다보기 어렵게 하여 요행을 바라고 모여들 틈을 주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고향에서 살 때에는 몸가짐을 너무 높게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들여다보기 쉽게 하여 옛정을 두려이 해야 하기 때문이다.

 

214

대인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인을 두려워하면 방종한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소인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소인을 두려워하면 거만하고 횡포하다는 말이 사라질 것이다.

 

215

일이 조금이라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바로 자기만 못한 사람을 생각하라.  그러면 원망이 자연히 없어질 것이다.  마음이 조금이라도 게을러지려 하거든 바로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생각하라.  그러면 정신이 자연히 분발하게 될 것이다.

 

216

기쁨에 들떠 가볍게 승낙하지 말고, 술에 취한 것을 빙자하여 성내지 말라.  유쾌함에 들떠 일을 많이 벌이지 말고, 싫증난다고 해서 일을 그만두지 말라.

 

217

독서를 잘하는 사람은 신이 나서 손발이 춤추는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형식에 구애받지 않게 된다.  사물을 잘 관찰하는 사람은 마음과 정신이 융합되는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때에야 비로소 사물의 외형에 사로잡히지 않게 된다.

(독서를 잘하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목청을 돋우고 어깨춤이 나오는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문장에 얽매이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진정한 뜻을 알 수 있다.  또 사물을 관찰할 경우에는 정신을 사물에 집중시켜 자기와 사물을 하나로 융합시켜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외형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진상을 깨달을 수 있다.)

 

218

하늘은 한 사람을 현명하게 하여 모든 사람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려 하나, 세상에서는 오히려 자기의 장점을 내세워 남의 단점을 들춰낸다.  또 하늘은 한 사람에게 부유함을 주어 모든 사람의 곤궁을 구제하려 하나, 세상에는 오히려 가진 것에 의지하여 가난을 업신여긴다.  참으로 천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다.

 

219

학문과 덕이 극치에 이른 사람이야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근심하랴.  어리석은 사람은 지식도 생각도 없으니, 오히려 함께 학문을 논하고 또 더불어 공을 세울 수가 있다.  다만 재주가 어중간한 사람은 제 나름의 생각과 지식이 많아 억측과 시기도 많으니 매사에 함께 일하기가 어렵다.

 

220

입은 곧 마음의 문이니 입을 엄밀히 봉하지 않으면 참된 기밀이 모두 새어 나가며, 뜻은 마음의 발이니 뜻을 엄격히 막지 않으면 그릇된 길로 달아나 버린다.

(마음 속의 생각은 입을 통해 밖으로 나오게 되므로 입은 곧 마음의 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말을 삼가하지 않으면 마음의 기밀이 다 새어나가고 만다.  또마음속의 생각을 실행하려면 우선 뜻을 세우는 것이 그 제일보니, 뜻은 마음의 발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뜻을 엄격하고 바르게 세우지 않으면 그릇된 길로 빗나가기 쉽다.)

221

남을 꾸짖을 때에는 허물 있는 가운데서 허물 없음을 찾아내도록 하라.  그러면 감정이 평온해질 것이다.  자신을 꾸짖을 때에는 허물 없는 속에서 허물을 찾아내도록 하라.  그러면 덕이 자랄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남의 잘못에는 가혹하고 자기 잘못에는 관대하다. 그러나 남의 잘못을 꾸짖을 대에는 잘못 중에서 허물이 아닌 부분을 찾아내야 마음이 평온해지고 노여움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잘못을 꾸짖을 때에는 잘못이 될 수 없는 것 중에서도 잘못을 찾아내어 스스로 반성하고 채찍질하라.  그러면 덕이 향상될 것이다.)

222

어린이는 어른의 싹이요 수재는 사대부의 씨앗이니, 만일 이때에 화력이 모자라 단련이 완전치 못하다면, 훗날 세상에 나가 조정에서 일하게 될 때 훌륭한 그릇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223

군자는 환난에 처해도 걱정하지 않으나 오히려 즐거운 잔치를 당해서는 걱정하며, 권세 있는 사람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으나 외로운 사람을 대하면 안타까와한다.

(군자는 어려움 속에서는 태연하지만 즐거운 잔치가 열린 자리에서는 오히려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을까 하고 걱정한다.  그리고 권세가 앞에서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나 의지할 곳 없는 외로운 사람을 만나면 동정을 아끼지 않는다.)

224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아무리 아름다와도 어찌 저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의 굳은 절개만 할 수 있겠는가. 배와 살구가 아무리 달더라도 어찌 노란 유자와 푸른귤의 맑은 향기를 당할 수 있겠는가.  정말 그렇다!  아름답고 일찍 시드는 것은 담백하고 오래가는 것만 못하고, 일찍 빼어난 것은 늦게 이루는 것만 못하다.

 

225

바람 자고 물결 고요한 가운데에서 인생의 참된 경지를 볼 수 있고, 맛이 담담하고 소리가 드문 곳에서 마음의 본모습을 깨달을 수 있다.

 

 

채근담 후집(後集)

 

1

산림의 즐거움을 말하는 사람은 아직 산림의 맛을 진실로 알지 못하는 것이며, 명리의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 명리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 속에 묻혀 사는 전원 생활의 즐거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직 전원 생활의 진정한 멋을 모르는 것이다.  전원생활의 진정한 맛을 아는 사람은 함부로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진정한 맛이란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명리에 대한 이야기를 꺼리는 사람은 아직도 명리에 대해 미련이 있는 것이다.  참으로 명리를 잊은 사람이라면 이를 초월하였기에 꺼릴 여지조차 없는 것이다.)

 

2

낚시질은 한가한 일이나 오히려 살리고 죽이는 권리를 쥐고 있고, 바둑과 장기는 고상한 놀이이나 전쟁하는 마음으로 움직여진다.  일을 좋아하는 것은 일을 덜고 한가히 지냄만 못하고, 재능이 많은 것은 무능하여 본래의 마음을 보전하는 것만 못함을 알 수 있다.

 

3

꾀꼬리가 울고 꽃이 만발하며 산이 풍성하고 골짜기가 아름다운 것은 모두 천지의 거짓 모습이요, 물이 마르고 나뭇잎이 떨어져 앙상한 바위와 메마른 언덕이 드러나야 비로소 천지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다.

 

4

세월은 본래 길건만 바쁜 사람은 스스로 짧다고 하며, 천지는 본래 넓건만 천박한 사람은 스스로 좁다고 하며, 바람과 꽃과 눈과 달은 본래 한가하건만 악착스런 사람은 스스로 번잡하다 한다.

 

5

풍취는 많은 것에서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니, 쟁반만한 작은 못, 주먹만한 작은 돌 하나에도 산수의 정취가 깃들어 있다.  훌륭한 경치는 먼데 있는 것이 아니니, 쑥대가 우거진 창문과 대나무로 얽어 만든 집에도 시원한 바람과 밝은 달이 한가로이 찾아든다.

