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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대는 모래로 밥을 지으려 하는가? : 보조국사 지눌

유앤미나 2012. 7. 28. 09:49
그대는 모래로 밥을 지으려 하는가? : 보조국사 지눌 
송광사는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 1158-1210)이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보낸 곳이며 그 뒤로도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대표적인 승려들의 도량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국사 제도가 이어진다면 법정 또한 그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까? 다음 번 다시 송광사에 가면 절 경내 곳곳에서 지눌과 법정의 자취를 느끼게 될 것 같다.

법정과 지눌을 길러낸 송광사

얼마 전 법정스님이 입적하셨다. 당신이 지은 『무소유』처럼 다비식 끝난 뒤 사리를 찾지 말라고 했고 30여 년 전 봉은사로 신문 배달하던 사람을 찾아 머리맡에 있던 책 몇 권을 주라고 하셨다. 기왕이면 그럴 듯한 것을 주시지 손 때 묻은 책 몇 권을 주라니. 하지만 이상할 것 없다. 불교는 본래 세상 모든 집착을 버리라고 한다. 집착할 것 없는 세상에서 스님의 재산은 옷 두벌과 밥그릇, 수저뿐이다. 자신의 수제자에게 법통을 물려줄 때에도 줄 것이 옷 한 벌과 밥그릇뿐이니 그것을 가리켜 의발(衣鉢)을 물려준다고 한다. 그러니 책 몇 권 주는 일도 얼마나 큰 인연이겠는가.
스님의 다비식은 당신이 오래 머물렀던 송광사에서 열렸다. 나는 지금도 대학교 수학여행 길에 들렀던 송광사를 잊지 못한다. 과대표였던 내가 계획을 세운대로 우리 일행은 저녁 어스름 목포행 완행열차를 탔고 이른 새벽 순천 시장 통에서 국밥을 먹고는 시골 버스로 아침 일찍 송광사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면서 본 송광사는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아침 안개 속에 펼쳐져 있는 가운데 송광사가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송광사는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 1158-1210)이 생애의 마지막 10년을 보낸 곳이며 그 뒤로도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대표적인 승려들의 도량이다. 아마도 지금까지 국사 제도가 이어진다면 법정 또한 그 반열에 오르지 않았을까? 다음 번 다시 송광사에 가면 절 경내 곳곳에서 지눌과 법정의 자취를 느끼게 될 것 같다.

