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린 대로 거두는 인생
자식만을 믿다가 타국(他國)에 버려진
어느 노부부의 사연이 방송에 소개된 직후,
패륜적인 자식이 저지른
현대판 고려장에 대한 비난여론이
계속되고 있다.
캐나다로 먼저 이민 간 큰 딸로부터
함께 살자는 말을 듣고서
부모는 모든 재산(財産)을 다 정리해 갔건만,
그 딸은 모든 돈을 가로 챈 뒤
안색을 바꿔 노부모를 푸대접하다가
어느 날 말없이 다른 곳으로
이사가버렸다.
졸지에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린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려
빈 깡통을 줍고 있지만,
자식(子息)들은 여전히 안면몰수하고 있다.
오히려 찾아간 취재진에게
그들은 당당하게도 받을 돈을 받았을
뿐이라며 문전박대(門前薄待) 했던 것이다.
필리핀에서 또 다른 사례(事例)도
캐나다와 유사한 내용으로
편안한 여생을 미끼로 부모의 재산을
다 뺏은 후 자식들이 못 본 체한다는 이야기였다.
이날 방송을 본 사람들은
부모를 버린 그들의 인면수심 모습에
경악하면서 성 범죄자처럼,
얼굴과 신상을 공개(公開)하라는
과격한 댓글까지 게시판에 올라왔다고 한다.
문제는 이들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들과 유사한 철면피(鐵面皮) 같은
자식들에 대한 뉴스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기에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이토록
천륜(天倫)이 무색할 정도로 자식까지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자고(自古)로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런 말을 듣든 안 듣든 어느 시대나 어떤 나라든
그 사회를 지켜주었던 것은 효(孝)라는
윤리사상이 아니었던가.
그것은 부자관계 자체가
기본적인 인륜(人倫)의 관계를 넘어서
천륜으로 얽혀 있기에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일을 우리는
당연하게 여겨왔었다.
그럼에도 왜 이 시대는 내 부모를 고려장(高麗葬)과
다를 바가 없는 곳에 방치시키는 괴물 같은
자식들이 많아지고 있단 말인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먼저 이 사회가 급격히
변화하고 발전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물질만능(物質萬能) 사고가
그런 이기적인 자식으로 만드는데
일등공신 짓을 했을 것이다.
최근 어느 교수는
부모 소득이 높을수록 자녀와 자주
만난다는 특이(特異)한 보고서를 내 놓았다.
반대로 부모가 돈이 없으면 자식들이
거의 찾아보지 않는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에겐
이렇게 돈 앞엔 부모(父母)도 없고,
사람의 도리나 인생의 어떠한 진리도
무시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겐 돈보다 절대적(絶對的) 우선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다.
모든 우선순위와 질서는 오로지
돈을 통하여 정해질 뿐이다.
‘내 자식 키우는데도
정신없이 돈 들어가는데,
언제 노친 네들까지 돌본단 말이요!’
이러한 넉두리가 요즘 자녀들의 철학이요,
면죄부(免罪符)가 되고 있기에,
어버이날을 앞두고
우리 가슴은 미어질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는 맹목적(盲目的)인 자식사랑이
그런 못된 자식을 만들었다.
입시위주의 교육풍토 속에서
우리 부모들은 먹을 것 못 먹으며
자식 교육에만 올인 했건만,
어찌된 일인지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경쟁심(競爭心)만 키워주었고,
졸업 이후에도,
‘이 부모는 너만 잘 되면 된다.’면서
자식 출세(出世)를 위해 자신을 돌볼 겨룰 없이
오매불망 눈먼 사랑에 목을 맨 사람처럼
쏟아 부었건만,
그들로부터 돌아오는 것은
‘나는 소중(所重)하니까!’라는 광고 카피처럼,
자기 가족 외에는 누구도 중요치 않게
여기는 무자비한 이기심만 물려주었던 것이다.
