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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연, 생을 지탱해 준 반짝이는 보석/최인호
유앤미나
2012. 7. 2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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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외로움을 잘 탔다. 학교에서 청소를 끝내고 혼자 돌아가는 날엔 더욱 그랬다. 집으로 가는 길은 까마득했는데, 그럴 땐 학교 운동장에서 돌멩이를 하나 골랐다. 그것을 발로 툭툭 차면서 집까지 함께 가곤 했다. 혼자가 싫어 돌멩이를 길동무로 삼은 것이다.
삶 곳곳에서 스치는 인연 기쁨·생명·담백함 물씬 이별은 또다른 만남 시작 ![]() 소설가 최인호(사진)가 돌아보는 어린 시절은 "무언가와 헤어지는 것에 약했"던 기억들로 가득하다. 해질녘까지 함께 뛰어논 아이들과 종내는 헤어져야 하는 일이 싫었고, 영화나 책을 보다가 점점 끝이 가까워져 그것과 이별해야 하는 것이 두려웠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신던 구두를 잘 버리지 못했고, 오래된 옷을 장농 구석에 모셔두었으며, 수십년 된 가전제품들을 바꾸지 못했다. 낡고 낡은 자동차는 8년이나 더 탔다. 아내와 결혼한 것도 "연애할 때 매일 헤어져야 하는 고통이 너무 싫"어서였다. 태생적으로 인연을 중하게 여기는 성정의 소유자, 소설가 최인호가 산문집 '최인호의 인연'(랜덤하우스/1만2천원)을 펴냈다.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일상 곳곳에 박혀 보석처럼 반짝이며 생을 지탱해준 것은 인연이었다"는 고백과 함께 그의 생애와 맺었던 인연들의 이야기가 수채화 같은 담백함으로 그려져 있다. 인연은 사람만이 아니다. 언젠가 아내와 원수처럼 싸워 닷새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지낼 무렵, 두 사람을 연결시킨 건 나무였다. 주렁주렁 매달린 노란 열매들을 보고 아내가 냉전 중인 것도 잊고 "저 나무 좀 봐요, 저게 뭐지?"라고 무심코 말을 뱉고 말았다. 햇살 속에 실하게 익은 모과였다. 한껏 절정에 선 빛깔과 뽐내지 않는 겸손한 향기. 모르고 스쳐갔던 그 존재가 어떤 인연의 풍경으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 곁, 삶의 곳곳에 기쁜 인연들이 숨어 있음을 알려주는 영적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길에서 주워 온 난이 피워올린 꽃망울, 지친 일상에서 섬뜩한 생의 비의를 깨닫게 해준 한 구절의 말씀, 계절과 생명의 위대함을 가르쳐 준 꽃잎 한 장,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준 낯모르는 사람들. 그가 맺은 인연은 생명, 사물, 마음에 두루 걸쳐 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당신이 눈물 흘릴 때, 이 지구 반대편에서 누군가 당신을 위해 울고 있다. 우리는 모두 같은 몸을 지니고 있고, 인연이라는 고리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인연에 대한 더 깊은 성찰은 모든 것이 언젠가는 이별한다는 것. "끝내는 죽음이 모든 것을 갈라놓을 것이다." 따라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별의 순간을 맞이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그의 인연관이 결국 도달한 지점은 여기다. "죽음이 이별이 아니라는 사실. 인생이란 수많은 이별연습을 통해, 이별이 헤어짐도 사라짐도 아닌 또 다른 만남의 시작임을 배워나가는 훈련장일지 모른다." 김건수 기자 kswoo333@ 유난히 외로움을 잘 탔다. 학교에서 청소를 끝내고 혼자 돌아가는 날엔 더욱 그랬다. 집으로 가는 길은 까마득했는데, 그럴 땐 학교 운동장에서 돌멩이를 하나 골랐다. 그것을 발로 툭툭 차면서 집까지 함께 가곤 했다. 혼자가 싫어 돌멩이를 길동무로 삼은 것이다. |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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