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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40년의 인생

유앤미나 2008. 4. 2. 15:17



광야(廣野) 40년의 인생


성지(聖地)는 신대원 때 갈 기회가 있었는데,
가지 못했는데 이제야 때가 되었는지
일정마다 많은 깨달음이 있었다.

이집트-이스라엘-요르단 순서로 삼일 씩
순례하였는데, 처음 도착한 룩소는
50도를 오르내리는 일기로
초반부터 광야(廣野)의 더운 맛을
톡톡히 맛보면서 일정이 시작되었다.

당시 이집트는 최고 문화(文化)를 누렸지만,
그 곳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했던
이스라엘은 사막으로 나가기 전부터
광야 같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어디에서 살든지 인생 자체가
광야(廣野)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더욱 깨닫게 된다.

우리는 흔히 어려운 시절을 광야라고 한다.
이유도 없이 안겨있는 신체적 장애,
병(病)든 가족을 돌본다거나,
배우자나 자녀들로 인해 쓴 뿌리를
삼켜야하는 상황들은 신의 존재를 떠나서
분명 광야 같은 삶이 아닐 수가 없다.

허나 알고 보면 그런 일시적인 시련들은
잠시가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번 시험이 지나면 괜찮겠지 생각하지만
또 다른 문제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광야 같은 인생의 모습이다.





고로 광야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광야에 대한 반응(反應)에 따라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있고,
큰 성장의 기회가 되는 사람도 있다.

이스라엘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왕도
여러 광야에서 오랫동안 연단 받으면서,
넓은 마음을 소유한 지혜로운 왕이 되었다.

우리 인생에서 광야가 꼭 필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에 들어갔듯이,
위대한 사람은 모두가 이러한
광야 과정을 지나야만 열매를 거둘 수가 있다.

어차피 우리도 광야를 꼭 지나야 한다면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하고,
아니 즐기는 법을
배워야만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광야에서 가장 필요(必要)한 것은,
첫째로 말씀(word)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종살이 했을지라도
먹을 것과 마실 것이 풍부했었는데,

약속의 땅을 가겠다고 나선 광야는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땅이다 보니 그들이
애굽을 그리워하고 불평(不平)하는 일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겠는가.

우리 인생도 그들처럼 어떤
조건을 걸면서 돌맹이와 모래바람만 부는
환경에서 기약 없이 방목(放牧)하시는
절대자가 원망스러울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인생이 뭔지를 조금씩 알아 가면서,
광야(廣野)란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그가 나에게 말씀하시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면서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이 풍족하고 좋은 환경에 있을 때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무료한 일상 속에
마음이 너무 부요해져
나를 향한 말씀과 인생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오히려 원망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막한 광야에서는 인간의
어떠한 위장(僞裝)도 통할 수 없음을 알고
어느 덧 진실하게 서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내 자신을 보도록,
나를 향한 그의 뜻을 알도록,
가장 중요한 본질(本質)이 무엇인지 알아 가도록,
나를 낮은 자리로 이끌어 가셨던 것이다.

그는 내 전체(全體)를
감찰하시기에 광야를 통해
가나안에서 필요치 않는 불순물들을
제거하므로 본질(本質)이 드러나게 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은 세상의 절대적인 기준은
그의 말씀이라는 시험을
통과(通過)하는데 40년이 걸렸는데,

내 자신은 아직도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오늘도 그는 광야에서 나를 말씀으로
인도하고 계시나보다.

그래서 광야라는 단어는 ‘말씀’과
‘말하다’라는 뜻의 <다바르>에서 나온 것이다.





둘째는 광야에서는 물이 꼭 필요하다.

비행기에서 바라 본 이집트는
모든 문명은 큰 강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는
말을 한 순간에 확인할 수 있었다.

이집트는 사막(砂漠)이지만
5%에만 사람들은 나일강 주변 모여 살고,
나머지는 그냥 버려진 불모지 땅이다.

5% 땅도 자세히 살펴보면,
부근에 샘이 있거나 아니면 나무마다
스프링 쿨러가 설치되어 물을 뿌려주므로
사는 것이지 스스로 생존(生存)하는
나무는 단 한 그루도 없다.

나무 한 그루도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는데,
70%가 수분(水分)으로 이루어진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인생이 목마르다’라는 시적 표현은
육신의 목마름이 아니라 사람의 내면 곧
영혼의 목마름을 의미한다.