아울러 사회의 도덕성(道德性) 추락은
더욱 극단적인 이기심과
어른들에 대한 공경심 결여를
만들면서 신(新)고려장 문화까지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자식(子息)교육 잘못 시킨 부모로부터
우리 사회 모두가 공동의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기에,
여기에 대한 대비(對備)책도
역시 부모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교육(敎育)에 있다.
늦은 것 같지만 이제부터라도
후손들에게 마땅히 배워야 할 인생의 도리와
섬김의 지혜를 가르쳐야만
나중에 그들도 어른으로서 후손들에게
사람대접(待接)받을 수 있다.
나는 지난주에
우리 멤버 중 결혼60주년을 맞이하는
어느 어르신의 의식(儀式)을
진행하면서,
여느 드라마보다 더
진한 감동의 여운이 아직까지도 내
가슴을 물결치고 있다.
그 어르신의 2남 3녀 모든 자녀들이
사회적으로 지도자급에 속한 일도
대단했지만 그것보다는
아무 힘없는 노부모(老父母)를 하나님처럼
공경하는 그들의 효성 앞에
할 말을 잃게 했다.
그 가정을 볼 때마다 나는
‘인생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진리를
실제 눈으로 보는 것 같아,
자녀교육에 귀감이 되었던 것이다.
그 가정도 처음부터 다복한 집은 아니었다.
어머니가 시집왔을 때 시어머니는
중풍과 치매에 걸려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10여 년 동안 불평 한마디 없이
친어머니처럼 섬겼다.
그 때는 몰랐지만,
어머니의 그러한 밀알 같은 섬김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자녀(子女)들에게
무슨 생각을 하게했을까.
말이 필요 없었다.
그 부모는 자녀들에게 어릴 때부터
큰 소리 한번 안 쳤건만,
자녀들은 그 부모를 신처럼 두려워하며 섬겼다.
사필귀정(事必歸正)이란 바르지 못한 일이
당장은 뭔가 되는 듯 기승을 부리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마침내
올바른 것이 열매를 맺게 됨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렇게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생의 진리(眞理)는
세상이 아무리 악해도 영원불변의
법칙이 되고 있다.
지금도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 법칙에 따라 복(福)을 받고
살아가는 있음을
우리 주변에 그런 가족들을 통해
교훈 받게 된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폭행(暴行)당하는
어머니를 보고 자란 아들은
결혼 이후 더 악랄하게 자기아내를
폭행한다는 임상보고가 있다.
하지만 이번 캐나다 경우처럼,
부모 재산(財産) 다 뺏은 후
부모를 팽개친 그 사람의 자식들은
자기 부모들의 그러한 행태를 보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어느 나라에서는 부모를
바르게 모시지 않으면 부모가 법원에
부양비를 요구할 수도 있고,
불응 시에는 벌금이나 징역까지 처할 수 있는
법까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효(孝)를 어찌 법으로 정할 순 있단 말인가.
효는 어디까지나 도덕적인 일에 속하므로
강요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허나 법보다 도덕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천륜(天倫)이요,
그것은 경륜이다.
신을 믿지 아니해도,
이러한 인생 원리 때문에 우리는
양심의 가책을 받으며,
순리(順理)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세상만사 뿌린 대로 거두듯이,
부모를 홀대했던 그들은
자식으로부터 본 대로 돌려받을 것이요,
부모라는 이름이 가장 큰 명분(名分)으로
여겨 자신의 환경을 초월하여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자녀들은 분명 그들 자식들로부터 본 대로
돌려받을 것이다.
주여,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恭敬)하라
이것이 약속(約束)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
지금 저는
어르신에 대한 모습이
제 자녀들에게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지
두렵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 자녀들이 본 그대로 나도 똑같이
대접받을 것을 생각해서,
본이 될 말한
족적(足跡)을 남기게 하소서.
2008년 5월 4일 어버이날을 앞두고 강릉에서 피러한 드립니다.
사진작가ꁾ 투가리님 lovenphoto님 포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