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샹송

[스크랩] Maria Elena - Cesaria Evora

유앤미나 2008. 7. 24. 15:14


             


The glorious Cafe Atlantico finds Cesaria Evora venturing into more Latin American musical landscapes, as opposed to Portuguese, which dominated her previous albums. Evora draws from traditional Cuban and Brazilian music to mesmerizing effect. The album is also a tribute to her home town of Mindelo, on the Cape Verdean island of Sao Vicente, which was once a busy port with sailors cruising between South America, the Caribbean, and Portugal. Therefore, the music is heartbreaking and nostalgic, warm and tragic all at once. The masterful "Carnaval de Sao Vicente" is one of the most joyous, bittersweet party songs ever put on wax (and was even issued as a maxi-single with fantastic remixes). "Roma Criola" is tragic, lonely, destitute, and always interesting, making for an undiscovered masterpiece of a ballad, and her rendition of the Spanish language standard "Maria Elena" is absolutely heartbreaking. The album evokes a moody elegance rarely found in modern music, from the sweeping opener "Flor Di Nha Esperanca" to the summery "Amor Di Mundo," and the picture she paints of this cafe at the end of the world is a gorgeous, multi-colored, and emotion-stirring palate. This album is nothing short of world class and will be enjoyed by generations to come.

모르나(Morna)

대서양의 한가운데 9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작은 섬나라인 카부베르드(Cape Verde)는 작은 지도엔 표기도 안되어 있을 정도로 작고 생소한 나라이다. 15세기 포루투갈 사람들이 무인도였던 이섬을 발견하여 인간이 터전을 잡기 시작하는데 노예무역이 성했던 시절에는 노예선의  정박지로 번영을 구했다고 한다.

이곳의 전통음악을 모르나(Morna)라고 하는데 아프리카와 남미대륙 사이의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아프리카와 남미의 문화적 영향을 두루 흡수하였다.  "맨발의 디바"라는 별명을 가진 세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는 모르나의 여왕이며 카부베르드가  배출한 세계적인 월드스타이다. 
어떤이는 모르나를 흑인들의 한이 담긴 블루스(Blues)에 비유하며 세자리아 에보라에게서 빌리할리데이(Billie Holiday)를 이미지를 찾기도 한다.

한과 아픔이 녹아 있는 그녀의 음악은 듣는 이의 가슴을 적시는 깊은 매력이 있다.  인생을 달관한 듯한
깊은 목소리에 묻어나는 슬픔과 그리움 그리고 환희의 다양한 색깔은 한 인간의 험난한 역사를 보는 듯하다.

'섬'에는 언제, 어디서나 아픈 역사가 있다. 특히 작은 섬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섬은 언제나 정복, 침탈의
대상이었고, 쉽게 스스로 무너져갔다. 비록 오늘날 그 섬들은 저마다 비경을 자랑하며 휴양지로 또는 관광지로 시끌벅적 지만, 오랫동안 그 섬에서 뿌리를 내리며 섬의 역사와 함께 해온 이국적인 섬,케이프 베르데
에서 자라 카페에서 노래를 시작한 그녀 인생의 굴곡과 시련이 겹쳐오지만 에보라가 제 2의 음악인생을
시작한 것은 1985년 45세의 나이에 포르투갈로 건너가면서부터다. 그곳에서 우연히 그녀의 음악에 매혹된 케이프 베르데 출신의 젊은 프랑스 프로듀서이자 기타리스트인 Jose Da Silva의 설득으로 함께 프랑스로
건너와음악 작업을 하게되면서 유럽 등지로 알려지게된 가련의 디바 Cesaria Evora.

케이프 베르데(Cape Verde), 모르나(Morna)

아마 아는 사람이 없지 않나 싶을 정도로 케이프 베르데라는 나라는 외딴 곳에 있는 작은 섬나라이다. 서아프리카에서 500Km 정도 떨어져 대서양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아홉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곳은 원래 무인도였으나 십오세기경 포루트갈인들에게 발견된 후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를 있는 노예무역의 정박지로 번영을 이루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노예무역이 쇠퇴하면서 이 먹고 살기 힘든 지역인 케이프 베르데의 사람들은 유럽이나 아메리카로 대규모 이민을 떠나거나 관광업으로 힘든 생활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에 속하지만 1975년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탓인지 이곳의 음악은 포르투갈과 아프리카의 특징을 모두 담아내고 있다.

