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스크랩] Jean Desire Gustave Courbet

유앤미나 2012. 7. 12. 11:42


 
Jean Desire Gustave Courbet


File:Gustave Courbet auto-retrato.jpg
Self-portrait (The Desperate Man), c. 1843–1845 (Private collection)

 

 

사슴의 은신처, Plaisir Fountain, 1866

 

샘[泉], The Source, 1868

 

 

File:Gustave Courbet 020.jpg

The Wave, 1870

 

 

 

 


오르랑의 큰 떡갈나무

 






파이프를 물고 있는 남자(자화상)
 

부상병

 

File:Gustave Courbet 018.jpg

The Stone Breakers, 1849, 돌깨는 사람(1849년. 2차 대전으로 파괴)

 

 

해머를 두드리는 나이든 오른쪽 인물과 돌덩이들을 힘써 들어 올리는 젊은 남자는 시선을 돌린 채묵묵히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다. 화면을 꽉 채운 인물들의 단순한 윤곽선과 거친 듯한 무채색의 표면으로 인해 화면에 바짝 다가선 두 인물의

현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오늘날 우리들이 보기에 이 그림에는 '건강한 노동의 모습'이라는 것 이외의 다른 어떤 사회적인 메시지 가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그림이 1850-51년

살롱에 출품되었을 당시에는노동자의 모습을 화면에 당당하게 그렸다는 것만으

로도 큰 문제가 되었다.

 

File:Courbet.jpg
Plage de Normandie. (c. 1872/1875). Washington D.C.: National Gallery of Art.
 
 
File:Courbet, Un enterrement a Ornans.jpg
 
 
File:Courbet LAtelier du peintre.jpg
The Artist's Studio (L'Atelier du peintre): A Real Allegory of a Seven Year Phase
in my Artistic and Moral Life, 1855, 359 × 598 cm (141.33 × 235.43 in), oil on canvas,
Musee d'Orsay, Paris
 
 

 

File:La belle Irlandaise (Portrait of Jo).JPG

 

 

 

File:Monet dejeunersurlherbe.jpg

 

 

File:Selbstbildnis mit schwarzem Hund.jpg

Self-portrait with black dog, 1842

 

Gustave Courbet - Ophelia 1842

 

File:Gustave Courbet Bather Sleeping by a Brook.JPG

 

File:Courbet Selfportrait.jpg

 

 

File:Die Hangematte.jpg

 

 

File:Gustave Courbet - Zelie Courbet.jpg

Zelie Courbet, 1847

 

 

File:Gustave Courbet 033.jpg

 

 

 

File:Gustave Courbet 031.jpg

 

 

File:Gustave Courbet 002.jpg

 

 

File:Gustave Courbet 010.jpg

The Meeting ("Bonjour, Monsieur Courbet"), 1854

 

File:Gustave Courbet 025.jpg

 

 

File:The Trellis Gustave Courbet 1862.jpeg

 

The Trellis, 1862, Toledo Museum of Art, Toledo, Ohio

 

 

File:Courbet.karoly.550pix.jpg

 

 

File:Proudhon-children.jpg

 

 

File:Gustave Courbet 030.jpg

 

 

File:Gustave Courbet 009.jpg

 

 

File:Courbet Etretat.jpg

 

 

File:Courbet - Paul Verlaine.jpg

 

 

File:Courbet - Stream in the Jura Mountains (The Torrent), oil on canves, 1872-3.jpg

 

 

 

File:Gustave Courbet 007.jpg

The Lake Neuchatel, 1875

 


































































































































Jean Desire Gustave Courbet
(10 June 1819 – 31 December 1877)
File:Gustave Courbet.jpg
귀스타프 쿠르베

 

구스타브 쿠르베는 스위스의 국경에서 가까운, 프랑스 동부, 오르낭에서
부유한 농부인 아버지 엘레오노르 레지와 어머니 실비 쿠르베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왕립 중학교와 브장송 미술대학을 다닌 뒤,
1841년 명목상으로는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에 갔다. 그러나 그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대가들의 그림들을 연구하는 데 더욱 진지하게 몰두했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와 리베라 등 17세기 스페인 화가들의 그림들을 모사함으로써
숙련된 기교를 얻은 그는 여러 번 낙선하다가 1842년에 그린 자화상 "검은 개를

 데리고 있는 쿠르베(Courbet with a Black Dog)" 로 마침내 25세가 되던 1844년에

 왕립 아카데미의 후원으로  당시 프랑스에서 해마다 열리는 유일한 공공 미술 전람회인  살롱전에 입선했다.

그 뒤, 몇 해 동안 그의 작품이 비전통적인 양식과 대담한 주제 때문에
살롱의 심사원들에게 3번이나 거절당했지만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계속 출품했다.

근본적으로는 당시의 고전주의와 같은 이상화나 낭만주의적인 공상표현을 일체
 배격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묘사할’ 것을 주장한 그의 사상적 입장은,

회화의 주제를 눈에 보이는 것에만 한정 혁신하고 일상생활에 대한 관찰의 밀도를
촉구한 점에서 미술사상 가장 큰 의의를 남긴 것이다.

귀스타프 꾸르베는 서양미술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화가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유럽미술의 오랜 전통을 깨고 종교와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은 단 한 점도 그리지 않았던 화가.

 그는 고대의 신들을 모두 추방한 자리에 당대의 평범한 일상을 들어앉히고,

거의 사진에 가까운 정직함으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화폭에 담았다.

그가 그린 누드들을 보면 미끈하게 잘 빠진 여인이 아니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몸매의 여인들이 대부분이다.

 

“나에게 신을 보여달라. 그러면 신을 그리겠다.” 는 그의 말은 후일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명제가 되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나부와 앵무새》(1866) 《사슴의 은신처》(1866)
《샘[泉]》(1868) 《광란의 바다》(1876)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센강변의 처녀들》(56) 외에 많은 수렵도, 거치른 바다풍경,나부(裸婦) 등을 제작하였으나

 71년 파리코뮌 때, 나폴레옹 1세 동상의 파괴 책임으로 투옥되었다가 석방 후

 스위스로 망명하여 객사하였다.

 

Isao Sasaki - Ophel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