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스크랩] 가을 산간에서의 한거(閑居)/金鎭植

유앤미나 2012. 7. 21. 09:41

가을 산간에서의 한거(閑居)

金鎭植

며칠째 가을 산막山幕에서 혼자 보내고 있다. 첫날은 도회의 여진 탓인지 온갖 채색의 세상 일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날 서울을 출발할 때 사온 신문을 펼쳐보며 이런저런 분별로 세상에 마음을 쓰며 보냈다. 오후 늦게 도착한 탓도 있지만, 설령 이른 아침에 왔다고 하더라도이내 속인의 들뜬 마음을 재우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바뀐 환경이 새로움을 안겨주었다. 풍광도 그렇거니와 맑은 숲바람이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 듯 상쾌하였고, 밤의 적막은 깊고 그윽하여 은자隱者의 한거를 시늉한들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듯했다.

 

이튿날은 한가하면서도 멍청하게 보냈다. 아무 일도 머리 속에 두지 않고 무슨 생각이나 시간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시계니 핸드폰이니 하는 이기利器들은 아예 제쳐놓았다. 그저 소박하고 담박하면 되었다. 그렇다고 원시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며 또한 그럴 수도 없다.

 

너무 편리하고 갖추어진 것을 피하고 있는 것이라면 여간 모순이 아니다. 그런 편의를 피하는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바쁘고 지친 것을 씻어 내자는 것이다. 그래서 얼마간 쉬어갈 틈과 숨쉴 공간이라도 마련하고 기지개라도 크게 켜며 편한 마음으로 게으름을 피우고 싶다고 할까.

 

새벽에 일찍 일어났지만 서둘 필요가 없었다. 조금은 맥이 빠진 느슨한 몸짓으로 느릿느릿 숲길을 걸었다. 쾌적한 공기와 여유로운 시간이 깊은 가을 속으로 점점 내딛게 하였다. 동행이 없고 목적하는 바가 없으니 마음 쓸 것이 없다. 이슬 젖은 풀숲을 밟아보고 단풍나무 가지를 흔들며 오솔길을 따라 산마루에 올랐다. 나직한 봉우리지만 가린 것이 없다. 이만하면 눈앞에 펼쳐진 들판과 산천을 바라보기에 넉넉하다. 오히려 속진의 흐린 눈빛으로 바라보기가 차마 부끄러울 뿐이다. 산마루에서 바라보는 가을의 풍광 뒤로 얼비치는 세상의 모습이 어지럽고 위태롭게 보였다 해도 도리가 마땅치 않다. 세상이 당장 바로 설 리가 없으니 범인의 처지로서는 모르는 것이 편하다.

 

해가 한 뼘쯤 떠서야 산막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소박하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끼니를 해결하는 일은 귀찮은 것이다. 어쨌든 밥을 짓고 된장국을 끓인다. 전기 밥솥, 전기 냄비 이런 세간마저 제쳐놓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번으로 세 끼의 번거로움을 대신 하기로 했다. 쌀이 있고 염장을 갖추어 놓았고 밭에 뜯을 것이 있으며, 간식감으로 씹을 뿌리까지 있으니 때를 거른다 해도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렇게 식이요법을 겸한 자족 또한 혼자의 삶으로서는 탓할 것이 못된다.

 

낮에는 차를 끓이고, 하늘을 쳐다보고, 바람 소리 새 소리를 익히다가 이런저런 책을 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무료해지면 운동삼아 무너진 둑을 손보며 땀을 적시기도 했다. 어느 것이나 미리 작정한 것이 아닌 절로 마련된 것이었다.

 

혼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혼자라는 외로움은 차라리 넉넉하였고 걸림이 없었고 그래서 흐뭇하였다. 게으름에 겨워도 뒤처지는 일이 없었고, 땀을 적셔도 힘들지 않았다. 생각 없이도 맑고 깊은 가을에 들 수 있었으며, 시간의 예약 없이도 덤불의 새들처럼 때를 맞출 수 있었다.

 

가을 밤은 근심스럽고 쓸쓸하게 깊어갔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벌레가 사는지 애처롭게 적막을 찢으며 울어댔다. 구름에 가린 달빛이 그윽하고 바람에 지는 잎새의 기척이 엄숙하게 닿아 왔다. 잠을 청하고 있었지만 말똥말똥해지기만 했다. 가을 밤은 너무 당연한 것까지도 새롭게 들려주었다. 혼자라는 것이 그렇게 끌려들게 하였다. 그것을 예찬할 생각은 없지만 외로움이 아니고서는 들 수 없는 자리다. 그러하니 더 깨어 있다가 늦게 잔들 어떠하랴.

 

사흘날 새벽녘, 빗소리가 잠을 깨웠다. 추적추적 계절을 재촉하는 검고 무거운 소리였다. 순간 풀린 나사가 조여들었다. 내일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원고지를 앞에 놓고 씨름하게 되었다. 즐거운 일이 아니지만 쓰고 싶은 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지간히 원고지의 간살을 메웠을 때는 이미 한낮이 되어 있었다. 끼니 생각을 했지만 생수 한 잔으로 끼니를 대신 하고 가을빛 속으로 나섰다. 다시 긴장을 풀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멍청한 채로 가을 속을 거니는 것이 좋았다.

 

비가 온 뒤라 풍광이 선명했고 마음이 상쾌하였다. 더욱이 새벽부터의 속박에서 풀려난 것이 심신을 가볍게 하였고, 그래서 맑고 깊은 가을 속으로 한가하게 머물 수 있었다.

 

내일이면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런 부담이 나를 묶으려 했지만 가을의 풍광은 긴장을 풀어주었다. 어제처럼 완전히 풀린 모습으로 게으름에 푹 빠지지는 못했지만, 가을의 또 다른 얼굴과 마주하고 묻고 답하며 나 자신을 찾아보려 했다.

 

이처럼 가을과 내가 같은 등가로 마주하며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반가웠다. 가을은 거울처럼 투명하게 다가왔다. 그 앞에 선 내가 가을이 되어 있었다. 반갑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였다. 그 대화는 일상의 언어가 아니지만 교감하는 것이었다. 가을의 맑고 깊은 말을 새겨 들으며 하루를 마감하였으니 말이다.

 

이제 가을도 바쁘고 나도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산막으로 돌아와 돌아갈 채비를 했다. 서랍에 넣어둔 시계와 핸드폰을 챙기고 짐도 쌌다. 짧은 기간이긴 해도 산간에서의 한거가 몸과 마음을 얼마간 씻어주었다. 개운하면서도 넉넉하고 멍청하면서도 편안한 쉼터가 되면서 말이다. 가을이 아니고서는 누릴 수 없는 외로움의 한가한 자리를 마련한 며칠간이었다.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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