 

6

고요한 밤에 종소리를 듣고 꿈속의 꿈을 깨우고, 맑은 연못에 비친 달 그림자를 보고 몸 밖의 몸을 엿본다.

 

7

새의 지저귐과 벌레의 울음 소리는 모두가 마음을 전하는 비결이요, 꽃잎과 풀빛은 진리를 보여주는 명문(名文)이다.  그러므로 배우는 사람은 마음을 맑게 하고 가슴을 밝게 하여 보고 듣는 것 마다에서 항상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한다.

 

8

사람들은 글자가 씌어진 책은 읽을 줄 아나 글자가 씌어 있지 않은 책은 읽을 줄 모르며, 줄이 달린 거문고는 탈 줄 아나 줄이 없는 거문고는 탈 줄 모른다.  형체가 있는 것만 쓸 줄 알고 정신을 쓸 줄 모른다면, 어찌 거문고와 책의 참된 맛을 알 수 있겠는가!

 

9

마음에 물욕이 없으면 이것은 곧 가을 하늘과 잔잔한 바다요, 자리에 거문고와 책이 있으면 곧 신선이 사는 곳이다.

 

10

손님과 벗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실컷 마시고 마냥 즐기다가, 이윽고 시간이 다 되어 춧불이 가물거리고 향불이 꺼지고 차마저 식고 나면, 저절로 흐느낌이 복받치며 한없이 처량해진다.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이와 같은데, 사람들은 어찌하여 빨리 머리를 돌리지 않는 것일까?

 

11

사물 속에 깃들어 있는 참뜻을 깨닫는다면 천하의 아름다운 경치도 다 마음속에 들어오고, 눈앞의 김밀을 깨닫는다면 천고의 뛰어난 영웅도 모두 손아귀에 들어온다.

 

12

산하와 대지도 하나의 작은 티끌에 속할 뿐이거늘 하물며 티끌 속의 티끌이야 말해 무엇하랴.  피와 살로 이루어진 몸뚱이도 물거품과 그림자로 돌아가거늘 하물며 그림자 밖의 그림자야 말해 무엇하랴.  최상의 지혜가 아니면 밝은 마음이 될 수 없다.

 

13

석화(石火)같은 빛 속에서 길고 짧음을 다툰들 그 세월이 얼마나 되며, 달팽이 뿔 위에서 승패를 겨룬들 그 세계가 얼마나 크겠는가.

 

14

꺼져 가는 등잔에 불꽃이 없고 해진 가죽옷에 온기가 없으면 살풍경하기 짝이 없고, 몸이 마른 나무 같고 마음이 식은 재와 같으면 적막에 떨어짐을 면치 못하리라.

 

15

사람은 당장에 그만두면 그만둘 수 있으나, 다로 그만둘 곳을 찾는다면, 아들을 장가들이고 딸을 시집보낸 뒤에도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중과 도사가 좋다 하나 그 마음만으로는 깨달을 수가 없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당장 그만두면 그만둘 수 있으나, 만일 그만둘 때를 찾는다면 그만둘 때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으니 참으로 훌륭한 말이다.

 

16

냉정해진 다음에 열광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정열에 사로잡혀 광분한 것이 부질없음을 알게 되며, 번잡한 다음에 한가로와지면 한가한 즐거움이 제일 긴 것임을 깨닫게 된다.

 

17

부귀를 뜬구름처럼 여기는 기풍이 있을지라도 반드시 바위굴에서 살 필요는 없으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질처럼 되어서는 안 되나 항상 스스로 술에 취하고 시를 읊는 풍류는 즐겨야 한다.

 

18

명리를 위한 다툼은 남에게 맡기고 모두가 이에 열을 올려도 미워하지 말라.  고요하고 담백함은 내가 즐기되 홀로 깨어 있음을 자랑하지 말라.  이것이 불료에서 이르는 "법에도 매이지 않고 공(空)에도 매이지 않아"  몸과 마음이 모두 자유로운 사람이니라.

 

19

길고 짧음은 생각으로 말미암고, 넓고 좁음은 마음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한가한 사람은 하루가 천고보다 멀고, 뜻이 넓은 사람은 한 간 방이 하늘과 땅 사이만큼 넓다.

 

20

물욕에서 벗어나 꽃을 가꾸고 대나무를 심으니 오유(有;어찌 있으랴?는 뜻 즉, 무를 말함)선생이 되어 간다.  세상일을 잊고 또 잊어 향을 피우고 차를 끓이니 백의동자를 물어 무엇하겠는가.

(백의동자 : 도연명이 9월9일 중양절에 술이 없어 국화를 따고 있을 때 술을 보내 왔던 왕홍이 흰 옷을 입고 있었기에 백의동자라 함.  여기서는 오유선생과  對 가 됨.)

 

21

눈앞에 닥쳐오는 모든 일에 족할 줄 알면 선경이니 족할 줄 모르면 속세이며, 세상의 모든 인연을 잘 쓰면 살리는 작용이 되나 잘못 쓰면 죽이는 작용이 된다.

 

22

권력을 좇고 권세에 빌붙다가 받는 재앙은 몹시 참혹하고 또 매우 빠르며, 고요한 데 살고 편안함을 지키는 맛은 가장 맑고 또 가장 오래가느니라.

 

23

소나무 우거진 개울가를 지팡이 짚고 홀로 걷노라니 멈춰서는 곳마다 구름이 해진 누더기 옷에서 일어나고, 대나무 우거진 창가에서 책을 베고 누었다가 잠을 깨니 달빛이 낡은 담요를 비추고 있다.

 

24

정욕이 불길처럼 타오를지라도 한번 생각이 병든 때에 미치면 문득 흥이 식은 재처럼 줄어들고, 명리가 엿처럼 달다가도 한번 생각이 죽는 처지에 이르면 그 맛이 초(:밀랍)를 씹는 것 같아진다.  그러므로 사람이 항상 죽음을 근심하고 병을 걱정한다면 헛된 일은 사라지고 도심()이 오래갈 것이다.

 

25

서로 앞을 다투는 길은 좁으니,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면 절로 한 걸음만큼 넓고 평평해진다.  감미로운 맛은 짧으니, 일푼()을 담백하게 하면 절로 일푼만큼 길어지고 오래간다.

 

26

바쁠 때에 본성이 어지러워지지 않으려면 한가한 때에 정신을 맑게 길러야 하고, 죽을 때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살아 있는 동안 사물의 참된 모습을 간파해야 한다.

 

27

숨어 사는 숲 속에는 영욕이 없고, 도의의 길 위에는 변덕이 없다.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 사는 사람의 마음에는 영화나 욕됨이 있을 수 없다.  또 도의를 지키며 살아가는 삶에는 부귀한 사람과 빈천한 사람을 구분하는 인정의 변덕이 있을 수 없다.)

