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과 양진암, 그리고 학명선사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1879~1944)이 변산을 다녀갔다. 1923년, 그 당시 월명암 부근에 있었던 양진암에 머물며 위의 시들을 남겼고, 양진암을 떠나면서 학명선사에게도 시 한 수를 남겼다.
그렇다면, 먼저 학명선사(鶴鳴禪師 1867~1929)는 누구인가? 속성은 白씨, 법명은 철종(哲宗), 법호는 학명(鶴鳴)으로 전남 영광군 불갑면 출신이다. 스무 살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문득 인간의 삶의 덧없음을 깨닫고 명산대찰을 찾아 나그네 길에 오른다. 그런 그의 발길은 순창 구암사(龜岩寺)에 닿았고, 당대의 고승 설두화상의 지도 아래 불도를 닦기 시작한다.
이후 불갑사의 금화선사를 스승으로 수계하여 출가한다. 4년 두인 1890년에는 자신의 출가 동기를 부여했던 구암사 강원을 찾아 내전을 공부하고 구족계를 받았다. 이로부터 10년 동안 지리산 벽송사, 조계산의 선암사, 송광사 등지를 두루 찾아다니며 천하의 선지식을 참방하여 법을 구하고 삼학(三學)에 두루 통달하였다.
1900년, 학명은 은사인 금화선사에 의해 건당(建幢)하고 법통을 이어 받으니 바로 백파선사의 7대 법손이 되고 설두선사의 증손이 되었고, 이후 중국 땅의 넓은 천지를 돌며 고승들을 참방하고, 선화를 나누었으며, 이듬해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당대 최고의 선지식들과 교류하였다.
43세 때인 1909년에 일본에서 돌아온 그는 1912~1916년경 내소사 주지를 맡았으며, 1919년경부터 황폐해진 월명선원을 다시 일으킨 후 월명암에서 제방납자를 제접하였다. 만해 한용운과의 조우는 학명이 월명암에 머물 때 이루어진 것이다.
그 무렵이라면 만해 한용운과 대비되는 육당 최남선이 변산을 순례하고 1926년 발행한 심춘순례에 ‘변산의 4대사’를 남겼다. 육당의 변산 방문 시기를 1925년경으로 보기 때문에 한용운이 변산은 더 일찍 찾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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