소치는 아이처럼 마음을 닦아라

지눌은 조계종의 기틀을 닦은 승려이자 한국 선종의 으뜸이다. 그래서 지눌의『진심직설(眞心直說)』은 한국 선종의 백미로 꼽힌다. 지눌은 본래 유학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부처님과 남다른 인연이었을까? 그의 부모는 온갖 병으로 시달리던 어린 지눌을 병만 낫게 해주시면 죽은 셈치고 부처님께 바치겠다고 빌었고, 신기할 정도로 병이 사라지자 약속대로 여덟 살에 출가시켰다. 그 뒤 25세 때 승려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탄탄한 출세를 보장받았지만 출세의 길을 버리고 자유로운 배움의 길로 들어섰다.
당시 고려는 무신들이 정권을 잡았고, 힘 있는 승려들은 정치세력과 야합하여 자기 휘하의 승려들을 정변에 동원하기도 하였다. 지눌 철학은 이러한 사회 혼란을 바로 잡겠다는 데서 출발하였다. 지눌이 깨달음을 한 단계 높인 계기는 중국 선종을 이룩한 혜능의『6조단경』에서 ‘모든 것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지만 보고 들은 것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라는 말을 읽고서부터이다. 그 뒤 뜻 맞는 승려들과 참다운 수도를 위해 정혜사(定慧社)라는 단체를 만들고 소극적인 은둔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보살행의 실천자로 살았다. 그리고 42세 때부터 송광사에 머물다 10년 되던 해 목욕재계하고 절 안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설법을 한 다음, 제자들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한 뒤 앉은 채로 열반에 들었다.
지눌은 목우자(牧牛子)라는 호를 즐겨 썼고, 소치는 아이처럼 마음을 닦으라는 「목우자수심결(牧牛子修心訣)」을 지었다. 그 글에서 소는 마음을 뜻하고 아이는 자신을 가리킨다. 소는 처음에 온통 검은 색이었고, 검은 소는 욕심을 상징한다. 그런데 아이가 길들여 가면서 반은 검고 반은 흰 소가 되었다가 마침내 완전히 흰 소가 되는데, 흰 소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소를 길들일 때는 조급해서도 안 되지만 게을러서도 안 된다. 여유와 끈기를 가지고 해탈을 향해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거칠게 다루면 고삐를 끊고 달아나기도 하고, 만만하게 보였다간 걷어 채일 수도 있다. 소와 사람이 대립자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호흡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소치는 일이 완성될 것이다.
지눌이 택한 선종은 교종과 달리 경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해탈이 달이고 경전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한데도 멍청한 놈들이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종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경전에 얽매이지 말라고 하였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 마음으로 주고받는 가르침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본래 선종은 석가모니가 살아 계실 때 제자들과 함께 있다가 아무 말 없이 연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면서 빙그레 웃었는데 석가모니를 따라 빙그레 미소를 지었던 가섭존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가르침을 ‘염화시중의 미소’라고도 하고 ‘이심전심의 미소’라고도 한다. 가섭에서 시작된 이 깨달음의 방법이 달마대사를 통해 중국에 들어왔고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다.
선종과 관련된 일화는 많다. 나무로 깎아 만든 부처님을 한 겨울 도끼로 패서 장작을 만든 뒤, 놀라 야단법석인 사람들을 향해 ‘목불을 태워 사리나 얻어 보려 했다’고 한 단하스님의 행위는 상징을 우상화하는 대중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임제종에서는 진리가 어디 있느냐고 묻거나 진리를 어디서 구할 것인가를 물으면 질문한 사람에게 욕을 하고 호통을 쳐 댔으며, 덕산종에서는 몽둥이로 두들겨 팼다. 바로 그 고함과 몽둥이질이 내 밖에서 진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 자신에게로 눈을 돌리도록 하는 가르침이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선다

지눌 철학의 출발은 자신이 부처임을 깨닫는 일이었다. 그래서 지눌은 마음 밖에서 진리를 찾는 것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모래를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서 솥에 넣고 정성껏 불을 때도 절대로 밥이 될 수 없듯이 출발이 잘못되면 아무리 열심히 도를 닦아도 깨달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욕심 때문이다. 그런데 지눌은 욕심을 일으키는 그 마음이 바로 부처의 마음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욕심을 일으키는 것도 이 마음이고 깨닫는 것도 이 마음이므로 마음을 떠난 깨달음은 없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지눌은 땅에 엎어진 사람이 반드시 자기가 넘어져 있는 그 땅을 딛고 일어서야 하는 것처럼, 깨달음을 얻지 못하도록 끝없는 욕망을 만들어 내는 것도 마음이지만 바로 그 마음을 밝게 비추어 보는 데서부터 부처의 참 모습을 깨달을 수 있다고 하였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나 부처가 되겠다는 마음을 갖는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마음 자체가 욕심이다. 머리에 부처는 이런 존재라고 그려 놓고 자기가 규정한 그 부처가 되려고 애쓰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내 밖에 부처를 만들어 놓고 나와 부처를 대립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부처와 내가 하나가 될 수 없다. 지눌은 이런 생각을 가리켜 어둠을 움켜쥔 채 밝아지려 애쓰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렇게 깨달아 가는 과정의 첫 단계가 ‘돈오(頓悟)’이고 둘째 단계가 ‘점수( 漸修)’이다. ‘돈오’는 자기 마음이 부처임을 문득 깨닫는 것이며, ‘점수’는 끝없이 일어나는 욕망을 가라앉히는 과정이다. 지눌은 ‘점수’가 필요한 까닭으로 물과 얼음이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도 얼음이 바로 물이 되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여러분은 진짜 바다를 본 적이 있는가? 하얀 파도가 밀려오기도 하고 출렁대기도 하는 모습은 바다의 참 모습이 아니다. 물결이나 파도는 바람이나 인력이 일으키는 작용이며, 바람이나 인력은 바다 밖에 있는 요소이다. 만일 우리가 바람과 인력을 다 끊어 버린다면 바다의 참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종이 한 장 깔아 놓은 것처럼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상태가 될 것이다.