 

28

더위를 굳이 없앨 필요는 없다.  더위를 괴워와하는 마음만 없애면 몸은 언제나 서늘한 누대 위에 있을 것이다.  가난을 굳이 쫓을 필요는 없다.  가난에 대한 근심만 몰아내면 마음은 언제나 안락한 집안에 있을 것이다.

 

29

한 걸음 나아갈 때에 문득 한 걸음 물러날 것을 생각하면 재앙을 면할 수 있다.  손을 댈 때에 먼저 손을 떼는 일을 도모하면 위험을 면할 수 있다.

 

30

욕심이 많은 사람은 금을 나누어 주어도 옥을 얻지 못함을 한탄하고 공작에 봉해 주어도 제후 벼슬 받지 못함을 원망하니, 부귀를 누리면서도 스스로 거지 노릇을 달게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명아주 국도 고기와 쌀밥보다 맛있게 먹고 베 두루마기도 여우와 담비 가죽옷보다 따뜻하게 여기니, 서민이면서도 왕공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31

명예를 자랑함은 명예에서 도피하는 취미만 못하며, 일에 익숙함이 어찌 일을 줄여 한가함만 같으랴.

 

32

정적을 즐기는 사람은 흰 구름과 그윽한 바위를 보고 유현(幽玄:사물의 이치 또는 아취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음)한 이치를 깨닫고,영화를 좇는 사람은 아름다운 노래와 묘한 춤을 보고 권태를 잊는다.  다만 스스로 깨달은 선비만이시끄러움과 고요함도 없고 번영과 쇠퇴도 없으니 가는 곳마다 마음 맞는 세상 아닌 곳이 없다.

 

33

외로운 구름은 골짜기에서 피아나되 가고 멈춤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고, 밝은 달은 하늘에 걸려 있되 고요하고 시끄러움에 상관치 않는다.

 

34

유장한 취미는 맛좋은 술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콩씹고 물 마시는 데서 얻어진다.  그리운 회포는 메마른 적막 가운데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피리 불고 거문고 타는 데서 생겨난다.  짙은 맛은 항상 짧으며 담백한 맛이야말로 홀로 참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35

선종(禪宗)에서 말하기를 "배고프면 밥먹고, 고단하면 잠잔다"  하였고, 시지(詩旨)에서 이르기를, "눈앞의 경치요, 평범한 말이라"고 하였다.  가장 높은 것은 가장 평범한 것에 깃들어 있고 지극히 어려운 것은 지극히 쉬운 것에서 나오니, 뜻이 있으면 오히려 멀고 마음이 없으면 절로 가깝다.

 

36

물은 흘러도 소리가 나지 않으니 시끄러운 곳에서 고요함을 보는 취미를 얻을 수 있고, 산이 높아도 구름이 거리끼지 않으니 유에서 나와 무로 들어가는 숨은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37

산림은 아름다운 곳이나 한번 시설하여 집착하면(시설을 해놓고 모여들면) 곧 시장판이 되며, 글과 그림은 고상한 것이나 한번 탐하여 빠지면 곧 장사치가 된다.  대개 마음이 물들지 않으면 속세도 선경이요 마음에 집착이 있으면 선경도 고해가 되느니라.

 

38

시끄럽고 혼잡한 때에는 평소에 기억하던 것도 멍하니 모두 잊어버리고 맑고 편안한 경지에 있으면 옛날에 잊어버렸던 것도 뚜렷이 나타난다.  고요함과 시끄러움이 조금만 나뉘어져도 어둠과 밝음이 뚜렷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39

갈대꽃 이불을 덮고 눈 위에 누워 구름 속에 잠들면 방안의 밤 기운을 다 가득 보전할 수 있고, 술잔을 손에 들고 바람을 읊조리며 달을 희롱하면 만장의 홍진을 벗어날 수 있다.

 

40

높은 벼슬아치 속에 명아주 지팡이를 짚은 한 은자가 섞여 있으면 문득 고상한 풍취가 더해지며, 어부와 나무꾼이 다니는 길에 비단옷을 입은 고관이 섞여 있으면 오히려 속된 기운이 더해진다.  짙은 것은 담백한 것만 못하고 속된 것은 고상한 것만 못한 줄 알리로다.

 

41

세속을 벗어나는 길은 세상살이 속에 있으니, 반드시 인연을 끊고 세상을 도피해서 살 필요는 없다.  마음을 깨닫는 공부는 마음을 다하는 속에 있으니, 반드시 욕심을 끊어 마음을 식은 재처럼 만들 필요는 없다.

 

42

이 몸을 언제나 한가한 곳에 놓아 두면 영욕과 득실이 어찌 나를 그릇되게 할 수 있겠는가!  이 마음을 언제나 고요한 가운데 편안히 있게 하면 시비와 이해가 어찌 나를 어둡게 할 수 있겠는가!

 

43

대나무 울타리 아래에서 홀연히 개 짖고 닭 우는 소리를 들으니 구름 속 세계인 양 황홀하고, 서재에서 매미 우는 소리와 까마귀 우짖는 소리를 들으니 고요 속의 천지임을 알겠노라.

 

44

내가 영화를 바라지 않는데 어찌 이록(利祿)의 향기로운 미끼를 걱정하며, 내가 승진을 다투지 않는데 어찌 벼슬살이의 위기를 두려워하랴?

 

45

산과 숲, 샘과 바위 사이를 거니노라면 더러운 마음이 점차 사라지고, 시서와 그림 속에 노닐면 속된 마음이 저절로 사라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비록 진기한 물건을 너무 아끼다가 본심을 잃는 법이 없다 하더라도, 또한 항상 이런 풍아한 경지를 빌어 마음을 바로잡아야 한다.

 

46

봄날은 기상이 변화하여 사람의 마음을 나른하게 하니, 이는 가을날의 흰 구름, 맑은 바람 속에 난초가 아름답고 계수나무가 향기로우며, 물과 하늘이 한 빛이 되고 천지가 맑고 밝아 사람의 몸과 마음을 맑게 함만 같지 못하다.

 

47

글자 한 자를 모를지라도 시의 마음을 지닌 사람은 시의 참된 맛을 이해하며, 게송 한 구절을 익히지 않았을지라도 선(禪)의 묘미를 아는 사람은 선교(禪敎)의 오묘한 뜻을 깨닫는다.

 

48

마음이 흔들리면 활 그림자도 뱀이라 의심되고 누워 있는 바위도 엎드린 호랑이로 보이니, 이 가운데 있는 것은 온통 살기뿐이라.  그러나 마음이 가라앉으면 사나운 석호도 갈매기가 되고 개구리 소리도 음악처럼 들리나니, 이르는 곳에서마다 참된 기미를 보리라.

