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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이 마흔에 새롭게 사람에 눈뜬 아나운서 이금희

유앤미나 2012. 7. 21. 21:10
인생의 의무는 하나, 오직 즐거워지라는 것 2006년 6월호
 
인생의 의무는 하나, 오직 즐거워지라는 것

인생의 의무는 하나, 오직 즐거워지라는 것 
나이 마흔에 새롭게 사람에 눈뜬 아나운서 이금희

 

취재, 글 박혜란 기자 | 사진 한영희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내면의 방들을 열 적절한 열쇠부터 찾는 게 순서인지 모르겠다. 베테랑 아나운서 이금희 씨(40세)를 이해하는 방편으로 궁리 끝에 ‘즐거움’이란 열쇠를 집어 들었다. 장수 프로그램을 솜씨 있게 이끌어가는 17년 내공의 진행자, 길에서 마주친 누구든 스스럼없이 그에게 인사를 건네올 만큼 친근하고 편안한 이미지의 방송인, TV 촬영장에서 외주 녹음실, 라디오 스튜디오로 종일 빠듯하게 움직이는 발걸음이 조금도 각박하거나 고달파 보이지 않고 외려 생기로 가득 차 있는 프로페셔널, 다른 방송 출연자는 물론, 방청객과 스태프까지도 마치 안주인처럼 살뜰히 챙기고 배려하며 사람을 만나면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하고, 가방에서 간식거리를 주섬주섬 꺼내어 가는 곳마다 곰살궂게 내미는 사람. 그 모든 면면을 한 번에 납득할 수 있게 하는 그것. 이금희의 어디에다 꽂아도 척척 맞아 들어가는 마스터키가 바로 ‘스스로 즐거워’이다.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리 높여 말하고 있었다. “전 참 즐겁습니다. 아니, 즐겁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큰 나무 사이로 걸어가니 내 키가 커졌다
 

  “정말 좋아요, 제 일이 좋아요. 일하고 돈 받아가면서 좋은 사람들 만나 인생 공부까지 하니 이렇게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얻는 이득이란 셀 수 없지요. 제가 <아침마당>과 <이금희의 가요산책>을 8년 넘게 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한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하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고 많이들 물으세요. 오래 해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어요. 프로그램은 같아도 만나는 사람은 계속 바뀌고 그분들이 늘 새로운 깨우침을 주거든요. 하드웨어는 같아도 소프트웨어는 끊임없이 변한달까요.”


  방송을 하지 않았으면 무엇을 했을까. 그런 일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그는, 사람들로부터 성숙의 자양분을 한껏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많은 사람을 겪었으니 사람을 보는 눈이나 판단력에도 분명 특별한 무엇이 있겠다 싶었으나 “저만의 판단 기준이요? 사람을 보는 철학이요? 에이, 그런 거 없어요”라며 딱 잘라 대답한다.

 


  “마찬가지로 특별한 인터뷰 기술이랄 것 역시 없어요. 다만 인터뷰하기 전에 준비를 많이 하는 것만은 확실해요. 인터뷰 대상에 관한 자료를 A4용지로 백 장씩 준비하는 것이 언제나 제 목표죠. 그렇게 준비하다 보면 상대방에 관한 애정이 생겨나고, 인터뷰하는 순간만은 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멋져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이 두 가지만은 틀림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어요. 배울 게 없는 사람은 없다, 일인자는 될 만한 이유가 있다. 100% 만들어진 이미지란 건 없어요.”


  불완전한 잣대로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힘써 이해하려 할 뿐. 그래서 그 사려 깊은 눈은 상대방의 신뢰를 이끌어낸다. 이금희가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있다, 나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성선설의 신봉자임이 분명한 그이지만, 방송이 아닌 평소 생활에서도 사람을 보는 눈이 그처럼 긍정적이기만 할까.


  “누군가와 일 때문에 부딪혀 속상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한 선배가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너는 저쪽으로 걸어가고 있고, 상대방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가다가 잠시 교차로에서 만났을 뿐이다. 다시금 각자의 길을 가게 되어 있다. 그런데 곧 헤어질 사람 때문에 속상할 필요가 있을까? 그 말씀이 많은 위안이 되었어요. 사람 때문에 힘들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해요. 지금 우린 교차로에 있을 뿐이야.”

 

 

참 좋은 나이 마흔


  요즘 또 한 가지 그를 즐겁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나이다. “얼마 전에 오십대이신 선배님을 만났어요. 선배님, 지금 제 나이가 무척 좋아요 그랬더니, 네 나이부터 십 년간이 가장 눈부시고 좋은 시기야 그러세요. 그럼 오십대는 어때요 물었더니, 오십대는 더 좋지 그러시더군요.”
 참 편하고 여유롭고 살 맛 나는 나이 마흔. 나이 먹는 일이 이렇게 좋은 일인 줄은 미처 몰랐다며 그의 예찬론이 끊일 줄 모른다. “무엇보다 욕심이 줄어들면서 마음이 여유로워졌어요. 삼십대엔 일 욕심이 말도 못했죠. 그런데 마흔이 되니 그 많던 욕심이 신기하리만큼 스르륵 잦아드는 거예요. 예전엔 솔직히 일 못 하는 사람이 싫었어요. 방송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건데 저렇게밖에 못 할까 싶어 화가 났거든요. 그런데 생각이 자연스레 바뀌게 되더라고요. 방송은 참 중요하다. 하지만 사람은 더 중요하다고.”


  스스로 완벽을 기하던 사람이니 후배들에겐 또 얼마나 엄한 선배였을까. “아마 그랬을 거예요. 예전엔 잔소리도 많이 하고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요즘은 싫은 소리를 못 하겠어요. 나이를 먹으면서(또!) 사람을 대하는 마음도 확실히 넉넉해진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헤아릴 아량이 생긴 걸까요? 요즘은 후배들을 보면 그저 대견하고 안쓰럽고, 어떤 모습도 이해가 돼요.”

 


  인생의 황금기, 제2의 전성기를 통과하고 있는 이금희 아나운서는 또 무엇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즐거워지려고 마음먹고 있을까. “가끔 쇼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하는데 끝나고 나면 공허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쇼가 한껏 펼쳐졌던 세트를 부수는 순간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게 허구인 것만 같은 심정이 되거든요. 그래서 역시 사람을 담는 프로그램이 좋아요. 그런 프로그램의 한 부분이 되어 노력하고 싶고요. 그것이 제 마음에, 인생에 남는 방송일 테니까요.”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grac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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