남을 위하는 일이 나를 위하는 일이다

깨달음의 경지인 열반적정(涅槃寂靜)에서 ‘적’은 소리 없음이고, ‘정’은 움직임 없음이다. 바로 열반의 상태가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경지라는 것이다. 이 경지는 앞서 말한 바다의 본 모습과 같다. 바다는 우리의 마음이며 바람이나 인력은 마음을 흔드는 바깥 사물의 유혹이다. 따라서 마음에 파도를 일으키는 외부 유혹을 끊어낸다면 적정의 상태인 열반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바람이나 인력을 끊어 버린다고 바다가 바로 제 모습이 되지는 않는다. 조금 전까지 출렁이던 관성 때문에 여전히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도 바깥 사물에 대한 집착 때문에 욕심으로 번뇌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참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더라도 관성처럼 욕심이 일기 때문에 ‘점수’가 필요하게 된다.
본래 ‘돈오’와 ‘점수’는 중국 선종의 수양법이었으며, 남종은 ‘돈오’를 북종은 ‘점수’를 주장하였다. 그런데 지눌은 남종과 북종을 하나로 합치고, 다시 그 위에 교종을 합쳤다. 지눌은 부처가 입으로 전한 가르침과 마음으로 전한 가르침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교종과 선종을 합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조계종이 바탕은 선종이면서도 경전을 중시여기는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지눌의 철학에서 온 것이고, 이러한 지눌의 철학은 원효의 합침의 철학에서 왔다.
지눌은 이 같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마음을 비우라고 한다. 마음을 비우면 참답게 사물을 볼 수 있는 지혜가 생기며, 이 지혜로 사물을 볼 때 좋고 나쁜 분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어느 해 부처님 오신 날 성철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를 발표한 적이 있다. 집착을 가지고 보면 저 산은 싫고 이 산이 좋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산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집착 없이 보면 이 산은 이 산일뿐이고 이 물은 이물일 뿐이다. 그래서 성철은 다음 해 법어로 ‘학교에서 공부하는 부처님들, 공장에서 일하는 부처님들, 교회에서 기도하는 부처님들’이라고 했던 것이니 부처의 눈에는 모두 부처인 셈이다.
마음을 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나를 버려야 한다. 이해관계에 얽매이면 사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지만 나 자신을 버리면 참다운 눈이 열린다. 그래서 지눌은 남을 위하는 일이 바로 자기를 위하는 일이라고 하였다. 불교에서는 그러한 눈을 혜안이라고 부른다. 역사를 보면 민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승려들이 무기를 들고 싸우기도 한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 승려들이 살생을 해도 되는가? 자신의 마음을 비웠을 때 정말 선한 존재와 악한 존재를 가릴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참다운 보살행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전통은 1980년대 민주화투쟁 중 스님들이 거리로 나선 일에 대한 설명으로도 이어진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돈점논쟁

1990년 송광사에서 100년에 한 번 열린다는 무차선대회가 있었다. 이 대회의 논쟁 주체는 지눌의 전통을 잇는 송광사와 지눌의 돈오점수에 문제를 제기한 성철 종정의 해인사였다. 사실 불교의 목표는 깨달음이며, 깨달음을 얻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와 깨달은 뒤에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 논쟁은 한국불교의 맥을 잇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당시 성철은 지눌의 돈오점수를 비판하면서 ‘몹쓸 나무가 뜰 안에 났으니 베어버리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성철은 지눌의 돈오점수가 계속된 수행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깨달음이 아니라는 입장에서 돈오돈수설을 제기했던 것이다. 깨달음을 향한 길은 체험의 길이며 정해진 길이 없다. 오히려 지눌 이전의 승려들이 정해진 길만을 집착하던 것에서 지눌이 새로운 길을 열었다면, 지눌의 이론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려했다는 점에서, 지눌 스스로 반길 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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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교빈 자세히보기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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