 

49

몸은 매어 있지 않은 배와 같으니 흘러 가든 멈추든 그저 내어 맡기라.  마음은 마른 나무와 같으니 칼로 자르든 향을 칠하여 그릇을 만들든 무슨 상관을 하리요.

 

50

인정은 꾀꼬리 울음 소리를 들으면 기뻐하고 개구리 울음 소리를 들으면 싫어하며, 꽃을 보면 가꾸려 하고 풀을 보면 뽑아 버리려 하나니, 이는 형체와 기질에 의해 마음이 움직여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천성으로써 그것들을 본다면 어느 것이 천리의 기미를 울리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 자라나는 뜻을 펴는 것이 아니겠는가!

 

51

머리칼이 빠지고 이빨이 성기어지는 것은 허무한 육체의 쇠퇴에 따름이며, 새가 노래하고 꽃이 웃는 것은 자연의 참된 본체를 깨닫고 있음이니라.

 

52

마음속에 욕심이 가득 차 있으면 차가운 연못에서도 물결이 끓어오르듯 하여 산림 속에서도 고요를 찾아볼 수 없고, 마음이 텅 비어 있으면 무더위 속에서도 서늘하여 조정이나 시장에서도 시끄러운 줄 모른다.

 

53

많이 가진 사람은 많이 잃게 되나니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걱정 없음만 못하며, 높은 데를 걸어가는 사람은 빨리 넘어지니 귀한 사람은 천한 사람의 항상 편안함만 못하다.

 

54

새벽 창가에서 주역을 읽다가 솔숲 이슬로 붉은 먹을 갈고, 한낮 책상에서 불경을 논하다가 대숲 바람에 보경 소리를 실어 보내는도다.

 

55

꽃이 화분 속에 있으면 마침내 생기가 없어지고 새가 새장속에 들어가 있으면 곧 자연스러운 맛이 없어지나니, 이는 산 속의 꽃과 새가 한데 어울려 무늬를 이루며 마음껏 날아다니고 스스로 한가히 즐거워함만 못하다.

 

56

세상 사람들이 '나'란 글자를 너무 참된 것으로 알기 때문에 여러 가지 기호(嗜好)와 번뇌가 생겨난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내가 있는 것도 알지 못하면서 어찌 물건이 귀한 것을알리요?"  하였고, 또 이르기를 "이 몸이 나 아닌 줄을 안다면 어찌 번뇌가 다시 침범하리요?"  하였으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57

늙은이의 눈으로 젊음을 바라보면 바삐 돌아가고 서로 다투는 마음을 없앨 수 있고, 쇠퇴한 처지에서 영화를 바라보면 사치하고 화려해지고자 하는 생각을 끊을 수 있다.

 

58

인정과 세태는 잠깐 사이에 갖가지로 변하게 마련이니 너무 참된 것으로 여기지 말라.  요부는 말하기를 "어제의 내 것이 오늘은 그의 것이 되었으니, 오늘의 내 것이 내일은 뉘 것이 될지 어찌 알 수 있겠는가"  했다.  사람이 항상 이같이 생각하면 가슴 속에 얽매인 것을 풀 수 있을 것이다.

 

59

번잡하고 바쁠지라도 냉정한 눈으로 보면 문득 많은 괴로운 생각을 덜게 되고,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지라도 정열을 지니고 있으면 문득 많은 참된 취미를 얻게 된다.

 

60

한쪽에 즐거움이 있으면 다른 쪽에 괴로움이 있어 서로 대립되며, 한쪽에 좋은 광경이 있으면 다른 쪽에 나쁜 광경이 있어 서로 상쇄되는 법이다.  다만 늘 먹는 밥과 벼슬 없는 생활이야말로 참으로 안락한 보금자리가 된다.

 

61

발을 걷어 올리고 창문을 열라.  푸른 산과 맑은 물이 구름과 안개를 삼키고 토하는 것을 보면 천지가 자유자재함을 알 수 있다.  또 대나무가 우거진 숲에서 제비가 새끼를 치고 비둘이가 울어 세월을 보내고 맞는 데 따라 몸을 맡기면 자연과 나를 송두리째 잊게 된다.

 

62

이루어진 것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것을 알면 이루려고 하는 마음이 지나치게 견고하지는 않을 것이고, 삶이 반드시 죽는 것임을 알면 삶을 보전하는 일에 지나치게 힘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63

옛날 고승이 말하기를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되 먼지가 일지 않고, 달빛이 연못을 뚫되 물에는 흔적이 없다"고 하였다.  또 우리 유교에서는 이르기를 "흐르는 물이 빨라도 주위가 고요하고, 꽃이 떨어지는 일이 잦아도 마음은 절로 한가하다"고 하였다.  사람이 언제나 이런 뜻을 가지고 사물을 대하면 몸과 마음이 얼마나 자유로우랴!

 

64

숲 사이의 솔바람 소리와 돌 위의 샘물 소리도 고요한 가운데 들어 보면 모두 천지 자연의 음악임을 알게 되고, 숲속에 피어나는 안개와 물속에 비친 구름도 한가한 가운데 바라보면 모두 천지 최고의 문장임을 알게 된다.

 

65

멸망한 서진(西晋)의 황페함을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오히려 칼날을 자랑하며, 몸은 북망산의 여우와 토끼에게 맡겨질 것이로되 오히려 황금을 아끼는도다.  옛말에 이르기를 "사나운 짐승에게는 항복받기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항복시키기 어렵고, 골짜기는 채우기 쉬워도 사람의 마음은 채우기 어렵다"고 했으니, 과연 옳은 말이다.

 

66

마음에 풍파가 없으면 이르는 곳마다 푸른 산, 맑은 물이요, 천성 가운데 만물을 자라게 하는 기운이 있으면 닿는 곳마다 물고기가 뛰놀고 솔개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리라.

 

67

높은 관을 쓰고 큼직한 띠를 두른 선비도 한번 가벼운 도롱이에 작은 삿갓 차림으로 유유히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부러운 나머지 탄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요, 크고 넓직한 자리에 앉은 부호도 한번 성긴 발을 치고 깨끗한 책상을 마주한 채 한가롭고 조용하게 지내는 사람을 만나면 그리운 생각이 더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어찌하여 화우(火牛)로 쳐들어가고 풍마(風馬)로 꾀일 줄만 알고 자기 본성에 유유자적할 줄 모르는가?

 

68

고기는 물을 얻어 헤엄을 치되 물이 있음을 잊고 있으며, 새는 바람을 타고 날아가지만 바람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  이런 사실을 깨달으면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하늘의 오묘한 작용도 즐길 수 있다.(사람도 이와 같이 번거로운 속세에 살면서도 이를 잊고 유유자작하면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천지의 오묘한 작용도 즐기면서 살 수 있다.)

