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준비된 말을/이해인
매우 어줍잖은 글이긴 하지만, 나는 어느 새 글을 쓰는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어 원고 청탁도 꽤 자주 받게되고, 그러다 보니 더러는 거절을 한다해도 늘상 글빚을 많이 지고 사는 셈이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든 아니든 간에 시나 산문 등을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키기가지는 참으로 남모르는 아픔과 인내, 아낌없는 정성과 노력이 요구된다.
나 역시 글을 쓸 때는 마음에 드는 적절한 표현을 찾기 위해 수없이 종이를 버리며 잠을 설틸 때도 많고, 옆사람이 눈치를 챌 만큼 끙끙 몸살을 앓곤 한다. 글을 쓰기 위해 이렇듯 힘든 과정을 거칠 때마다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나의 언어 생활을 한 번씩 뒤돌아보게 된다.
내가 말을 할 때도 글을 쓸때만큼 심사 숙고하고, 이것 저것 미리 헤아려 분별 있는 말을 하도록 애쓴다면, 성급하고 충동적인 말로 다른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쉽게 뱉어 버린 말들 때문에 빚어지는 오해나 불신이 우리 주변엔 얼마나 많은가?
누가 어쩌다 한결같이 겸허하고, 예의바르고, 품위 있는 말시를 쓰면 다시 그 사람을 쳐다보며 감탄할 만큼, 요즘 우리의 언어 생활은 퍽도 거칠고 삭막해졌음을 자주 절감한다.
흔히 글은 오래오래 종이에 남는 것이고, 말은 그냥 사라지는 것쯤으로 생각해 버리기 쉽지만, 한마디의 말 또한 듣는 이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간직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인가? 한 사람의 펜으로 쓰여진 글은 그 사람 특유의 개성을 지닌 작품이 되듯이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 또한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는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때, 우리는 결코 함부로 말할 수가 없으리라.
너도 나도 바쁘게 살다보니 별로 생각할 시간이 없다해도, 우리는 매일 잠깐 씩 일부러라도 틈을 내어,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 자신의 언어 생활을 점검해 보고 늘 잘 준비된 말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하며, 구준히 자신을 성찰해 간다면 아무래도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말을 더하게 될 것 같다. 자기와 남을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는 좋은 말, 선한 말만 골라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데, 남을 비난하고도 상관도 없는 일에 끼어 들어 흥분하거나, 불평과 ?ㅇ과 푸념으로 시간을 보낸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는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우리는 얼마든지 말의 질을 높일 수가 있고, 이것은 곧 삶의 질을 향기롭게 높이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유없이 남을 깎아내리는 말, 무례하고 오만하고 이기적인 말, 천박하고 상스러운 말은 아예 입에 담지를 말자. 잘 안된다면 적어도 우선은 횟수를 줄이려고 노력하자. 우리의 말씨가 거칠어지는 것이 시대 탓. 무분별한 매스 미디어의 탓이라고만 하지 말고, 우리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매일의 언어 생활을 참으로 선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작품으로 꽃피우자.
'미리 준비하고 말하라, 경청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 네가 듣기를 좋아하면 배우는 게 많고, 귀를 기울일 줄 알면 현자가 되리라'는 성서의 말씀을 다시 새겨 들으며 나도 말에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 잘 준비된 현자賢者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