파스칼은 사람의 내면(內面)에는
빈 방이 하나있는데 그 방이 채워질 때까지
그 누구도 참된 만족(滿足)이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그 빈 방을
세상의 온갖 좋은 것으로 채우려 하지만,
더 큰 공허함만 느낄 뿐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없는 것은 그 방은 신의 자리이기 때문에
그를 모셔야만 채울 수 있는 법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수르 광야에 들어섰지만 물이 없어 죽을
지경이었는데 삼일 만에 마라샘물을 발견했지만
이름처럼 너무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홍해를 건넜던 백성들의 감격은
이제 원망(怨望)의 합창으로 바뀌게 되었다.
홍수 때에 마실 물이 없다고 하듯이,
그들은 애굽에서 많은 금은보화가 갖고 나왔지만
그것이 목마름에는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

모든 문명의 혜택을 입고 사는 현대인들은
정신적으로 더 큰 갈증을 느끼고 있다.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
성공(成功)한 사람이 되어 온갖 것을 다 해보지만
도무지 영적인 갈증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예레미야가 이미 오래 전에 말했듯이,
솔제니친은 러시아에서 수많은
사람을 죽였던 피의 혁명은 생수의 근원되는
신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단언(斷言)했었다.

마치 운전자가 없는데 차가 운행되는 상황처럼
끔찍한 사건들과 전쟁(戰爭)이 일어나는 것은
그를 잃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마라의 물을 마실 수가 없을 때,
모세는 나뭇가지를 그 샘에 던졌더니
쓴물이 단물로 바뀌어 마실 수가 있었다.

인생의 목마름은 불평과 불만이 충만할 때다.
나뭇가지는 십자가(十字架)를 상징한다.

모두가 미쳐가고 있을 때,
나뭇가지를 찢듯이 나를 희생할 때
나로 인해 화평할 때 쓴물은 단물이 된다.
나의 마라는 내가 찢겨야 할 샘이다.
그것이 나의 목을 적시고
내 이웃을 살리는 출발점이 된다.





셋째는 광야에선 상상력(想像力)이 있어야 한다.

두바이라는 나라는 잘 몰라도
돛단배 모양의 7성 호텔과
세계최고 마천루 빌딩을 보면 그 곳을 안다.

제주도크기의 두 배 정도 밖에 안 되고,
중동이지만 석유가 국가재정 10%도 안 되는 나라가
세계 최대 인공 항과 테마파크를 조성하고
홍콩과 싱가포르의 허브 산업들을
그대로 사막 위에 쌓아올린 신비스런 나라다.

두바이 개발(開發) 총 책임자가
얼마 전 한국에 왔을 때 그 비밀을 묻자,
그는 ‘꿈’과 ‘상상력’이 경쟁력이었다고 말했다.

두바이는 다른 중동처럼 년 강수량이
너무 작아 국토 90%가 황무지에 속한다.
아무 희망도 없는 사막(砂漠)이라는
이러한 환경들이 오히려 어떠한 공간적 제약도 없이
창조적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장점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교훈해 주고 있다.





드라마 대부분이 사실을 근거로
작가의 상상을 통해 맛갈스러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듯이 자연스러움과 상상력은
상생(相生)의 새로운 창조물이다.

상상력은 이렇게 역사적으로
인류 발전의 가장 근본적인 원동력이요,
미래의 가장 큰 자원이 되고 있다.

이제 생각의 시대라는 20C는 지나갔고,
상상(想像)의 시대 21C가 되었다.

생각은 과거에 머무는 경우가 많기에,
생각에 빠져있다 보면 할 일이란
원망하다 싸우는 일 밖에 없지만,

상상은 두바이와 이스라엘처럼 생각과
환경을 뛰어넘어 찬란한 미래를 만들어 낸다.
인간의 행불행이 이 둘에서 나온다.

이스라엘에게 젖과 꿀의 땅이라고
소개했던 가나안은
사실 황무지와 다를 것이 없었지만,

그들이 낙심하지 않았던 것은 그 땅은
신이 주신 곳으로 세상 어떤 곳과
비교할 수 없다는 독특한
그들만의 꿈과 믿음이 후에 실제로
그 이상의 땅을 만들게 했던
가장 큰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상상은
이렇게 위기(危機)에 선
나와 공동체를 구해 준다.

오늘도 세상은
상상력으로 만들어 지고 있다.
비록 나에게 주신 그 땅이 사막일지라도
나의 상상과 그 분의 지혜로
옥토로 가꾸어야 할 사명(使命)이
우리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되고 있다.





주여,

사막이 샘이 넘쳐흐르리라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내리라
...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도 함께 뒹구는
...

어릴 적 많이 불렀던
가스펠 가사가
이번 순례를 통해 실감났습니다.

그 나라가 오기 전에,
당신은
나를 낮추시고,
나를 주리게 하시므로
세상의 바른 기준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마라와 신광야 사이에
엘림을 통해 바른 선택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광야의 삶에 필요한
말씀과 샘 그리고 꿈을 갖고
승리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2007년 5월 27일 강릉에서 <성지순례1>피러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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