 

69

여우가 허물어진 섬돌에서 잠들고 토끼가 황폐한 고대(高臺) 위를 달리니 이곳은 지난날 노래하고 춤추던 곳이요, 국화에 싸늘한 이슬이 맺히고 마른 풀에 안개가 서려 있으니 여기는 옛날 전쟁하던 곳이라.  성하고 쇠하는 것이 어찌 늘 같으며, 강하고 약함이 어디에 있는가?  이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꺼진 재처럼 식어지는도다.

 

70

영욕에 놀라지 아니하니 한가로이 뚤 앞의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바라보며, 가고 머무름에 뜻이 없으니 무심히 하늘 밖 구름이 뭉치고 흩어지는 것을 바라본다.  하늘이 맑고 달이 밝으니 날지 못할 곳이 어디랴마는 부나비는 유독 밤 촛불에 몸을 던지고, 샘물은 맑고 풀은 푸르니 먹지 못할 것이 무엇이랴마는 올빼미는 굳이 썩은 쥐를 즐겨 먹는다.  아, 세상에 부나비와 올빼미가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71

뗏목에 올라 곧 뗏목을 버릴 생각을 한다면 그는 진리를 깨달아 번뇌에서 벗어난 도인이나, 만일 나귀를 타고 또다시 나귀를 찾는다면 끝내 깨닫지 못한 선사에 그치고 말 것이다.

(뗏목을 타는 것은 강을 건너 저쪽 육지로 올라가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므로 강을 다 건넜으면 뗏목이 소용없으니 곧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진리를 깨달은 중은 경전 따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경전에만 집착하면 영영 도를 깨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진리는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것인데 공연히 마음 바깥에서 구한다면 이것은 이미 나귀를 타고 있으면서 또다시 나귀를 찾는 격이니 영원히 도를 깨닫지 못하고 이름만의 중으로 남을 것이다.)

 

72

권력과 부귀를 가진 자들은 용처럼 다투고 영웅들은 호랑이처럼 싸우나니, 냉정한 눈으로 이를 바라보면 마치 개미떼가 비린내에 모여들고 파리떼가 다투어 피를 빨아먹는 것과 같다.  시비가 벌떼처럼 일어나고 득실이 고슴도치 털처럼 일어나도, 냉정한 마음으로 이를 대하면 마치 풀무가 쇠를 녹이고 끓는 물이 눈을 녹이는 것과 같다.

 

73

물욕에 얽매이면 우리 인생의 비애를 깨닫게 되고 천성을 따라 유유자적하면 인생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니, 인생의 비애를 알면 곧 속세의 욕심이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인생의 즐거움을 알면 곧 성인의 경지가 스스로 이를 것이다.

 

74

마음속에 조그마한 물욕도 없다면 이미 화로불에 눈이 녹고 햇볕에 얼음이 녹은 것과 같음이니라.  눈앞에 스스로 한 조각의 밝은 마음이 있게 한다면, 때로 달이 푸른 하늘에 걸려 있고 그 그림자가 물결에 있음을 보게 되리라.

 

75

시상은 패릉교 위에 있으니 나직이 읊조리매 숲과 골짜기가 문득 탁 트여 오고, 맑은 흥취는 경호 물가에 있으니 홀로 거닐매 산과 물이 절로 서로를 비추는도다.

(시흥은 패릉교와 같은 자연 풍경 속에서 일어난다.  나직한 소리로 시를 읊조리면 주위의 숲과 골짜기가 호연한 기상으로 화답해 온다.  또 속세를 벗어난 맑은 흥취는, 당나라 시인 하지장이 현종에게서 받은 <경호곡>처럼 맑은 물가에서 얻어진다.  이런 곳을 홀로 거닐면 산과 냇물이 서로를 비추어 아름다운 경치를 이루니 흥취가 절로 난다.)

 

77

나무는 뿌리만 남은 뒤라야 꽃 핀 가지와 무성한 잎새가 모두 헛된 영화임을 알게 되고, 사람은 죽어서 관뚜껑을 덮은 뒤라야 자손과 재물이 쓸데[없음을 깨닫게 된다.

 

78

진공(眞空)은 공(空)이 아니요, 형상에 집착함도 참이 아니요, 형상을 깨버림도 참이 아니다.  묻노니, 석가 세존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세상에 몸담고 있으면서 세상을 벗아나라.  욕심을 따르는 것이 곧 괴로움이요 욕심을 끊는 것도 또한 괴로움이니, 우리들 스스로가 심신을 잘 수양하도록 하자"  하셨다.

 

79

의로운 선비는 천승(병차 천 대를 동원할 수 있는 나라)의 제후국도 사양하고 탐욕스러운 이는 한푼을 가지고도 다투니 그 인품이 하늘과 땅만큼 차이지나, 명예를 좋아함은 또한 이익을 좋아함과 다를 것이 없다.  천자는 나라를 다스리고 거지는 음식을 구걸하니 그 지위가 하늘과 땅만큼 차이지나, 애타는 마음이 애타는 음식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80

세상맛을 속속들이 알고 나면 비가 되든 구름이 되든 세상 인심에 모두 맡겨 버리니 눈뜨기조차 귀찮아지고, 인정을 모두 깨닫고 나면 소라 하든 말이라 하든 부르는 대로 따르며 그저 머리를 끄덕이게 된다.

 

81

지금 사람들은 오로지 생각을 없애려 애쓰나 끝내 없애지 못하나니, 다만 지난 생각을 마음에 두지 말고 앞으로의 생각도 받아들이지 말며 오직 현재에 관한 일만을 처리해 나가면 자연히 점차 무념의 경지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82

뜻에 우연히 맞으면 곧 아름다운 경지가 이루어지고 천연에서 나온 물건이라야 비로소 참된 기틀을 보게 되니 만약 조금이라도 배치를 고쳐 놓으면 그 맛이 곧 줄어든다.  백낙천이 말하기를 "뜻은 일 없을 때 즐겁고 바람은 절로 불어올 때 맑다"  했으니, 참으로 의미있도다, 그 말이!

 

83

본성이 맑으면 배고플 때 밥 먹고 목마를 때 물 마시며 살아도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할 것이 없고, 마음이 어지러우면 비록 선(禪)을 말하고 게(偈)를 읊을지라도 모두 정신을 희롱하는 것일 뿐이다.

 

84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의 참된 깨달음의 경지가 있어, 거문고와 피리가 아니더라도 절로 편안하고 즐거워지며 향과 차가 아니더라도 절로 맑고 향기로와진다.  모름지기 생각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비우며 잡념을 잊고 형체조차 잊어야, 비로소 그 가운데서 노닐 수 있다.

 

85

금은 광석에서 나오고 옥은 돌에서 생기니, 현상계(現象界)가 아니면 실상도 구할 수 없다.  술자이에서 도를 깨닫고 꽃 속에서 신선을 만나는 것도 아취는 있으나 속됨을 벗어날 수는 없다.