'모르나'라 불리는 이 지역의 음악은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에 속하고 긴 포르투갈의 식민지 역사를 겪었다는 두 역사적, 지리적 배경 때문인지 포르투갈의 전통음악인 파두(Fado)의 화성에 아프리카의 리듬을 결합한 특이한 형태의 음악이 되었다. 다른 아프리카의 음악들이 리듬의 성격이 강한 반면 이 '모나르'는 선율이 강조되는 음악인 것이다. 그리고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에 '이민'이라는 역사적인 슬픔까지 더해져 이별,
그리움, 외로움 등의 약간은 슬픈 듯한 느낌을 담아낸다. 하지만 사실 어디에 붙어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이 나라의 '모르나'라는 음악에 관심을 기울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모르나'를 통해 전세계적인 디바로 우뚝선 이가 바로 '세자리아 에보라'이다.

세자리아 에보라. 인생에서 나오는 진정한 감동의 목소리

세자리아 에보라는 1941년 바이올린 주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7남매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세자리아 에보라가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들은 다른 섬주민들처럼 생계를 위해 하나 둘 이민을 떠나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12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고

형제들 중 마지막까지 케이프 베르드에 남아 있게 된다.

바이올린 주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이었을까. 그녀는 남다른 음악적 재능과 무엇보다 사람을 이끄는 독특한 목소리를 보여주면서 10대 시절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여 60년대에는 그녀의 재능이 섬 전체에 널리 알려지면서 두 개의 라디오 방송 녹음 테이프를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에서 발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케이프 베르데의 지역경제는 계속 악화되어 음악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고 또한 세 번의 이혼 뒤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의 쓰린 상처를 입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1970년대 중반 더 이상의
가수활동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1985년, 그녀의 나이 45세때 다시 음악을 하기로 결심하고 포르투갈로 건너가 케이프 베르데 출신의 여가수 노래들을 수록한 앨범 녹음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곳에서 그녀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녀의 노래에 매혹된 케이프 베르데 출신의 프로듀서 겸 기타리스트인 호세 다 실바(Jose Da Silva) 가
그녀를 설득해 음악작업을 하러 파리로 건너가게 되었고 마침내 1988년 첫 앨범 'La Diva aux Pieds Nus'
(맨발의 디바)를 발표하게 된 것이다. 첫번째 앨범과 두번째 앨범까지는 별 성공을 얻지는 못했지만 1991년 세번째 앨범인 'MarAzul'를 발표하면서부터 서서히 유럽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해 'Miss Perfumado' 가 팔표되면서 유럽의 언론들은 연일 그녀의 노래에 열광했고 그녀는 '빌리 홀리데이'에 비교될 정도로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된다.

그녀의 파리콘서트는 모두 매진되었고 바르셀로나, 몬트리올, 일본, 프랑스를 도는 첫번째 세계투어도 경찰이 동원될 만큼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전세계적으로 명성과 인기를 얻게 된다. 또한 95년 발표한 'Cesaria Evora'로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 되고 북미투어공연에서는 마돈나, 브랜포드 마샬리스 등의 유명 뮤지션이 앞다투어 관람을 할 정도의 성황을 이루었다.

96년에도 40회의 프랑스 콘서트, 스위스, 벨기에, 브라질, 독일, 홍콩, 이탈리아, 스웨덴, 미국, 세네갈, 그리고 캐나다에서 30번의 콘서트까지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다. 영국에서의 첫 공연에서는 런던의 퀸 앨리자베스홀을 매진시키는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그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5번의 그래미상 노미네이트, 4백만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 12장의 골든 디스크, 세계 전역의 투어와 기록적 매진행렬을 기록하면서 명실상부한 최고의 디바라는 평가를 받게 된다.

그녀의 목소리와 노래는 결코 기교가 뛰어나지도 않고 폭발력인 가창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그리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녀의 평범하다고 할 수 있는 목소리와 가창력은 오히려 슬픈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녀가 겪었던 식민지 생활, 가난, 이민, 이혼 등의 고생했던 삶의 순간들과 섬에 대한,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슬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녀가 괜히 '맨발의 디바'라고 불리는 것은 아니다. '버림받은 여자의 자립'을 보여주려고 맨발로 무대에 선다는 그녀의 뜻을 안다면 그녀의 노래는 더 더욱 우리의 가슴을 적시는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자료출처 :

 

 

출처 : 올드뮤직의향기
글쓴이 : 사이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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