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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 다시 편집을 해봤읍니다

유앤미나 2012. 6. 9. 09:24
        강촌(江村)/ 杜甫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류)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自去自來梁上燕(자거자래양상연)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老妻畵紙爲棋局(노처화지위기국)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多病所須唯藥物(다병소수유약물)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맑은 강 한 굽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데
      기나긴 여름 강촌은 만사가 한가롭다
      제비는 마음대로 처마를 들고나고
      수중의 갈매기는 가까이 가도 날아갈 줄 모른다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어린 아들은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드는구나
      다병한 몸에 필요한 것이란 오직 약물뿐
      미천한 이내 몸이 달리 또 무엇을 바라리오.

당대의 대시인, 두보가 시를 읊던 두보초당(杜甫草堂)/두푸차오탕. 한평생 벼슬할 뜻을 품고서도 저버려야 했던 당대의 대시인 두보가 성도에 있을 때 기거하던 곳으로 성도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759년 겨울, 두보는 안사의 난 [안녹산(安祿山)과 사사명(史思明)이 정권찬탈을 위해 일으켰던 반란] 을 피해 현종(玄宗)을 따라 촉으로 피난을 왔는데, 친한 친구 엄무(嚴武)의 도움으로 서쪽 교외의 경치가 아름다운 호숫가에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이듬 해 봄에 초가집이 완공되자 사람들은 성도초당(成都草堂)이라고 불렀다. 또 완화계(浣花溪)에 있기 때문에 완화초당이라고도 한다.

두보는 이 곳에서 4년여 동안 살았는데, 이 때 지은 시중에서 현재까지 전해지는 시는 240여 수가 된다. 대표적으로 복거(卜居), 춘야희우(春夜喜雨), 강촌(江村) 등의 시는 초당에서 지내던 그의 시름없는 한가로운 심경을 읽을 수 있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초당은 1500년과 1811년 두 차례의 확장공사로 인해 넓이가 20ha가 조금 넘으며 경내에는 대해(大懈), 시사당(侍史堂), 공부사(工部祠), 사능초당(沙陵草堂)의 석비 등 건축과 다른 많은 문화재가 있다. 정문에 들어서면 시사당과 두보의 소상(塑像)이 있고, 양쪽의 진열실에는 두보의 시집과 연구서 등이 전시되어 있다.

위치 : 성도시 서쪽 교외 완화계

출처 : 50-70대의사랑과 추억
글쓴이 : Tropicman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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