 

86

천지 중의 만물과 인륜 중의 모든 감정과 세계 가운데 모든 일은 속된 눈으로 보면 각각 다르지만 깨달은 눈으로 보면 모두가 한결같으니, 어찌 번거롭게 분별하며 어찌 취하고 버릴 것이 있겠는가.

 

87

정신력이 왕성하면 좁은 방에서 베 이불을 덮고도 천지의 생기를 호흡하며, 입맛이 있으면 명아주 국에 밥을 먹고도 인생의 담백한 참 맛을 깨닫는다.

 

88

얽매임과 벗어남은 오직 스스로의 마음에 달려 있으니, 마음으로 깨달으면 푸줏간과 술집도 그대로 극락 세계요, 그렇지 못하면 설사 거문고와 학을 벗삼고 꽃과 풀을 가꾸며 그 즐거움이 깨끗할 지라도 악마의 방해가 끝내 있을 것이다.  옛말에 이르기를 "능히 쉴 수 있으면 속세도 선경이 되고 깨달음이 없으면 절간도 속세라"  했으니, 참으로 옳은 말이다.

 

89

좁은 방 속에서도 모든 걱정을 다 버리면 어찌 단청한 기둥에 구름이 날고 구슬 발 걷고 비 구경하는 생활을 이야기 하겠는가.  석 잔 술 뒤에 모든 진리를 절로 깨달으면 오직 달 아래 허름한 거문고를 비껴 타고 바람에 피리 불 줄만을 알 뿐이다.

 

90

모든 소리가 고요해진 가운데 홀연 한 마리 새의 지저귐이 들리니 문득 온갖 그윽한 흥취가 일어나고, 온갖 초목이 시들어 버린 후에 홀연 한 포기 꽃이 피는 것을 보니 문득 무한한 생기가 꿈틀거린다.  본성은 메마르지 않으며 정신은 사물에 부딪혀 나타남을 알 수 있다.

 

91

백낙천은 말하기를 "몸과 마음을 방임하여 자연의 조화에 맡기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했고, 조보지는 말하기를 "몸과  마음을 단속하여 정적(靜寂)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했다.  방임하면 넘쳐서 미치광이가 되고 단속하면 메말라 생기가 없어지니, 오직 몸과 마음을 잘 가누는 자만이 그 자루를 손에 쥐고 방임하고 단속하기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92

눈 내린 밤 달 밝은 하늘을 보면 마음이 문득 맑아지고, 봄바람의 온화한 기운을 만나면 마음이 또한 절로 부드러워지니, 자연늬 섭리와 사람의 마음은 한데 어울려 한 치의 틈이 없도다.

 

93

글이 서투르면 진보하고 도가 서투르면 이루나니, '졸(拙)'자 한 자에 무한한 뜻이 깃들어 있다.  "복숭아꽃 핀 마을에서 개가 짖고 뽕나무밭에서 닭이 우노라"  하면 얼마나 순박한가.  그러나 "차가운 연못에 달이 비치고 고목에서 까마귀가 우노라"  하는 데에 이르면 기교는 있어도 그 속에서 문득 활기 없고 쓸쓸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94

나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사물을 움직이는 자는 얻었다 해서 진정 기뻐하지 않고 잃었다 해도 걱정하지 않으니, 대지가 모두 그의 소요하는 곳이다.  사물로 하여금 나를 부리게 하는 자는 역경을 진정으로 싫어하고 순경은 아끼니, 털끝만한 일에도 곧 얽매이고 만다.

 

95

본체가 비어 쓸쓸하면 사물도 비어 쓸쓸한 법이니, 사물을 버리고 본체만 잡으려 함은 마치 그림자는 버리고 형체만 머물게 하려 함과 같다.  마음이 비면 경계도 비는 법이니, 경계를 버리고 마음만 지니려 함은 마치 비린 것을 모아 놓고 모기를 쫓으려 함과 같다.

 

96

세속을 벗어나 한가히 지내는 사람의 맑은 흥취는 모두 스스로 유유자적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술은 권하지 않는 것으로 기쁨을 삼고 바둑은 다투지 않는 것으로 승리를 삼으며, 피리는 구멍이 없는 것이 적당하다 여기고 거문고는 줄이 없는 것이고상하다 여기며, 만남은 기약이 없어야 참되다 생각하고 손님은 마중하고 배웅하지 않아야 편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만일 한번 겉치레에 이끌리고 형식에 얽매인다면 곧 세속의 고해에 떨어질 것이다.

 

97

시험삼아 자기가 태어나기 전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지 생각해 보고 또 죽은 뒤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 보라.  그러면 모든 생각이 재처럼 싸늘하게 식고 본성만이 고요히 남게 될 것이니, 스스로 만물 밖으로 초월하여 상선(象先:천지만물이 생기기 전의 상태)에서 노닐 수 있을 것이다.

 

98

병든 후에야 건강이 보배임을 생각하고 전란을 당한 뒤에야 평화가 복임을 생각하는 것은 바른 지혜가 아니다.  행복을 바라는 것이 재앙의 근본이 됨을 미리 알고 삶을 탐내는 것이 죽음의 원인이 됨을 미리 안다면 이것은 뛰어난 식견이다.

 

99

배우는 분을 바르고 연지를 찍어 아름다움과 추함을 붓끝으로 그려 내지만, 이윽고 노래가 끝나고 막이 내리고 나면 아름답고 추한 것이 어디 있는가!  바둑을 두는 사람은 앞뒤를 재며 바둑돌로 승패를 겨루지만, 이윽고 판이 끝나 돌을 거두면 이기고 지는 것이 어디 있는가!

 

100

바람과 꽃의 산뜻함과 눈과 달의 맑음은 오직 고요한 자가 그 주인이 되며, 물과 나무의 무성하고 메마름과 대나무와 돌의 소멸하고 성장함은 다만 한가한 자가 그 권한을 잡는다.

 

101

시골 사람들은 닭고기와 막걸리 이야기를 하면 홀연히 기뻐하나 맛있는 고급 요리에 대해 물어 보면 알지 못하며, 무명 두루마기에 베잠방이이야기를 하면 좋아하나 벼슬아치의 예복에 대해 물어 보면 알지 못한다.  그 천성이 온전하기 때문에 그 욕망이 담백한 것이니, 이것이 인생에서 제일 가는 경지이다.

 

102

마음에 망녕된 생각이 없으면 구태여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석가가 말한 '관심(觀心)'은 그 장애를 더할 뿐이다.  도한 만물은 본래 한 물건이니 어찌 구태여 가지런하기를 기다릴 수 있겠는가!  장자가 말하는 '제물(濟物)'은 동일한 것을스스로 갈라 놓는 것일 뿐이다.

