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실버 -강현순-
어느 문학상 시상식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나의 가슴은 내내 감동의 물결로 출렁거렸다. 권위 있는 그 상을 재정한 사람, 심사위원, 사회자, 수상자 그 모든 분들의 연세가 일흔 이쪽 저쪽이라는 것에 놀랐다. 한마디로 은발 일색이었다. 한결같이 젊은이 못지 않은 씩씩한 모습에 더욱 놀랐다.
여류시인인 심사위원장이, 수상자가 상을 받아야 하는 이유를 또렷한 음성으로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발표하였을 때 우리는 일제히 두 손바닥을 힘차게 맞부딪쳤다. 젊은 시절에 등단한 이후로 오늘날까지 오로지 문학 외길을 걷고 있다는, 일흔이 훨씬 넘은 수상자가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단상에서 겸손하게 수상 소감을 말할 때 장내는 차라리 숙연해지기조차 하였다.
단상에 있는 분들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문단에서만큼은 후배들에게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문학적 업적이 실로 대단한 분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을 주는 사람한테서 목에 힘을 준다거나 어깨가 뒤로 젖혀지는 따위의 권위의식에 젖은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수상자 역시 당연하게 상을 받는다는 느낌으로 당당하기는커녕 언행이 그저 송구스럽고 황송할 따름이다. 숨어서 묵묵히 착한 일을 하다 담임 선생님한테 들켜서 상을 받는 순진한 초등학생을 연상케 하였다. 실로 흐뭇한 광경이었다. 고향의 뒷동산에 팔베개하고 누워 마냥 두둥실 떠가는 흰구름을 올려다보는 듯한 안온한 시간이었다.
기실 젊음은 듬직하고 강건하고 매혹에 차 있다. 반면에 어쩐지 불안하다. 그 열정이 어느 순간 어디서, 어떻게 발산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년은 젊은이 못지 않은 우아한 매력은 있으되 불안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나이와 함께 지혜가 자라고 주름살과 함께 품위가 갖추어지므로 뜨거운 감정을 우선 차가운 이성이 일단 정지시킨다. 또한 인생의 깊숙한 맛을 앎으로 인생을 사랑할 줄도 안다.
사람도 식물의 그것과 같아서 싹을 내고 성장하고 꽃을 피우고 시들고 그리고 마르는 것을 보면, 그분들은 이러한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면서도 한갓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꽃은 아무 곳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흔하고 평범한 그런 꽃이 아니다. 그 찬란하고 눈부신 꽃은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영광이었다. 또한 그분들은 아름답게 피운 그 꽃을 금세 시들게 방치해 두지 않는다. 좀더 향기롭고 아름답게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을 수반하겠지만 슬기롭기에 지혜롭게 대처할 줄도, 극복할 줄도 안다. 그래서 그런 분들을 대하면 나는 마냥 든든해진다.
나는 대체로 나보다 젊은 사람보다는 인생의 깊은 멋과 맛을 아는 그런 분들 곁에 가길 좋아한다. 그런 분들 곁에 가면 좋은 향기가 난다. 바람 부는 언덕에 서 있는 사향노루의 그것과는 견줄 수가 없다. 그 공기는 너무나 영롱하고 신선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심호흡을 하곤 한다. 그 향기를 나의 영혼에 닿게 하기 위함이다. 모든 게 부족하고 서툴기만 한 나로서는 그렇게 하여 나의 영혼을 정화, 미화시키고 싶은 것이다.
문우 중에서 예순이 넘었는데도 초등학생에게 수 년째 피아노 레슨을 하고 계시는 분이 있다. 언젠가 누구에게 그 얘기를 하였더니 그 사람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그 연세에?’하고 ‘핫-’ 웃는 것이었다. 가르치는 분도, 자녀를 맡기는 학부형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모르긴 해도 그 표정 속에는 그분에 대한 일말의 존경심 같은 것이 엿보였다. 정말이지 내적으로 외적으로 얼마나 고우신 분인지 모른다. 자신의 맡은 일을 묵묵히 그리고 깔끔하게 처리해 나감은 말할 것도 없고 효부에, 현모양처이신 그분은 우리 후배 문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나이를 잊고 사시는 또 한 분이 있다. 직장에서 퇴직하신 지는 이미 오래이다. 칠순이 가까운 연세임에도 천성이 부지런하여 가만히 계시지를 못한다. 문학 모임에서 새까만 후배들이 있음에도 궂은 일, 허드렛일까지 곧잘 하여 후배 문인들이 당황할 때가 많다. 불의에 타협할 줄 모르는 올곧은 성품은 한 그루 푸른 소나무를 연상케 한다. 작품활동도 예전보다 더 왕성하게 하시는 모습을 보노라면 존경심이 절로 솟구친다.

사회는 갈수록 노년화 되어가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에 실버의 그늘이 깊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한때 ‘낙엽’ 또는 ‘황혼’으로 실버세대를 인생의 변방에 비유했다. 한낮이 지나면 밤이 오듯이 젊은이들도 언젠가는 실버의 마을로 들어가기 마련이다. 해가 없으면 그늘도 없고, 눈부신 신록이 없이는 가을의 낭만인 낙엽을 밟을 수도 없다. 쨍쨍한 햇살이 빛날수록 황혼은 더 아름다운 고요로 우리 눈을 적신다. 나는 실버를 우리 삶의 원두막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는 세월 오는 세월 잠시 불러 앉히고 부는 바람 뜬구름도 손짓해 부르고 넉넉한 온유와 편안한 눈길로 누구라도 다정하게 끌어 안아 주는 포근한 품 같은 것.
요즘처럼 삶에 지치고 믿음이 부실한 사람들, 오만과 독선으로 힘들게 하는 사람들 틈새에서 하루 삶의 무게가 너무 버거울 때 그래도 우리 삶의 공간에 ‘실버’라는 큰 울타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를 위해 삶의 그늘이 되어 주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어깨가 축쳐진 사람들 가슴을 다독거려 주고 싶다. ‘실버의 축제’인 시상식을 나오면서 삶을 잘 살아오신 그분들에게 나는 속으로 ‘아름다운 실버’라고 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