 

103

피리 소리와 노랫 소리가 한창 무르익어 가는데 문득 옷깃을 털고 훌쩍 떠남은, 마치 도에 통달한 사람이 벼랑에서 손을 놓고 걸어가는 것과 같아 부럽다.  시간이 이미 다 지났는데도 쉬지 않고 밤길을 쏘다님은 마치 속된 선비가 몸을 고해에 담그는 것과 같아 우습다.

 

104

마음이 잡히지 않거든 시끄러운 속세로의 발길을 끊어, 마음으로 하여금 탐낼 만한 것을 보지 못하게 하여 흩어지지 않게 함으로써 자기의 고요한 본심을 맑게 하라.  마음을 이미 굳게 잡았거든 다시 속세로 뛰어들어, 마음으로 하여금 탐나는 것을 보아도 흩어지지 않게 함으로써 자기의 워난한 마음의 기틀을 기르도록 라.

 

105

고요를 좋아하고 시끄러움을 싫어하는 사람은 흔히 남들과의 접촉을 피하여 고요를 찾으려 하나, 이는 사람과 접촉하지 않는 데에 뜻을 둠이 곧 자기에게 사로잡히는 것이며 마음이 고요에 집착함이 곧 동요의 근본임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야 어찌 남과 나를 하나로 보고 움직임과 고요를 함께 잊어버리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106

산속에 살면 가슴이 맑고 시원하여 대하는 것마다 모두 아름다와 보인다.  외로운 구름과 한가한 학을 보면 속세를 벗어난 생각이 들고, 돌 많은 골짜기에서 흐르는 샘물을 보면 마음의 때를 벗고 싶은 생각이 들며, 늙은 전나무와 싸늘한 매화를 어루만지면 굳은 절개를 갖게 되고, 물가에서 갈매기와 사슴들을 벗삼으면 번거로운 마음을 잊게 된다.  그러나 만일 한번 속세로 뛰어들면 외부의 사물과 상관하지 않더라도 이 몸은 부질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107

흥이 때를 따라 일어나면 향기로운 풀밭을 맨발로 한가히 걸어간다.  들새들도 경계하는 마음을 풀고 때때로 친구가 되어 준다.  경치가 마음에 들면 낙화 아래 옷깃을 헤치고 우두커니 앉는다.  흰 구름도 말없이 한가로이 와 머문다.

 

108

인생 화복의 경계는 모두가 마음이 이루는 것이다.  석가는 이르기를 "욕심이 타오르면 그것이 곧 불구덩이요, 탐욕에 빠지면 곧 고해가 되는니라.  생각이 깨끗하면 사나운 불길도 연못이 되고, 마음이 크게 깨달으면 배가 피안(彼岸)에 오르느니라"  하였다.  생각이 조금만 달라져도 그 경계에 이처럼 큰 차이가 있으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109

새끼줄 톱이 나무를 자르고 물방울이 돌을 뚫듯, 도를 배우는 사람은 모름지기 힘써 구해야 한다.  물이 모이면 내를 이루고 참외가 익으면 꼭지가 떨어지듯, 도를 얻으려는 사람은 한결같이 모든 것을 하늘에 맡겨야 한다.

 

110

마음을 잠재우면 문득 달이 떠오르고 바람이 불어오니 세상을 반드시 고해라고만 할 수 없고, 마음을 멀리한 곳에서는 수레의 먼지와 말굽 소리가 절로 없어지니 어찌 산수에 미쳐 병들 수가 있으리요.

 

111

초목이 시들어 떨어지면 곧바로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며, 계절이 비록 추위에 얼어 붙어 있다 해도 동지가 되면 마침내 봄 기운이 솟아난다.  살기 중에서도 소생의 뜻이 항상 주인이 되어 있으니, 이로써 천지의 마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12

비가 갠 후에 산빛을 바라보면 경치가 문득 새롭고 아름다우며, 고요한 밤에 종소리를 들으면 그 울림이 한결 맑고 드높다.

 

113

높은 데 오르면 마음이 넓어지고, 흐르는 물가에 가면 뜻이 원대해지며, 눈비가 내리는 밤에 책을 읽으면 정신이 맑아지고, 언덕 위에 올라 휘파람을 불면 흥취가 고매해진다.

 

114

마음이 넓으면 만종의 녹도 질항아리와 같고, 마음이 좁으면 머리털 한 오라기도 수레바퀴와 같다.

(마음이 넓은 사람에게는 고관대작의 벼슬자리나 백만금의 재물도 깨어진 질그릇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마음이 좁은 사람에게는 머리카락 하나도 수레바퀴처럼 크게 보여 명리를 좇게 마련이다.)

 

115

바람과 달, 꽃과 버들이 없으면 천지의 조화가 일어지지 못하고, 정욕과 기호가 없으면 마음 바탕도 이루어지지 못한다.  다만 내 의지로써 사물을 부리고 사물이나를 부리지 못하게 한다면, 기호와 정욕도 하늘의 작용 아닌 것이 없고 세속적인 마음도 천리(天理)의 경지가 된다.

 

116

일신에 대해 일신을 깨달은 이는 바야흐로 능히 만물을 만물에게 맡기며, 천하를 천하에 돌려 주는 이는 바야흐로 능히 세속에서 세속을 벗어날 수 있다.

 

117

사람은 너무 한가하면 딴생각이 슬그머니 생겨나고, 너무 분주하면 본성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몸과 마음에 근심을 지니지 않을 수 없고, 또 청풍명월의 취미를 즐거워하지 않을 수도 없다.

(사람은 너무 한가하면 잡념과 망상이 생기게 마련이고, 너무 분주하면 일에 묻혀서 자기의 본심마저 돌아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한가한 때 몸과 마음을 채찍질하면서 곁길로 접어들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며, 동시에 아무리 분주해도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여유를 지녀야 한다.)

 

118

사람의 마음은 흔히 움직임에서 본성을 잃게 된다.  만일 아무 생각도 일으키지 않고 맑고 조용하게 앉아 있으면, 구름이 일어나면 한가로이 함께 가고 빗방울이떨어지면 냉연히 함께 맑아지며 새가 지저귀면 흐뭇하게 느끼고 꽃이 지면 환하게 스스로 깨닫게 되리니, 어느 곳인들 참된 경지가 아니며 어느 것인들 참된 활동이 아니겠는가.

 

119

자식을 낳을 때에는 어머니가 위태롭고 돈보따리가 쌓이면 도둑이 엿보니, 어느 기쁨인들 근심이 아니랴.  가난은 씀씀이를 절약할 수 있게 하고 병은 몸을 보전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니, 어느 근심인들 기쁨이 아니랴.  그러므로 도에 통달한 사람은 순경과 역경을 똑같이 보며 기쁨과 슬픔을 모두 잊어야 한다.

 

120

귀는 마치 회오리바람이 골짜기를 울리는 것과 같아서, 지나가 버린 뒤 남겨 두지 않으면 시비도 함께 없어진다.  마음은 마치 달빛이 연못에 비치는 것과 같아서, 텅 비우고 집착하지 않으면 물아를 모두 잊어버리게 된다.

 

121

세상 사람들은 영화와 명리에 집착하여 걸핏하면 '티끌 세상'이니 '고해'니 말하면서, 구름이 희고 산은 푸르며, 냇물이 흐르며 바위가 우뚝 서 있고, 꽃이 피고 새가 울며, 골짜기가 메아리치며 나무꾼이 노래하는 줄은 모르고 있다.  세상 역시 티끌이 아니요 바다 또한 괴로움이 아니거늘, 저들 스스로가 마음을 티끌과 괴로움으로 채우고 있을 뿐이다.

 

122

꽃은 반쯤 피었을 때 보고 술은 조금 거나할 정도로만 마시라.  이 가운데 무한히 아름다운 흥취가 있느니라.  만약 꽃이 활짝 피고 술에 흠뻑 취하는 데 이르면 곧 악경(惡境)을 이루나니, 충족된 상태에 있는 사람은 마땅히 이를 생각해야 하느니라.

(꽃은 반쯤 피었을 때가 아름답고 술은 조금 거나할 정도로만 취하는 것이 좋다.  활짝 핀 꽃은 곧 시들어 버리고,ㅏ 술에 곤드레가 되면 추태를 부리기 쉽다.  세상일도 이와 같아서 가득 차면 기울게 마련이다.  부귀영화를 한껏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이 잉치에 유의해야 한다.)

 

123

산나물은 사람이 가꾸지 않아도 절로 자라고, 들새는 사람이 기르지 않아도 절로 크나, 그 맛이 모두 향기롭고 또한 산뜻하다.  우리도 능히 세상의 법도에 물들지 않는다면 그 품위가 뛰어남이 각별하지 않겠는가.

 

124

꽃을 가꾸고 대나무를 심고 학을 완상(玩賞: 즐겨 구경함)하며 물고기를 바라보되 또한 그 속에서 일단의 스스로 깨닫는 바가 있어야 한다.  만일 그 광경에만 끌려 겉모습의 아름다움만 즐긴다면, 이는 또한 우리 유학에서 말하는 '구이지학(口耳之學 :귀로 들어와 입으로 나가는 학문, 실천적 학문이 못됨을 말함)'이요, 불교에서 말하는 '완공(頑空:만물을 일체 공이라고만 보는 소승불교의 그릇된 생각)'일 뿐이니, 어찌 아름다운 취미라고 할 수 있겠는가.

 

125

산림에 사는 선비는 청빈하여 초탈한 취미가 절로 풍족하고 농사짓는 사람은 거칠고 꾸밈이 없으나 천진스러움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만일 한번 몸을 시정 거간꾼으로 전락시킨다면, 이는 구렁텅이에 빠져 죽더라도 몸과 마음이 깨끗한 것만 못하다.

 

126

분수에 넘치는 복과 까닭없이 생긴 이득은 조물주의낚시 미끼가 아니면 인간 세상의 함정이니, 이러한 때에 눈을 들어 높은 곳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그 꾀임 속에 떨어지지 않는 자가 드물 것이다.

 

127

인생은 본래 하나의 꼭둑각시 놀음이니 오직 그 근본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한 가닥의 실도 헝클어지지 않아 감고 푸는 것이 자유롭고 움직이고 멈춤이 나한테 있어 털끝만큼도 남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 곧 이 꼭둑각시 놀음 무대를 벗어날 수 있다.

 

128

한 가지 이로운 일이 일어나면 곧 한 가지 해로운 일이 생기니, 그러므로 천하는 항상 일 없음을 복으로 삼는다.  옛사람의 시를 읽으니 이르기를 "그대에게 권하노니, 제후에 봉해지는 일에 대해 말하지 말라.  한 장수가 공을 세우려면 만 사람의 뼈가 마른다'  했고, 또 이르기를 "천하가 항상 무사태평하다면 칼이 갑 속에서 천년을 썩어도 아깝지 않다"  하였다.  비록 영웅심과용맹한 기개가 있을지라도 모르는 사이에 얼음 목듯 사라질 것이다.

 

129

음탕한 여인이 극에 이르러 여승이 되고 일에 열중하던 사람이 격하여 중이 되기도 한다.  청정한 불문(佛門)이 항상 음탕과 사악의 소굴이 됨이 이와 같다.

 

130

물결이 하늘로 치솟으매 배 안에 있는 사람으 두려운 줄을 모르나 배 밖에 있는 사람은 마음이 서늘해진다.  미치광이가 미쳐 날뛰며 욕을 해도 한자리에 있는 사람은 경계할 줄을 모르나 자리 밖에 있는 사람은 혀를 찬다.  그러므로 군자는 몸은 비록 일 가운데 있을지라도 마음은 일 밖으로 벗어나 있어야 한다.

 

131

인생에서는 일푼을 줄이면 곧 일푼을 벗어나게 된다.  사귐을 줄이면 곧 시끄러움을 면할 것이고, 말을 줄이면 곧 허물이 적어지며, 생각을 줄이면 곧 정신이 소모되지 않고, 총명을 줄이면 곧 본성을 온전히 할 수 있다.  저 날로 줄이기를 구하지 않고 날로 더하기를 구하는 자는 참으로 자기 인생을 속박하는 것이다.

 

132

천지 운행에 따르는 추위와 더위는 피하기 쉬워도 인간 세상의 따뜻함과 냉혹함은 제거하기 어렵고, 인간 세상의 따뜻함과 냉혹함은 제거하기 쉬워도 자기 마음 속의 얼음과 숯불은 버리기 어렵다  이 마음 속의 얼음과 숯불을 버리기만 한다면 마음이 온통 화기(和氣)로 가득 차 이르는 곳마다 봄바람이 불 것이다.

 

133

차를 아주 좋은 것으로만 구하지 않으니 차 주전자가 항상 마르지 않고, 술도 극히 맛 좋은 것만을 구하지 않으니 술단지 또한 비지 않으며, 소박한 거문고는 줄이 없어도 항상 고르고, 짧은 피리는 구멍이 없어도 절로 즐겁다.  비록 복희씨를 뛰어 넘기는 어려울지라도 죽림칠현에는 필적할 수 있으리라.

 

134

불교에서 말하는 '수연(隨緣):인연에 맡김"과 유교에서 말하는 '소위(素位):본분을 지킴'의 이 네 글자가 곧 바다를 건너는 부낭이다.  대체로 세상 길은 아득히 먼 고로, 한 생각으로 온전하기만을 바란다면 만 갈래 생각의 실마리가 어지러이 일어날 것이다.  처지에 따라 편안히 살면 이르는 곳마다 얻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채근담 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